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 일상, 그리고 쓰다
박조건형.김비 지음 / 김영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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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거실에서 각자의 일을 하는 여유로운 일상이 담긴 표지의 이 책은 남편인 박조건형 님이 일상을 그리고 아내 김비 님이 그림에 대한 글을 쓰신 부부 합동 작품이다. 


결혼을 하고 한 집에서 일상을 보내다 보면 스쳐 지나가는 시간이 많다. 퇴근해서 밥 먹고 치우고 잠깐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금방 잘 시간이 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약간 특별한 주말을 보내고 한 달을 보내면 어느덧 결혼기념일이 코앞에 다가온다. 반복되는 일상으로 사라져버리는 시간이 아쉬워 사소한 에피소드라도 글로 남기고 사진을 찍으려 노력하지만 놓치는 순간도 많다. 별것 아니더라도 기록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기에 지나고 후회할 때도 종종 있다. 그래서일까, 일상을 드로잉으로 남긴다는 것이 특별해 보였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은 4파트로 나뉘어 부부의 특별한 만남과 사랑 / 부부가 살고 있는 집과 생활 방식 / 남편이 일한 노동의 현장 / 남편의 우울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모습도 사랑스러워 보이나 보다. 신랑도 내가 자는 모습, 퉁퉁한 모습 찍어놓고 좋아하는데(물론 나름 예쁘게 찍고 개인 소장하지만) 잘 차려입은 멋진 모습만 담아도 좋을 텐데 하고 혼자 불평하곤 했었다. 박조건형 님이 그린 '아내의 일상'을 보니 좀 달라 보인다. 튀어나온 배 위에 키보드를 올려놓고 pc를 하는 모습이나 폰을 하다 잠든 모습이 사진으로 찍어 그대로 그려서 현실적이지만 사랑스럽다. 작가님의 눈으로 보이는 모습이 투영된 드로잉인 거다. 나도 날 사랑스럽게 여기는 남편의 폰에 어떤 모습이라도 담겨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 분의 공간에는 유머가 깃들어 있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사실적 스케치인데 사진으로는 보이지 않을 수 있는 것들이 들어있다. 애증의 분리수거를 하는 남편의 오묘한 얼굴표정과 어정쩡한 자세,  수채구멍에 모인 아내의 머리카락 등 너무 디테일해서 재미있다. 별 것 없는 현실에서 재미를 찾아내는 작가의 눈이 부럽다.



"남편의 노동에, 아내의 노동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관심을 두고 있을까?

혹시 통장에 찍히는 숫자 몇 개로만 그 의미를 파악하며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다음번에 그가 새로운 직장을 갖게 되면 그가 하는 일을 꼭 세세히 알아보고 이해하고 싶다. 그래야 우리의 노동에 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까. 
그의 노동이 아닌, 우리의 노동."

박조건형 님은 현장 노동자로 오랫동안 일을 했었다. 일을 하면서 쉬는 시간마다 현장을 손으로 담았는데 내가 보지 못한 강도 높은 노동의 현장을 볼 수 있었다. 본인이 겪었기에 더 사실적이고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드로잉 주제로 쉽게 관심을 가질 수 없는 현장을 그려냄으로 노동자의 애환을 담았다. 최근에 '한국전력 하청 노동자의 현실'이 tv 다큐멘터리로 방영되면서 다시 한번 현장직 노동자의 처우 개선이 언급되었다. 그때 tv에 나온 분들이 생각나는 드로잉이다. 직접 일해보지 않으면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다 알 수 없다. 그래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땀을 보며 내가 이렇게 불편함 없이 살고 있는 것도 저분들의 노력 덕분이구나 싶어 고맙고 감사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는 여전히 너무도 많은 일을 꿋꿋하게 해내고 있다. 
거기에 온 힘을 다한, 가장 고통스러운 혼자만의 싸움까지 더해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아남으려 하는 한 사람이다."

남편 박조건형 님은 우울증이 심하다. 25년간 우울증을 앓아왔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려고 운동도 하고 일을 하고 집을 나섰지만 어느 순간 심해져서 일상적인 생활이 쉽지 않다. 그래도 살려고 애쓰는 모습이 드로잉에 담겼다. 이 책도 처음엔 박조건형 님의 단독 책으로 기획되었다가 무기력으로 포기하려던 차에 글 쓰는 아내가 힘을 더해 함께 만든 것이다. 박조건형 님의 솔직한 그림과 담백한 글에 김비 님의 감성과 생각이 더해져 풍성하고 여운이 남는 드로잉 에세이가 되었다. 이렇게 멋진 책을 함께 만들고 언제나 내조하는 아내가 있기에 박조건형 님의 우울은 곧 힘을 발하지 않을까 싶다. 


평범함 우리네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일상 드로잉, 너무 흔해서 재미없고 지루한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일상에서 자신에게 행복을 주는 요소들을 쏙쏙 뽑아 특별한 그림으로 만드는 박조건형 님의 드로잉 솜씨와 그림을 더 매력적으로 보게 하는 김비 님의 글솜씨가 적절하게 어우러져 시트콤 같은 드라마가 되었다. 무거운 현실을 무겁지 않게, 사소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기억에 남게 만든 두 분의 능력 덕분이다. 

부부의 행복한 일상을 들여다보고 나니 나의 일상도 예쁘게 보였다. 버스를 기다릴 때의 하늘이, 다 되었다고 증기를 내뿜는 전기밥솥이, 피곤이 눈에 보이지만 웃으며 들어오는 신랑이. 

그리고 다짐하게 된다.

'반복되는 일상으로 인해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지 말자, 나의 편의를 위해 수고하는 모든 분들의 노력에 감사하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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