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오리지널 초판본 고급 양장본) 코너스톤 착한 고전 양장본 2
헤르만 헤세 지음, 박지희 옮김, 김욱동 해설 / 코너스톤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한스 기베란트는 영특한 소년이에요. 그 영특함은 신학교 선발고사 2등을 합격함으로써 확실하게 증명을 했죠. 그리고 자신의 찬란한 미래를 나름 꿈꿔 봅니다. 동네에 있는 범부들과는 전혀 다른 삶, 그런 삶을 사는 건 끔찍하다고 생각하죠. 소수의 엘리트를 뽑아 주 정부에서 전액 지원하는 그 과정을 잘 졸업하면 나름 탄탄대로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맞았습니다. 하지만 한스에게는 그게 좀 어려웠던 것 같아요. 차라리 그 신학교를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 한스에게는 좋았던 것일지도 몰라요. 물론 결과론입니다. 한스가 학교에 잘 적응하고, 최소한 졸업을 무사히 했다면 어떻게든 삶을 이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한스에게는 여러모로 운이 좋지 않았고, 본인 스스로의 기질도 무시할 수 없었고, 결국 짧은 생을 맞이하게 될 수 밖에 없었어요.

'

사실 한스가 어떻게 될지는 계속해서 나옵니다. 한스가 시험을 보러 가기 전에 만난 플라이크는 "시험이란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며 운에 따라 붙을 수도,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수재라도 떨어질 수 있으니 낙방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만일 한스가 낙방한다면 그것은 그의 영혼을 위해 다른 길로 인도하려는 신의 특별한 뜻에 따른 것임을 기억하라고 했다(p.18)"에 대략 감지를 할 수 있죠. 그리고 교장 또한 "다만 너무 지치지 않도록 하게나. 안 그러면 수레바퀴에 깔리고 말 테니(p.124)"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한스가 결국 짧은 생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것에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한 가지 원인으로 한스가 죽은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그때 그때마다 너무 삐걱거리면서 갔던 것이 안타까운 것이죠. 한스의 아버지인 요제프가 좀 더 자상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면 좋았을 것이에요. 아니 그 이전에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지 않았다면 좀 더 나았을 것 같고요. 신학교도 조금 덜 엄격했다면 좋았을 것 같고요.

하지만 한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친구 헤르만 하일너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스는 성격 자체가 의기소침 해요. 소심한 편이죠. 아버지의 눈치를 보는 순한 아이죠. 사람들의 기대가 고마우면서도 짐스러운 아이에요. 그리고 그것이 불편함에도 내색하지 못하는 성정입니다. 그러면서 바르게 살아야 한다,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 1등을 해야 한다라는 나름의 강박도 가지고 있는 소년이에요. 그런 소년에게 헤르만 하일너는 너무 안 맞았지 않았나 싶어요. 물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는 있었지만, 한스는 헤르만과 어울리기 위해서 더 일찍 일어나서 공부해야 했고, 더 집중해서 공부하지 않을 수 없는, 한마디로 제 살 까먹어가면서 헤르만과 친구를 하고 있었던 거잖아요. 헤르만은 자아가 불안정하기는 해도, 자신의 스타일은 확실하게 있었던 것에 비하여 한스는 그러하지 못했거든요. 주변에서 말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 와중에 부딪힌 너무 자유롭고 변덕스러운 영혼을 한스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 봅니다. 저는 차라리 헤르만 말고 다른 애들과 좀 더 친해졌더라면, 설령 사춘기로 인해서 자아 방황을 했다 할지라도 그냥 중간 성적으로라도 졸업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리고 답답해 하고, 이게 맞나 계속 고민하셔도 목사 일을 했을 것 같거든요. 사실 주변에 그런 사람들은 넘쳐나잖아요? 이걸 쓰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래도 음울하게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박장대소 하는 부분도 있긴 했어요. 바로 루치우스 때문이죠. 이 약삭빠르고 이기주의가 음악을 짝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웃기던지요. 바이올린이 비명과 절규를 내게 만듦에도 꿋꿋하게 음악을 사랑하는 그 장면은 한스의 우울한 청소년기에서 그나마 좀 더 밟고 유채색의 기억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불행해도 100% 불행은 없는 법이니까요.

어찌하였든 한스는 본인을 지키지는 못했어요. 이미 초반부터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고, 막판엔 신경증까지 와서 더이상 학업을 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왔으니까요. 그래도 나름의 기회는 있었어요. 에마가 있었잖아요. 에마가 나타났을 때 그래도 저는 한스가 에마를 통해 다시 일어나길 바랐는데 안타깝게도 에마에게는 한스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했거든요. 그런 것에 비해 한스는 그 짧은 만남으로 너무 많은 것들을 혼자서 다 줘 버렸죠. 다른 사람이었으면 에마가 떠났다는 말에 기분 나빠하지만 잊고 살았을 거예요. 그런데 한스는 상황이 그러하지 못했잖아요. 가뜩이나 한스의 상황이 안 좋은 상황에서 그나마 생기가 도는 일이었는데 그게 확 사라져 버리니까 남보다 몇 배는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죠.

플라이크 말대로 시험은 떨어질 수 있고, 설령 떨어진다고 해도 그걸 수치스럽게 여기거나 절망하지는 말아야 했는데 사람이 어디 그런가요. 특히 주변의 기대를 받을 대로 받을 수록 그 부담감과 실패에 대한 중압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죠. 한스가 신동이 아니었고, 그냥 평범했다면 그냥 그렇게 살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한스는 그걸 감당하기엔 신경이 약했고, 자신의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상태에선 이미 생명줄은 끊겼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군다나 한스는 애매하게 커 버렸어요. 아무 것도 모르던 유년시절로 돌아갈 수 없고, 낚시를 좋아하고 하늘의 구름을 쫓던 소년의 시절은 그저 눈부실 뿐이고, 결국 자신에게 닥쳐있는 어른의 길은 너무 막막하고 어둡고 축축한 것들 뿐이었어요. 그 어느 것에도 마음이 뛰지 않고, 색을 남기지 않는 상황에서 한스의 죽음은 설령 사고사라 할지라도 자살이라 봐도 어쩌면 무방하겠죠.

<수레바퀴 아래서>는 다른 글에서도 물론 드러납니다만 헤르만 헤세의 그 특유의 날카롭고 예민한 감수성의 풍부함은 유감없이 드러나느 것 같습니다. 편집증 환자마냥 0.01m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그 숨막힘도 구석구석 너무 잘 드러나죠.

더불어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성장소설인 만큼 본인의 것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헤르만 헤세와 제가 공통분모가 많다고 느끼고요. 한스도 사실 저와 그리 차이가 많지 않아서요. 알은 세계고, 그 알을 깨버렸어야 맞았는데 그러하지 못한 것도 같아요. 차이가 있다면 한스는 결국 학교를 졸업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됐습니다만 저는 꾸역꾸역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도를 밟으려고 몸부림치면서 어떻게든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데미안>을 서평할 때에도 한 이야기입니다만, 데미안도 한스도 너무 공감 가고, 비슷한 요소들이 많아서요. 청소년 시절에 읽어야 할 책을 재미 없어서 안 읽다가 청소년기 벗어나서 읽고 있는데, 이 나이 먹어 감명 받고 있는 것을 보니 아직 멀었나 싶나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나이 먹어서야 이제 청소년이 된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들어요. 한스가 고민했던 것들을 아직도 하고 있느 것을 보면 말이에요. 나뭇가지에 걸린 자신의 목에 걸 줄을 흡족하게 바라보는 그 마음을 이해하는 것도 그렇고, 모든 것이 무감무취해지는 것도 그렇고요. 나이만 먹었지 성장은 아무래도 더딘가 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