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포스터 하우 투 드로잉 Nature 월터 포스터 하우 투 드로잉
월터 포스터 크리에이티브 팀 지음, 오윤성 옮김 / 미디어샘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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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한 자루로 끄적이는 재미를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아무 생각 없이 끄적대는 낙서에서 부터, 눈에 보이는 것을 종이 위에 남기고자 휘두르는 그림까지. 연필만을 이용하여 명암, 질감, 색채까지 표현하는 스케치는 정말 매력적이다. 바로 이 책이 연필 한 자루로 예술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쉽게 알려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미술 시간을 좋아했다. 그럴싸하게 밑그림을 그렸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채색에 신경질도 부리곤 했던 것 같다. 성인이 되어 미술을 취미 삼고픈 생각에 '연필 스케치' 강좌를 신청했었으나, 여러가지 주변 환경상 학원을 방문하여 강좌를 듣기에는 어려움이 많더라. 포기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이 책이 내 앞에 나타났다. 감사한다.

시작하는 마당에서 원근법, 빛, 그림자 등에 관한 중요한 기초 지식들과 이를 표현하는 터치 기법들만 보았을 뿐인데도 연필을 접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기본적인 기법들과 예시로 소개하는 드로잉을 따라 그려보니 금세 이해가 되고 자신감이 붙는다. 책 한 권이 재미있는 취미 생활을 제공해주는 순간이다.





미술에, 그림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라고 자신한다. 특히 드로잉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비해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부족한 사람에게 맞춤형 가이드가 될 것이다. 시간과 발품을 팔아야 하는 여느 성인 강좌들 못지 않다.

p.s. 책장에서 종이 냄새와 잉크 냄새가 오묘하게 섞인 듯한 훌륭한 향이 난다. 맡아본 가운데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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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라시 한국사 - 아는 역사도 다시 보는 한국사 반전 야사
김재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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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역사, 진짜 역사


우리가 아는 역사를 정면돌파가 아닌, 살짝 비켜서서 쳐다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관점을 약간 바꿔 보니 '다른' 역사가 보이고, 흥미있게 쳐다보니 '진짜' 역사를 알 것만 같다. 역사라는 녀석은 과거에 일어난 일이기에 변함이 없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기에 재미있고 어렵다. 관점과 해석, 사상과 선입견, 시대의 흐름과 정치적 압력 등 무수한 인자들이 역사를 발전시키기도, 왜곡시키기도 한다.


자타 공인 '역사 덕후'로 불리우는 김재완 작가는 친구와 술자리에서 수다 떠는 듯한 대화체로 역사 속 '썰'을 풀어나간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정통 역사 외에, 찌라시 수준에서 머물고 만 역사의 조각들을 읽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 실제로 찌라시가 주는 흥미는 꽤 유혹적이지 않는가. (찌라시라는 표현에 딴지를 걸고 싶진 않지만, 한국사 책의 제목에 일본어가 들어가는 건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다.)

학창 시절 역사 수업 중 문득 의아했지만 무심하게 넘어가버린 궁금증들이 꽤 있었다. 가령 을지문덕 장군의 이름은 왜이리 어색한가, 발해가 궁금한데 왜 통일신라만 가르쳐주나, '단 한번도 다른 민족을 침범하지 않았던 우리 민족'이라는 가르침은 자부심을 심어주는 건가 수치심을 심어주는 건가 등.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이런 역사의 조각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하니 덕분에 몰랐던 역사가 보인다.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는 교양서가 분명하다. 번성했던 역사에서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하고, 망조가 든 구한말 이야기에서 수치심을, 더 나아가 국정 농단과 적폐로 무너질 뻔한 현대에 분노를 느끼게 하는 참된 역사서라고 생각한다.

김재완 작가의 다음 책이 기대된다. (차기작 제목에는 일본어가 없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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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변호사 - 마음을 여는 변론
김영훈 지음 / 시간여행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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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여는 변론


언젠가 변호사를 만나야 할 때가 온다면, 이는 인생길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이 아닐까. 이 때 변호사가 어둠을 비추는 달빛이 되어 줄 것이다. 달빛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는 피고인들, 그들의 마음을 얻고, 더 나아가 원고와 검찰, 법원의 마음까지 여는 따스한 변론에 관한 이야기이다.

친구 같은 변호사, 가족같은 변호사를 지향하며 변호사의 길을 걷고 있는 이가 직접 겪은 12개의 에피소드들을 실었다. 단순한 산문형식이 아닌, 마치 소설처럼 극화하여 재미있는 이야기로 승화시켰다. 여기에 변호사의 언변이 더해지니, 마음 속에 촥촥 감기는 맛이 일품이다. 판결을 말해주지 않는 에피소드들이 더러 있는데, 이는 판례를 보고 악용할 여지가 있을만하기에 작가가 조심한 부분이 아닐까. 매 이야기마다 새롭고 신비로우며, 내가 속해 있지 않는 세상에 대한 경외감마저 든다.

학창시절 난 변호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법대를 갈까 했었으며, 의사에 대해 역시 아는 것 없이 의대를 갔다. 잠깐이나마 꾸었던 꿈이었기에 법조계의 삶이 항상 궁금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쪽 사람들과는 연이 없어 술 한잔 기울일 자리가 없더라. 하지만 아프고 죽어가는 환자들 틈바구니에서 아둥바둥거리는 나와는 다들 것이라고, 훨씬 멋들어지고 번듯한 폼새일 것이라고, 막연하게나마 선을 긋고 있었나보다. 이 책이 내게 들려준 변호사의 이야기에 적잖이 놀랐고, 나와 비슷한 길을 걷는 이들이라는 동지애도 생긴다. 작가의 변론을 갈망하는 서민들 이야기에 환자들이 겹쳐 보이고, 측은지심이 깔려있는 작가의 모습에 내 모습이 보인다. 변호사도 의사처럼 인생의 고비를 맞은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었구나. 새삼 느끼는 사실에 괜히 마음이 후끈해진다.

달빛 변호사, 달빛 의사... 어둠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세상이라면, 달빛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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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은 부산물이다 - 문명의 시원을 둘러싼 해묵은 관점을 변화시킬 경이로운 발상
정예푸 지음, 오한나 옮김 / 378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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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에 청사진은 없었다


문명은 계획된 것이 아니며 무목적적 행위 중 의도치 않게 나타난 '부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회학자 정예푸 선생은 보수적인 인문학계에서도 독특한 시각을 가진 학자로 유명하다. 인류학, 생물학, 고고학과 역사학을 넘나드는 방대하고도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 출처를 일일이 밝히며 인용하여, 주장하는 바에 힘을 싣고 있다.

이 책은 두 가지 큰 의미를 지닌다. 첫째, 인류 문명의 역사를 아시아의 관점으로 재해석하였다는 것이다. 메소포타미아나 나일강 등을 언급하며 시작하는 문명의 탄생과는 사뭇 다른 관점이다. 다행스럽게도 중국이나 아시아를 우월하게 표현하는 경향은 보이지 않는다.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할 뿐이다.

둘째, 문명을 인류가 이룩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탄생한 것이라는 시각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마치 진화의 한 과정이라고나 할까. 때문에 다윈의 진화론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있다. 여태껏 인류의 역사와 문명에 대해 주입식으로 배워온 뭇 사람들에게 굉장히 파격적인 관점이 아닐 수 없다.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철저한 사료와 논리정연한 작가의 설명을 들어보면 반박할 여지가 많지 않음을 느낀다.

필요에 의한 선택과 소외, 필연을 가장한 우연성, 차용해 쓰던 각기 다른 문화들의 만남과 교배, 중대한 발명, 인류와 문명이 서로를 길들이는 상호작용 등으로 설명한 문화 메커니즘이 바로 문명이 부산물이기 위한 작가의 변명이다. 이로써 인류 문명의 이정표라고 여겨지는 족외혼제, 농업의 시작, 문자의 개발, 제지술 및 인쇄술의 탄생과 발전 과정을 다각도로 비추어 이 모든 것이 서로 연계되는 부산물들의 연속임을 증명하고 있다.

빈곤한 상상력을 가지고 세습된 교육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새롭게 고찰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준데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책을 편찬하여 나처럼 무지한 이에게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감사할 따름이다. 조금 더 나아가 건방을 떨어 작가에게 반박을 해볼 수도 있겠다. 생명의 진화 과정과 인류 문명의 발생에 있어 목적성을 완전히 배제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의도된 목적이나 계획적 발명은 없었다는 작가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반면에 이 책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 책들이 나오기를 바래본다. 활발한 논쟁이 관심의 증거일테고, 이것이 바로 정예푸 선생이 진정 원하는 것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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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 오블리주 - 선의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애덤 파이필드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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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할 권리


전 세계의 어린이들을 향한 '차별 없는 구호'를 위한 단체 유니세프, United Nations Children's Fund (UNICEF). 이 유니세프에서 15년간 3대 총재를 역임한 제임스 그랜트의 이야기이다. 그가 이루었고, 우리에게 남겨놓은 엄청난 것에 비해 역사에 묻혀버린 그랜트의 삶을 주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엮어 놓은 것이라 볼 수 있겠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떠오르는 강국들에 비해 소외된 저개발국들. 빈곤과 무지로 인해 날마다 4만명의 아이들이 묻히는 땅, 그 땅 위에서 비극을 애도할 새도 없이 남은 이들의 삶을 걱정해야하는 상황. 이러한 세계적 시국에 관심을 두며 어린 시절을 보낸 짐 그랜트는 유니세프의 제 3대 총재가 되어 본인의 아버지 대부터 이어온 신념을 실천하고자 했다.

Yesable 과 Doable 이라는 자신만의 단어를 외치며, 저돌적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는 선장 짐 그랜트였기에 이루어낼 수 있는 성과였다. 무턱대고 그를 따르기엔 힘이 부치는 부하들의 냉소, 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유엔의 관료주의들과의 끝없는 갈등 속에서도 자신이 우선시한 가치 앞에서 흔들림 없는 모습이 인상 깊다. 기업이나 나라를 이끄는 리더의 태도와는 다른 기준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아이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해내겠다는 도덕적 사명심, 휴머니스트 오블리주에서 비롯된 목표의식이기 아니던가.

어릴적 TV에서 보았던, 기아로 인해 죽어가는 소말리아 어린이들을 위한 후원 프로그램이 기억난다. 유니세프의 후원활동이었을까. 어쩌면 짐 그랜트의 작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기억에 난 지금도 기부활동을 하고 있으니, 짐 그랜트의 성공사례를 내 자신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휴머니스트 오블리주. 사람이 마땅히 해야할 사명으로서, 또 의사로서, 그랜트의 의지를 묵묵히 이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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