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는 남자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4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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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생각나는 책을 읽었다. 아니, 아빠들이란 다 이런 건가 싶은 의문이 들면서도 우리 집 모습과 닮은 면에 격하게 공감하고 웃게 만드는 책인 마스다 미리의 <아빠라는 남자> 에세이집을 읽었다. 아빠의 장단점을 신랄하게 드러내지만, 아빠를 미워하지 않고 인정하는 작가의 글에는 무뚝뚝하고 애정표현에 서툴어도 은근 가정적인 아빠를 향한 사랑이 숨어있다. 이해할 수 없는 아빠라는 사람을 한평생 봐 오면서 아빠가 아닌 남자로 바라보면서 '아빠는 이래야 해'라는 선입견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리라.



"아버지는 '맛있네!' 싶으면 덥석덥석 세 개를 연속으로 먹어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맛있다면 아빠가 세 개, 나랑 엄마가 한 개씩 먹어도 상관없지만, 아빠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추가로 하나 더 먹어버릴 때도 있다. 사람 셋인데, 경단 다섯 개 중에서 네 개를 혼자 먹어 치우다니 대체 무슨 계산법일까?" p.17

'내 아이스크림을 몰래 드신 아빠랑 같네' 하며 한참을 웃었다. 우리 아빠는 상을 차리면 맛있는 걸 먼저 먹고, 과일을 드리면 같이 먹는 사람들을 신경 안 쓰며 마구 드시고, 집에 사다 놓은 간식은 누구 건지 묻지도 않고 홀랑 다 먹어버리는 분이다. 아빠는 왜 저럴까 싶었는데 마스다 미리 작가의 아버지를 보니 아빠만 유별난 건 아니라 다행이었다.



"잡학 상식을 좋아하는 아빠, 역사도 잘 알아서 이것저것 가르쳐줍니다만 가족들은 경청할 때도 있고 그냥 흘릴 때도 있고... 그래도 몇 년이 지나도 기억나는 얘기도 있습니다." p.30

아빠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아는 지식을 전달해야 할 의무를 진 존재일까. 나의 아빠도 예외는 아니다. 어렸을 때 뉴스에서 바나나에 농약이 잔뜩 묻어있어서 몸에 좋지 않다고 보도했다며 바나나를 안 사주었다. 집에서뿐 아니라 밖에서도 먹지 못하게 해서 한동안 바나나를 먹을 수 없었다. 잘못된 정보라는 걸 깨달았는지 어느 순간 바나나 금지령은 사라졌지만, 본인이 아는 상식을 전하는 일에는 여전히 열심을 낸다. 생각해보면 마스다 미리 작가의 경우처럼 도움이 된 정보도 있었으니 아빠의 가르침이 꼭 나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미가 급하고 금방 버럭버럭하는 아빠, 물론 장점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있지만, 나... 이런 사람이 애인이라면 절대로 싫습니다. 절대로 싫지만, 책 읽지 않는 남자가 애인이어도 싫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아빠는 늘 누워서 읽습니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끄떡없는 기색입니다. 책 읽는 남자의 실루엣은 꽤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p.122

나도 작가와 같은 생각을 했다. 딸들은 애인을 사귀기 전 한 번쯤 저런 생각을 해보지 않을까. 아빠랑 부딪히고 싸울 땐 아빠 같은 사람은 절대 안 만날거라고 다짐하지만, 아빠에게서 좋은 점을 발견할 땐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진다. 딸들에게 아빠란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남자임은 분명하다.



밉상스러운 면을 싫지 않게, 가볍고 유쾌하게 표현하는 마스다 미리 작가의 글을 읽으니 아빠들이란 다 그런가 싶다. 이해할 수 없어도 "아빠들이란~" 이 한마디로 넘어가게 되는 사람, 모른 척해도 내가 딸인 걸 알게 하는 사람, 내게 큰 울타리 같은 사람이 나의 아빠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빠가 유난히 싫은 날 이 책을 읽어야겠다. 문득 아빠가 생각날 때도. 그리움과 섭섭함이 웃음과 따뜻함으로 바뀌게 될 테니까.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아빠가 계신 분께,

이 책을 읽으며 '아빠들이란!' 한마디 하시고 아빠를 받아들여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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