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동화 ‘피터 팬‘편

팅커벨 죽이기 ㅣ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0년 8월

어렸을 때 읽은 '피터 팬' 이야기는 꿈과 환상의 나라에 사는 멋진 존재였다. 영원히 어린아이로 자유롭게 사는 피터 팬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나의 기억 속에 피터 팬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피터 팬, 악당을 무찌르는 피터 팬, 붙잡힌 소녀를 구해내는 피터 팬, 아이들의 영웅인 피터 팬으로 여겨져 왔다. 순수함의 상징인 피터 팬이 고바야시 야스미 소설 <팅커벨 죽이기>에서는 살인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른다고 한다. 희망의 나라 네버랜드도 참혹한 살인사건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피의 나라라고 말한다.

소설가 고바야시 야스미는 명작을 모티브로 한 미스터리 소설, '죽이기 시리즈'로 유명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접목을 시도한 《앨리스 죽이기》를 시작으로 《호두까기 인형》에 미스터리를 더한 《클라라 죽이기》, 《오즈의 마법사》 설정을 따온 《도로시 죽이기》가 있다. 시리즈이지만 현실과 꿈속을 넘나들며 사건을 해결한다는 설정 이외에 내용이 이어지진 않는다. 죽이기 시리즈 4번째 이야기 <팅커벨 죽이기>로 죽이기 시리즈를 만난 나도 책을 읽자마자 고바야시 야스미 작가가 만든 미스터리에 빠져들었다.

피터 팬은 웬디와 소년들과 두 번째 모험을 시작한다. 무작정 웬디네 집을 찾아가 아이들을 데리고 네버랜드로 향한다. 오랜만에 웬디와 소년들을 만난 피터 팬은 기억력이 좋지 않고, 먹지 않아도 배고픔을 모르며, 무례하고 무자비하고, 독선적이며 살인을 서슴없이 저지른다. 피터와 소년들이 집을 비운 사이, 팅커벨이 살해되어 발견되자 범인을 찾기 위한 수사가 시작된다. 탐정은 피터 팬이며 조수는 배고픈 아이들에게 잡아먹힐 뻔한 도마뱀 빌이다. 피터 팬은 범인을 찾으려고 돌아다니다 무차별 살인을 저지른다. 한편 빌의 아바타라인 이모리는 동창회에서 네버랜드의 아바타라(분신)들을 만나고 피터의 살육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를 수습하느라 골머리를 앓는다. 피터와 빌은 과연 살인범을 찾을 수 있을까? 이모리는 피터 팬의 살육으로 인해 발생되는 사고를 막을 수 있을까.

고바야시 야스미의 죽이기 시리즈를 읽어 본 적이 없던 나는, <팅커벨 죽이기>를 피터 팬에서 콘셉트만 가져와 새롭게 만든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로 알고 읽기 시작했다. 피터 팬, 웬디, 팅커벨 등 동화 피터 팬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그대로 나오지만 분명히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끝까지 읽은 후 번역자의 해설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피터 팬'의 비하인드스토리를 알게 되자 <팅커벨 죽이기> 저자 고바야시 야스미가 달리 보였다. 원작 피터 팬의 캐릭터 특징을 그대로 살리면서 현대 사회 문제까지 적절하게 섞어 자신만의 미스터리 소설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피터 팬은 정말 순수하고 친절할까? 피터 팬은 어쩌다 자라지도 죽지도 않는 존재가 되었을까? 네버랜드는 기쁨이 넘치는 꿈과 환상의 나라가 맞는 걸까? 규칙과 규율은 없고 자유만 있는 곳에서 아이들은 행복할까. 어릴 때 막연히 동경했던 네버랜드의 삶은 허상에 불과했다. 꿈이라고 여겼던 네버랜드가 허상임을 깨닫는 순간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닌 어른이 되고 만다. 동심 파괴는 가슴 아프지만 현실을 인식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팅커벨 죽이기>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양하게 넓혀준 책이자 피터 팬의 환상에서 깨어나게 해 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