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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전쟁
이종필 지음 / 비채 / 2020년 6월
평점 :
로봇 만화에 나오는 악당들은 머리가 아주 똑똑하다. 끊임없이 새로운 로봇을 만들어 내 거나 세상을 날려버릴 치명적인 무기를 가지고 있다. 어마어마한 무기도 알고 보면 신기술인데,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서 왜 세상을 파괴하는 악당이 되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과학 기술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우주 과학을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동시에 핵무기를 만드는 이론으로 쓰이기도 했다. 세계 최강의 바둑 기사를 이긴 AI 알파고의 등장은 향상된 인공 지능 기술을 축하하는 사건이자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경고가 된다. 로봇이 사람보다 작업 능률이 높다는 이유로 부당해고 당한 노동자 소식은 이미 만연하다.
우리나라 과학 기술이 세계를 주도할 정도로 발전한다면, 과거를 똑같이 복원해 낼 수 있는 기술이 만들어진다면 국민들은 나라의 어떤 과거를 가장 먼저 복원하고 싶어 할까? 가장 힘들고 수치스러웠던 '나라를 빼앗은 날'의 모습을 복원해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지 않을까.

소설 <빛의 전쟁>은 최첨단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백 년 전 역사를 상기시킨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식민지 역사가 발단되어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 도움이 되는 열쇠는 양자역학, 인공지능, 홀로그래피, 드론 등 최신 기술에서 나온다. 광화문 사거리에 뜬 드론 다섯 대가 이순신 장군의 투구에 시신을 걸었으니, 그 드론은 누가 띄웠으며 어떻게 흔들림 없이 목표물에 정확히 조준했는지 조사하려면 과학 이론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한낱 물리학자가 범죄 사건, 그것도 살인 사건을 해결할 수 있겠냐는 나의 편견은 소설을 읽어갈수록 희미해졌다. 오히려 물리학자의 도움으로 과학수사가 빨리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설 사이사이에 주인공 물리학자 성환이 과학이론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서 소설을 읽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누가 드론을 조종해서 광화문 사거리 이순신 장군 투구에 시신을 걸었나'라는 질문의 답은 곧 밝혀진다. 그러나 범인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이유를 내세우고, 국민들은 범인을 옹호하며, 국가는 신기술을 가져오는 일에 힘을 기울인다. 과학 기술은 대체 무엇을 위한 지식인가. 역사적 상처를 벗어내기 위해서인가, 국가를 부유하게 하기 위함인가,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려는 것인가.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 더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 믿었던 적이 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기술 발전에는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동시에 발생한다는 것을 말이다. 과학을 욕망의 도구로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인문학적 관점을 더한다면 파괴적인 똑똑한 악당은 사라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