모자의 나라 조선 - 그 많던 조선의 모자는 왜 그렇게 빨리 사라졌을까?
이승우 지음 / 주류성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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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모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몇 년 전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드라마 '킹덤'을 통해서다. 조선시대가 배경이라 드라마 속 의상들이 익숙해서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해외에서는 드라마 속 남자들의 다양한 모자를 보고 감탄이 쏟아졌다.

"킹덤은 좀비와 멋진 모자에 관한 드라마다.”라는 기사를 접하고 처음으로 모자를 인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극에서 맨머리는 어린 양민 아이들이거나 죄수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 이전에는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던 궁금증이 생겨났다. "조선인들은 왜 실내에서도 모자를 썼나"


사람이 머리에 쓰는 다양한 모양의 물건을 통틀어 일컫는 모자는 모든 문화권에서 신체보호와 장신부의 역할로 착용했는데, 서양인의 눈에 조선의 모자가 특이하게 보인 이유는 집 밖은 물론. 집 안에서도 신발과 겉옷은 벗어도 모자를 착용해서다. 잠을 잘 때 외에는 매 순간 모자를 착용했다는 말로, 이유는 조선의 모자는 장신구의 역할을 넘어 신분과 계급과 직업, 나이, 성별을 상징하고 분별하는 사회적 코드 역할까지 수행했다. 모자에 정체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모자를 써왔는데 조선에서는 모자를 '쓰게'라 칭했다. 과거부터 친숙한 쓰게는 유교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예를 행하고 신분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되었고 관, 건. 입, 모 네 가지 착용자의 신분에 따]라 기능과 용도에 따라 분화하며 쓰개 문화의 정점을 이뤘다.


신분과 직업, 성별에 따라 모자를 착용했으니 그 종류가 다양해진 건 당연하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조선시대가 남녀를 유별하게 구분해 여인들의 활동이 자유롭지 않아 남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자들의 모자가 다양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럼에도 많은 여성들의 모자를 접할 수 있다.


한 나라의 복식을 이끈 건 왕실이다. 조선시대의 왕과 왕세자, 왕세손도 신분과 용도에 따라 다양한 모자를 착용했다. 왕의 가장 대표적인 모자인 익선관. 익선관과 신하들의 흑사모와 기본 형태는 같지만 익석관은 매미 날개 모양의 소각이 하늘을 향해있다. 이 소각은 매미를 상징하는데, 이슬과 수액만 먹고 자라 군자의 덕을 알고 주변에 유혹에 흔들리지 말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 외에도 면류관, 원유관, 죽적립 등. 다양한 모자를 썼다.


조선모자의 최고는 '흑립(갓)'이다. 흑립을 최고로 치는 이유는 조선이 선비의 나라기 때문이다. 선비들은 의관정제(衣冠整齊)를 선비가 지켜야 할 금도로 여겼기 때문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반드시 관모를 갖춰 썼고 갓은 가장 기본이 되는 모자로 모양이 망가지지 않도록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갓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천을 별도로 가지고 다녔다고 하니.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것 같다.


책을 통해 다양한 모자를 만날 수 있고 모자를 통해 당신의 신분제도와 문화를 만날 수 있다. 한 나라의 모자만으로 책 한 권이 만들어질 만큼 많은 모자들이 존재했다는 사실도 재미있고 이렇게 다양한 모자를 왜 이제야 알게 됐나 싶을 만큼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그렇기에 이렇게 많은 모자들이 일제 강점기 단발령으로 일시에 사라져버렸다는 것이 정말 아쉽고 안타깝다. 물론 서양 복식이 일상복이 되면서 차츰 사라졌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강제적으로 명맥이 끊어지지 않았다면 다른 형태로 발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적어도 모자 자체가 지금처럼 낯설게 되진 않았을 것 같다.


모자를 통해 보는 조선의 역사와 문화. 조선을 이해하는 또 다른 관점을 만나게 되어 반갑고 모자를 넘어 하나하나의 이름과 용도를 배우는 재미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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