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스 안데르센의 영화 편집 수업
닐스 파그 안데르센 지음, 조효진 옮김 / 보스토크프레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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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모두 바빴겠지요. 요즘 세상에 바쁘지 않은 사람 어딨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책을 만드신 분도 비록 이 책이 편집에 대해 말하고 있다지만-영화와 책, 장르는 다르지만 읽다 보면 결국 모든 편집에 훈훈한 마음이 일거든요- 완벽한 편집을 하지 못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셨을 겁니다.


시작부터 비꼬는 거냐구요? 아뇨. 절대 아닙니다.

비록 습니다. 합니다. 체로 다정한 교수님처럼 독자에게 말을 거시다가 돌연 다. 로 끝나니 어라 이 교수님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었나 당황하고 멋쩍은 기분이 들게 하는 부분이 꽤나 많이-7번까지 세다 말았습니다- 나오지만요. 아 혹시? 어쩌면? 그건 오히려 오탈자를 곳곳에 배치해 편집의 중요성을 더욱 극대화하려는 효과 아니었을까요? 흠...


책이 참 좋습니다. 길쭉하니 예쁘고요. 표지의 눈알 색이 핑크와 보라로 다른 것도 무척 맘에 들었습니다. 내지 디자인은 더욱 마음에 듭니다. 형광 핑크라고 해야 하나요 형광 코랄이라고 해야 하나요. 어릴 적 여러 색의 에이포용지를 사서 인쇄하면 맘이 그렇게 설레곤 했었는데. 어린 아이가 한 것처럼-절대 욕이 아닙니다 진실로- 은근히 눈이 아픈 색을 곳곳에 배치했는데 저는 그게 참 예쁘더라고요. 불량식품 같은 색! 그것입니다. 그게 제 맘을 계속 두근거리게 했어요.


아무튼 저는 오타가 몇 개고, 어쩌고 저쩌고 이러니 저러니 수근수근 쏙닥쏙닥 해도 이렇게 출판되어 한국어로 만날 수 있음에 참 감사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겨울엔 따듯하게 여름엔 시원하게 책만 읽는 저 같은 게으른 독자는 누가 내주지 않으면 어디서 이런 글을 읽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사람들은 책을 읽고 나면 이게 이래서 별로고 저게 저래서 별로다 말 하기 전에 애쓴 작가와 편집자와 인쇄소와 등등 굴비처럼 줄줄이 엮인 사람들에게 초콜릿을 주면 어떨까요. 별점보다 초콜릿을 주면 참 좋지 않을까요. 성적표 대신 사과를 달라는 발저의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아주 좋은 책이면 킨더를 주고, 좋진 않았지만 수고하셨다는 의미로 키세스 하나를 주는 겁니다. 킨더는 매우 맛있고 키세스는 무인도에서나 맛있게 먹을 맛이죠. 별점 하나 받았을 땐 화내는 사람이 무척 많겠지만 키세스 초콜릿을 받으면 화를 내 말아 알쏭달쏭 고민하지 않을까요. 그러다 타이밍을 놓쳐 화내기를 깜빡하고 주머니에 넣어뒀다가 어느 날 약속시간에 늦은 친구를 기다리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을 때 웬 키세스가 나타나서 어디서 났더라 궁금하지 않으면서도 궁금해하며 초콜릿을 먹고 참 달다 하지 않을까요. 그럼 늦어서 허겁지겁 뛰어오는 친구도 기다리는 친구도 모두에게 해피엔딩이 아닐까요.


아무튼. 책을 다 읽고 나면 화가 납니다. 안 날 수가 있나요. 왜 아직도 영화는 감독의 이름만 적어두나요. 아무리 대장이래도요. 편집자의 이름도 적어줘라! 엔딩 크레딧에 이만큼씩 이름을 적어두면 뭐합니까. 지인의 이름이 나오길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앞다퉈 달려나가기 바쁘지요. 넷플릭스였나 다른 ott에서 영화를 보는데 세상에 엔딩크레딧이 나오기 시작하자 기다려주지 않고 금방 다른 영화의 광고를 틀어버리지 뭡니까? 왜 다들 고소를 안 합니까. 틀어주는 자본이 이만큼 행패를 부려도 되는 것입니까. 감독 혼자 만드는 것도 아닌데 만든 사람들 이름 끝까지 틀어는 줘야 할 것 아닙니까. 화장실이 급하신 분은 나갔다 다시 오십시오.

화난 건 아닙니다. 저는 영화인도 아니고요.


아무튼. 편집의 중요성에 대해 영화나 책, 다른 어느 분야든 참 중요하구나 라는 걸 새삼 느낍니다. 그림자처럼 숨어있는데 무지 중요해요. 인간도 그림자가 없으면 귀신 취급 받지 않습니까. 그림자는 그만큼 중요한 것이지요.


그래서 결론은

1. 늘 다정하다가 갑자기 정색하는 교수님을 떠올리게 하는 오타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3. 당연한 소리지만 영화는 감독 혼자 만든 것이 아니다 간단하지만 모두 잘 잊는 사실.

(감독의 이름이 놓이는 자리에 스태프 몇 백명의 이름 중 하나가 무작위로 들어가면 어떨까.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외 xxx명 으로 축약되는 거지. 대신 클릭하면 스태프 전부의 이름과 하는 일이 명시된 리스트가 주룩 나오고. 감독의 이름 자리엔 편집자의 이름이거나 조명부 막내 이름 등등 다양하게 정말 말 그대로 무작위로 나오는 거지.)

4. 가나 초콜릿을 드립니다.


오늘날 뉴스는 전쟁의 공포에 관한 이미지로 채워져 있고, 이 이미지들은 휴대폰과 인터넷을 통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대부분 우리를 슬프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냉담하게 만들고, 전쟁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는 체념을 남길 가능성이 더 큽니다. 전쟁이 먼 곳에서 일어나는 한, 우리 현실의 일부가 되지는 않습니다.
<우울한 방 세 개>는 정확히 반대의 일을 합니다. 보는 이에게 슬픔을 자아내고, 도덕적인 입장을 취하도록 촉구하는 것입니다. 영화는 전쟁의 끔찍한 면들을 보여주는 대신, 관객이 자신만의 공간에서 그런 감정들을 느끼도록 만듭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며 우리가 머릿속에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행간(行間)‘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상간(像間)‘이라는 말도 존재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 연속성을 만들면서 빈 곳을 채울 수 있습니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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