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씨의 의자
노인경 글.그림 / 문학동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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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한 권 책 읽기 프로그램을 통해 오랜만에 그림책을 읽었다. 내용도 모르고 설명 없이 읽은 책인데 짧은 이 책이 내 마음 깊숙이 들어왔다. 곰씨가 꼭 나 같아서, 소심한 나를 대변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개인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읽은 뒤 여운이 깊게 남았다. 


곰씨는 긴 의자를 가지고 있다. 그 의자에서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차도 마신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던 곰씨의 앞에 커다란 배낭을 멘 탐험가 토끼가 지나갔다. 곰씨는 그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쉬었다 가라고 말한다. 곰씨의 의자에 앉은 탐험가 토끼는 곰씨에게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곰씨는 함께 차를 마시며 경청했다. 잠시 후에 깡충깡충 춤추다가 조용히 마을에서 쫓겨난 무용수 토끼가 그들을 지나가기에 탐험가 토끼가 위로를 해 주었고 둘은 마음이 맞아 결혼을 했다. 그리고 곧 그들에게 아이가 태어났다. 태어나고 또 태어나고 곰씨의 의자를 점령할 만큼 많이 태어났다. 곰씨는 탐험가 토끼 군과 무용수 토끼 양의 결혼을 축하해주고 아기의 탄생을 기뻐했지만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수 없게 되자 점점 괴로워졌다. 그러나 그는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고민 끝에 혼자 의자에 누워 시집을 읽거나, 한자리만 남겨두고 페인트칠을 하거나, 큰 바위를 의자에 올려놓으려 하거나, 혼자 앉는 의자를 만들거나, 아무도 앉지 못하게 똥을 싸는 시도들을 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비를 맞아 감기에 걸려 쓰러진다. 그러자 토끼 가족이 다가와 정성껏 간호를 해 준다. 병이 나은 곰씨는 결국 토끼 가족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전하고 편안하게 잠이 든다.

소심한 곰씨의 모습은 나를 닮았다. 탐험가 토끼 군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차를 제공한 것은 곰씨의 본심이 틀림없다. 친절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지친 탐험가 토끼가 쉬어가길 바라는 착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 그러나 각자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친절의 양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얼마 전 나도 곰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밖에서 만나면 시간이 어정쩡하고 모두 불편할 것 같아서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와 어린 딸이 있는 친구를 우리 집에 초대했다. 누군가를 집에 초대한다는 것은 집을 미리 청소를 하고 대접할 음식을 준비해 두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평일에 회사에서 일을 하고 쉬고 싶은 토요일이었지만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집을 정리하고 요리를 했다. 그런데 두 친구는 예상 시간보다 늦게 왔고, 밥을 먹으면서도 둘만의 근황을 물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 집에 초대되어 왔는데 정작 나에게는 관심이 없어서 마음이 상했다. 괜찮은 척했지만 섭섭함은 안팎으로 티가 났다. 결국 나는 배탈이 나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친구들도 편하게 놀지 못한 체 중간에 헤어져야만 했다. 

곰씨처럼 혼자 해결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진 못했지만, 친절한 곰이고 싶었다며 절규하는 곰씨의 모습은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 주었다. 특히 횡설수설 자기 생각을 말할 때, 곰씨가 얼마나 고민하며 상대방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을까 하는 부분에서 크게 공감이 되었다.

하지만 곰씨는 자신에게 혼자만의 공간과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화가 아닌 말로 표현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했다. 회피하고 싶고 돌아가고 싶고 때로는 남이 나의 기분을 짐작하여 알아주기를 바라지만 때로는 직설적으로 표현해야만 한다는 것을 곰씨는 알려 주었다. 나도 곰씨와 같이 말하지 않고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상대방이 이해하도록 나의 속마음을 잘 설명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을 결혼하고 난 뒤에 많이 깨닫고 있다. 나의 솔직한 기분과 감정을 알기를 원하는 신랑은 늘 나에게 "왜 그래?"라고 물어보지만 나의 이기적인 마음에 대해 질타를 받을까봐 혹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지적을 받을까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한다. 그래서 말하지 않으려는 나와 말해 주기를 원하는 신랑은 가끔 다투는데 결국 내가 나의 속마음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을 때 우리의 감정이 해소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을 읽으며 곰씨처럼 자신의 속마음을 말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신랑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고 나는 곰씨처럼 용기 내어 속마음을 잘 전달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곰씨의 의자'는 곰씨 같이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 나를 위로해주고 나의 잘못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책, 마음속 깊이 기억될 감동적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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