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내가 유일하게 책을 모으는 작가 이사카 고타로의 <골든 슬럼버>를 읽었다. 이 책은 일본에서 먼저 영화로 제작되었고 그 영화가 한국에서 리메이크 되었다. 한국판 <골든 슬럼버> 영화는 평점이 바닥이던데 빽빽하게 복선이 얽혀있는 500페이지 장편소설을 2시간도 안되는 러닝타임 내에 어찌 다 설명하겠나. 영화에 실망하신 분들은 부디 책으로 부족함을 달래길 바란다.




온 세상이 추적하는 남자라는 부제를 가진 <골든 슬럼버>는 한 줄의 부제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 한 택배기사가 어쩌다 총리 암살사건에 연루되어 세상의 이목을 받으며 범인으로 지목되었고 경찰을 피해 사흘간 도망치는 이야기이다. 대체, 왜, 누가 그를 범인으로 만들었으며 그가 진짜 범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총리가 폭탄으로 죽었고 그 사건에 대한 책임자가 필요할 뿐이다.



그래서 택배기사 아오야기는 주야장천 도망친다. 시큐리티 포드라는 감시 카메라가 강화되고 핸드폰을 도청할 수 있는 감시사회에서 싸움도 못하는 연약한 남자가 특수한 상황에서 뭐든 가능한 경찰을 상대로 도망치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 여기서 뭐든 가능하다는 건 그를 진짜 범인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오야기는 최선을 다해 도망친다. 순순히 범인으로 자백하거나 죽어버리면 힘든 도주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가 누명을 썼다는 사실을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아오야기가 범인이라는 보도에 의심을 가지고 그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아오야기의 대학 친구들과 무분별한 보도와 감시 시스템에 불만을 가진 살인 용의자 그리고 하수구 전문가. 가짜 증인을 준비하고 아오야기를 만들어 범행에 관련된 영상을 조작해 보도하는데 아오야기 친구들이 어떻게 그를 믿었을까.


아오야기는 8년 만에 연락 온 대학 친구 모리타가 했던 말을 유언처럼 받아들이고 도주하는 내내 이 말을 상기하는데, 이 한마디는 <골든 슬럼버>의 핵심 주제가 된다. "인간의 최대 무기는 습관과 신뢰야." 감시사회에서 모든 정보가 차단되고 조작된 정보만 돌아다닐 때 그 정보가 신뢰할 만한지 아닌지는 그 사람의 습관을 통해 드러난다는 뜻이다. 밥을 먹을 때 늘 밥풀을 남기는 아오야기, 엘리베이터에서 엄지로 버튼을 누르는 아오야기, 절대 치한은 안 될 사람인 아오야기. 이런 사소한 습관이 보도되는 내용과 달랐기에 친구들은 그 정보를 의심하게 된 것이다.



특이하거나 나쁜 습관처럼 보이는 행동이 그 사람을 정의할 수 있다니 재밌는 발상이다. 감시 사회에서 자기들만의 사인이 될 수도 있으니 비상시를 대비하여 나만의 행동을 만들어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열심히 도망가고 또 도망가던 아오야기는 결국 도주에 성공한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오즈월드는 총 맞아 죽어버렸지만 그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진 <골든 슬럼버> 주인공 아오야기는 죽지 않고 살아서 자신이 총리 살해범이라는 걸 의심하게 만들었다. 시스템을 만들고 움직이는 거대한 적을 상대로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거대한 적과 싸울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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