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
엔도 슈사쿠 지음, 송태욱 옮김 / 포이에마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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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나는 책을 읽으며 작가란 말주변보다 글솜씨가 좋은 사람으로 직접 독자와 대면하기보다 책으로 마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도 기발한 이야기를 지었거나 감동적인 글을 쓴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하고 궁금해하곤 했다. 지방에 살아서 물리적인 거리가 멀기도 했지만 초야에 묻혀 글 쓰는 사람이 작가라고 오해했기에 '작가와의 만남'은 상상도 못했다. 요즘은 책을 널리 알리는 목적으로 작가가 직접 독자와 만나고 자신이 쓴 책을 설명하거나 질문을 주고받는 자리가 많아져 나도 익숙해졌지만 1960년대에 '소설가의 문학 강의'가 열렸다는 것이 신선했다. 게다가 그 작가는 언변도 뛰어나서 어려운 문학을 쉽게 설명해 주신다.

엔도 슈사쿠(1923~1996)는 기독교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집필한 일본 작가이다. 이 책은 엔도 슈사쿠가 그리스도교인 소설가로서 집필한 세 편의 소설에 대한 소개와 문학과 종교에 대한 강의로 엮어져 있다. 엔도 슈사쿠는 소설가의 자세, 인간의 악하고 연약한 내면을 통해 다가오는 신의 모습, 문학 작품 속의 숨겨진 의미, 신과 예수의 모습을 설명한다. 한마디로 좀 더 문학에 가깝고 그리스도교 작가가 쓴 문학작품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이 책에는 엔도 슈사쿠의 ≪침묵≫, ≪사무라이≫, ≪스캔들≫과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테레즈 데스케루≫, 쥘리앵 그린의 ≪모이라≫,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이 강의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안타깝게도 한 권도 읽지 못했지만 엔도 슈사쿠가 친절하게 줄거리를 요약해 주시기에 내용을 파악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보통의 소설가와 다른 것은 그 작품 안에서 악이나 죄에 빠진 인간을 고독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것을 돌파하고 지양해서 더욱 절대자로 향하는 지향을, 얽히고설킨 인간 안에서 찾아내는 것이 그리스도교 작가의 한 가지 일입니다."


엔도 슈사쿠는 그리스도교 소설은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증명하는 소설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깊이 들어가다가 만나는 신과 구원이 글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 문학 작품에서는 때로는 자연 묘사로, 때로는 복잡한 심리 표현으로 추악한 인간의 구원 가능성을 언급한다. 잘 짜인 하나의 작품 속에는 작가의 가치관이 세세하게  담겨있다고 한다.  

소설가이기에 작은 이야기밖에 할 수 없다는 엔도 슈사쿠는 그 작은 이야기에 인간의 좋고 나쁜 모든 면을 담고 더 나아가 구원을 이야기한다. 순교하지 못하고, 죄를 짓고, 나약하기에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의 해설을 들으니 그가 언급한 소설과 그의 작품을 읽고 싶어졌다. 어려워 보이는 소설을 읽을 때 엔도 슈사쿠의 문학 해설이 들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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