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
장강명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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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인기 작가 8인의 목록을 보자 어떤 글이 담겨있을지 궁금했다. 할리우드 액션 히어로처럼 영웅을 추켜세우는 히어로물은 별로인데, 세탁소에서 무수히 많은 히어로 옷 중 하나를 꺼내 입은 듯하고 옆집 아저씨나 동네 오빠 같은 친근함이 느껴지는 표지라 걱정은 내려놓고 책을 펼쳤다. 


이 책에는 시대별로 각양각색의 히어로가 나타난다. 8인의 작가가 각각의 슈퍼히어로를 만들어 하나의 책으로 엮은 단편집이다. 8개의 단편 중 마음에 들었던 몇 편만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가장 기대했던 장강명 작가의 '알골'은 3명의 히어로가 정신적으로 연결되어있다는 발상이 독특하다. 다만 짧아서 아쉽다. (후속편도 써 주세요~.)

두 번째 단편 소설은 임태운 작가의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이다. 히어로가 많다는 제목처럼 갑작스럽게 달에 나타난 빨간 구조물로 인해 지구 인류 2할에 육박하는 자들이 초능력을 각성하게 되었다. 그 능력으로 파괴를 일삼는 악당과 악당을 무찌르는 히어로가 급증했다. 이로 인해 정부는 인기를 얻으려고 과도한 방어를 하며 사회에 피해를 주는 히어로들의 능력을 없애기 시작했다. 사실 악당을 잡는다고 돈을 벌거나 승진하는 것도 아닌데(기본적으로 누가 히어로인지 아무도 모르기에 히어로들은 2중 생활을 한다) 누굴 위해 그리 애쓰는 걸까 싶다. 어쩌면 자신의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 히어로(일명 다른 사람, 인기인)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일 좋았던 단편은 구병모 작가의 '웨이큰'이다. 이 소설은 필리핀 아내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한국인 프로그래머인 남편은 자신이 만든 가상현실 시스템에 갇힌 초등학생 아이들을 구하러 들어갔다가 시스템 셧다운 전에 빠져나오지 못해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있다. 아내는 한국어가 서툴지만 그동안의 일들을 빠짐없이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거기에는 파견직의 비애, 도덕과 정의감, 편견과 선입견, 용감한 행동, 응원의 메시지를 건네는 손길이 포함되어 있다. 짧은 글에 많은 것이 담겼지만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오히려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필리핀 아내의 말을 통해 내가 가졌던 선입견과 편견을 반성하게 된다. 또 세상의 모든 라리(딸 이름)들을 위해서 그리고 직업적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목숨이 위태로운 줄 알면서도 시스템을 바로잡기 위해 가상현실로 들어간 남편과 같은 선택을 나라면 했을까 하는 질문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메아리친다. '그와 같은 선택을 못 할지라도 계약직이라며 책임회피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해 본다. 지금은 '슬리핑 맨'이지만 언젠가 깨어날 남편, 그는 자면서도 우리의 마음을 '웨이큰'하고 있는 히어로이다. 

이외에도 항상 같이 다녀야 하는 '저격수와 감적수의 관계',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판관 오리의 재산을 빼앗아 나눠주는 '영웅도' 일화, 독특하며 반전이 있는 '캘리번', 취하면 헐크가 되는 여자와 그녀의 남자친구 이야기인 '주폭천사괄라전', 악당이 된 히어로를 잡는 이야기인 '로그스 갤러리, 종로'까지 다채로운 슈퍼히어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소설 한 편 한 편 읽으며 한 편의 영화가 계속 떠올랐다. 영화 '염력'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이다. 우연히 염력을 가지게 된 그는 용산 철거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딸을 돕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한다. 화려하지 않고 뛰어난 능력이 없어도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는 히어로가 바로 '염력'의 주인공이고, 이 책에 나오는 히어로들이다.

히어로라고 하면 평범한 나와 동떨어진 SF 소설 속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 내가 그 히어로라면 과연 좋은 점만 있을까? 모든 히어로가 늘 대중의 환호를 받을까? 그들은 주목받고 있기에 더욱 행동 가지를 바르게 해야 하며 대중에 묻힐 수 없다. 그리고 자신들이 가진 역량에 따라 비교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어로들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는 선택을 한다. 근방의 너무 많은 히어로가 계속 그런 선택을 하길 바란다.

 그동안 봐 왔던 히어로물에 대한 선입견을 깨 준 재밌는 책,
다양한 상상력으로 내가 히어로라면 어떻게 할지 고민하게 만들어 준 책,
다음 편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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