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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골짜기의 단풍나무 한 그루
윤영수 지음 / 열림원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완벽한 판타지
인간중심주의의 세상에서 못 박은 듯 서있기만 하는 나무이건만, 그 아래에는 어른이(나무 인간)들의 세상이다. 이들의 출생과 성장, 생활 풍습, 신념과 관념 등 모든 것이 완벽하게 짜여져 새로운 판타지가 탄생했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정도의 방대한 세계이나 탄탄한 짜임새 덕에 오롯이 그 세계에 빠져들 수 있다.
나무 인간 '운흘 연토'가 이야기를 진행한다. '검은머리짐승'으로 표현되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주인공 시점에서 보다보면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많은 말들이 물 스며들 듯 느껴진다. 독자에게 완벽한 판타지를 제공하여 인간이 아닌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보게 만든 것이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인간중심주의가 해체된 상태에서 수많은 다른 존재들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숱한 이타적 생명체들을 느끼는 것이 작가가 원하는 것이리라.
인물의 전기인 것도 같으면서 영웅의 서사인 것도 같다. 드라마의 요소가 강하면서도 모험과 투쟁이 있으며, 스릴과 카타르시스도 존재한다. 700여 페이지의 잉크 묻은 종이들이 그들보다 조금더 두꺼운 종이에 쌓여, 마치 한 그루의 큰 나무 같은 위용을 자랑한다. 풍기는 냄새 또한 나무의 그것과 같다. 나무 세상에 완벽히 빠져들게 하기 위한 의도된 장치였을까. 이 책은 존재 자체가 판타지 같다.
등장인물들의 우리말 이름들이 너무 예쁘다. 긴 이야기를 읽는 동안 이 완벽한 판타지는 내 마음 속에 실제하게 되었다. 길가의 풀, 꽃, 나무 들을 볼 때마다 그 예쁜 이름들이 떠오를 것이다. 작가가 산자락에서 우연히 만난 붉은 단풍나무 한 그루. 나도 그런 나무를 만날 때가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