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중력 - 사소하지만 소중했고 소중하지만 보내야 했던 것들에 대하여
이숙명 지음 / 북라이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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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물건이 나를 잡아당기는 힘은 얼마나 될까? 쉽게 말해 내 물건들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어떤 것은 그 물건의 무게보다 더 강하게 날 잡아당기고, 어떤 것은 그 무게에 못 미칠 만큼 미련이 없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집'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소유욕은 집이 있어야 채워지는 것이라 언급했다.) 자라면서 여기저기 거처를 옮겨 다니게 되면서, 특히 방학 때마다 기숙사에서 짐을 싸서 나와야 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애정 하던 물건이 이동 중에 사라지거나 상자 속에 고이 보관되어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되면서 물건에 대한 애착은 더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미니멀라이프'에 꽂혀서 어떻게 하면 물건을 잘 버릴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사물의 중력은 유유자적한 삶을 원하는 작가가 '집'에 발목 잡히지 않기 위해 물건을 정리하면서 그동안 자신을 거쳐갔던 물건들에 대한 기록을 쓴 책이다. 난 한 번도 나의 물건들에게서 추억을 떠올린 적이 없는데... 이런 작은 에피소드들을 모아 둔 작가가 멋지고, 작가의 관찰력이 부럽다.

300페이지도 안 되며 한 손에 들어오는 이 작은 책에는 나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문장이 잔뜩 들어 있었다. 자신의 취향을 과시하지도 남의 취향을 무시하지도 않는 작가의 스타일이 너무 마음에 든다. 자신이 간직했던 물건을 소개하지만 그 물건에 그녀의 생각이 담겼고 그녀의 취향을 볼 수 있고 그녀의 마음이 있었다.


태풍이 온다는 뉴스에 "드디어 이걸 쓸 수 있어!"하면서 장화를 신고 나가면 이내 비가 그쳤다. 장화가 비에 젖는 대신 장화 속 내 발이 땀에 젖었다.

나에게도 비 오는 날 신는 장화가 있다, 일명 레인부츠.  장만한 지 벌써 8년이 다 되어가는데 신은 횟수는 열 손가락에 꼽는다. 신고 벗기 쉽게 앵클부츠라면 좀 불편해도 신어보려 노력했겠지만 어쩌다 긴 부츠에 꽂혀서 무릎 아래까지 오는 긴 레인부츠를 사서 몇 번 못 신었다. 나름 투자한 거라 버리지도 못하고 팔기에도 유행이 지나버렸다. 올해도 가뭄이라 창고에서 꺼내지도 않았는데 내년에는 버려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짐인 걸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마음, 나의 레인부츠는 나에게 강력한 중력을 행세하고 있나 보다.


"쇼핑은 마감 때 하는 거라고 가르쳐준 게 선배잖아요."
과학자들은 쇼핑에서 얻는 쾌감이 오르가즘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러니 스트레스를 받으면 작은 립스틱 하나라도 사려는 심정을 이해 못 할 바가 아니다. 동료들에겐 저마다의 '립스틱'이 있었다.
20대에는 귀걸이를 모았다. 저렴하지만 내 눈에 예뻐 보이는 독특한 큰 귀걸이를 잘도 사 모았다. 그 귀걸이들이 계속 귀를 잡아당겨 아플 즈음 필요한 생활용품을 구입하기 위해 다이소에서 소소한 쇼핑을 시작했다. 그다음엔 틴트, 아이섀도, 그리고 문구류 가끔 책으로 이어졌다. 그 당시엔 좋아하니까 사는 거라고 여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사는 즐거움'이 있었나 보다. 역시 '가벼운 쇼핑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랄까!


꼭 아끼는 물건이 아니어도, 돈을 좀 들였거나 아직 제 구실을 하는 물건을 처분할 때는 골치가 아프다. 끼고 살자니 공간이 부족하고, 버리기는 죄스럽고, 누굴 주자니 아깝고, 파는건 귀찮다. 이럴 때 최선은 나보다 그 물건을 아껴줄 사람, 내가 그 물건보다 아끼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돈을 들인 건 아니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인생의 책이 될 수 있기에 나의 취향이 아닌 책은 읽고 서평을 쓰고 나눔을 한다. 나보다 더 좋아해 주길, 책을 읽는 시간 동안 즐겁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작은 나눔에도 감사하는 사람에게 더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직 쓸 만하지만 새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선뜻 나눔을 건네지 못하는 물건들이 있는데 아무래도 버려야 할 것 같다. 삶이 풍족하기에 나눔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 아쉽다.


사는 것to buy이 사는 것to live이다.

내가 가졌던, 내가 가지고 있는, 내가 처분하고 싶은 물건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었다. 소유의 의미와 소비의 의미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이 생겼다. 앞으로도 살면서 끊임없이 물건을 사고 버리고 또 모으겠지만 사물의 중력에 붙들려 괴롭지 않도록 버릴 때 잘 떠나보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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