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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낯익고 낯선
오묘한 빛이 틈새로 새어나오는 벽을 향해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는 한 남자가 실린 표지.
'타인'과 '도시'라는 삭막하고 차가운 두 단어가 앞선 '낯익은'이라는 단어마저 낯설게 만드는 제목.
책 겉면에서부터 강한 매력을 발산하는 이 책은 훌륭하기 이를 데 없다.
최인호라는 거대한 작가가 암투병이라는 꼭 이겨낼 시련 속에서 탈고한 작품.
이러한 작가 본체의 상황마저 소설 속 이야기와 결부되어 환상적인 작품이 탄생한 것 같다.
주인공 K의 사흘.
일주일을 마무리 짓고 주말에 대한 기대로 기쁜 금요일 밤의 한 잔의 술. 그리고 이어지는 낯선 토요일 아침. 또 다시 이어지는 또 다시 낯선 일요일 아침. 월요일 아침의 해후.
여느 때와는 사뭇 다른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의 주인공 K의 행보가 시간대별로 상세하게 낱낱이 고해지고 있다. 정서적, 심리적 상태에 대한 매우 섬세한 표현과 함께. 자칫 쉽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설정이지만 주인공의 심리에 대한 작가의 뛰어난 표현 덕에 이해를 넘어선 동심일체가 되어감을 느낄 수 있다. 때문에 책을 읽다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면 내 주변에 펼쳐진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가 쉬이 느껴진다.
게다가 모든 등장 인물의 이름이 이니셜로 표현 되며, 삭막한 도시의 타인들의 낯섬을 더욱 드러내기 위해서인지 모든 대화체에 '?'가 등장하지 않는다. 제목만큼이나 삭막한 표현들이지만 제목만큼이나 알게 모를 따뜻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의 뛰어난 표현력에 감탄하고 또 감탄한다.
하나가 되는 세상 덕에 사람들 사이에서 다양성이 점차 사라져 가는 듯하다. 하나 같이 예쁘게 성형한 얼굴들, S라인, 조각 몸매, 같은 유행의 천편일률적인 옷... 취향이나 추구하는 바마저 비슷해지는 세상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사소한 자신 모습에서 찾아가는 주인공 K의 정체성, 그리고 먼 타인과 가까운 타인을 구별하기 위한 노력. 굉장히 가까운 곳에서 찾은 아주 낯선 소재로 작가는 현실적인 판타지(?)를 그려 냈다.
읽는 내내 책을 이해하고 빠져들어 하나가 되는데 어려움이 없었으나, 책의 마지막을 맞이한 후 이야기의 전반을 정리하는데는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나의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탓일 것이고, 내가 생각하는 바가 작가가 의도한 바와 일치할까 하는 정답을 추구하는 촌스러운 습성 때문이리라.
에필로그로 실린 소설가 김연수의 후기가 우매한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 더해서 김연수님이 추천하신 최인호 작가의 <타인의 방>도 읽고 싶다. 같은 작가의 비슷한 컨셉의 다른 소설을 읽고 나면 더 많은 이해를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