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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과 사랑의 대화
김형석 지음 / 김영사 / 2017년 6월
평점 :
“어려운 말들로 씌여진 쉬운 책”
책장의 마지막을 넘기며 문득 든 생각이다. 김형석 교수님의 책은 쉬운 단어로만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영존성, 신앙에 관한 내용, 철학자 개인들의 철학. 다양한 사고와 표현이 망라 된 인생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을 수 있던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인본주의적, 인애주의적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행복을 찾고 불을 밝히며 나아갔던 한 인간의 역사이기 때문이었다.
책의 서사구조는 단순하다. 작가는 말하고 나는 듣는다. 덤덤한 문체와 표현들로 나를 위로한다. 98세의 작가가 가져온 인생은 차라리 한 세기의 역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나로서는 결코 경험해 볼 수 없었던 시대와 그 시대를 겪은 자의 이야기. 이는 단순한 서사구조를 떠나, 어떤 몽롱한 감각들을 일깨워주는 요소로서 작용했다.
나는 결코 에세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어떤 에세이는 너무 희망적이며, 어떤 에세이는 매우 모호하다. 겪은 일에 대한 이야기는 실제와 같기도 하지만 먼,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영원과 사랑의 대화’는 조금 다른 에세이었다. 담담하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듯 읊조린다.
“사람은 왜 사는 것일까? 나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다” -83p-
조금만 철학의 역사나 스스로의 본질에 다가가야겠다고 생각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한 두 번쯤은 자신에게 던졌을 법한 질문이다. 나 또한 항상 묻는다. “나는 왜 살아야 하며, 어떻게 내가 존재하게 되었으며,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나아가야 하는가” 막막하다. 존재의 본질을 알기엔 가진 지식이 얕고, 사고는 편협하며, 인지는 부족하다. 그럼에도 궁금하다. 항상 왜 이렇게 다르게 주어진 삶 속에서 고통받고 고난을 걸으면서도 우리는 살아야 하는가. 문득, 한 tv프로그램에서 박신양씨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박신양씨가 러시아 유학을 가 있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삶이 너무도 괴롭고 외로워 병원을 찾았다. 그렇게 찾은 병원에서 그는 의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왜 저는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요?” 그러자 의사는 대답했다. “왜 당신의 삶이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라고.-
작가도, 의사도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단서를 던질 뿐이다. 영원하지 않은 인간의 삶. 불완전하게 설계된 인간.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탐구하고 맞서 싸우며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그 와중에 좌절과 실망 불행을 겪고, 그 모든 것을 담담하게 인내하고 즐기며 토로할 수 있을 때 인생은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거기서 깨닫는다. 내가 가는 길이 결코 잘 못 되지 않았음을. 이미 이 것을 생각하고 더 나은 인간을 지향하며 걷는 내 모습이 어쩌면 꽤나 아름답고 멋있는, 내가 나아가야할 맞는 길일 것이다라고.
“이렇게 해서 나는 남이 소유하는 것은 다 버려도, 남이 자기의 것으로 할 수 없는 것은 모두 내 것으로 하자고 마음에 타일렀다” -164p-
얼마 전 내 머릿속에 가득 들었던 생각이다. 소유의 본질. 자본주의에서 물건을 소유하는 것. 그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지에 대해 깊게 파고 들었었다. 작가는 한 때 내가 가졌던 생각. 물질이야 내 한 몸 누일 공간과 허기를 유지 하지 않을 정도의 식량. 그 정도 외에는 별반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다만, 인간으로서, 부모로써 해야 하는 역할에는 깊게 책임을 지고 행동한다. 현실과 이상사이의 모호한 경계에서 그 만의 잣대를 세우고 행동했다는 것은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새로운 느낌이었다. 그 동안 생각했을 때 돈에 대한 나의 정의는 “돈이 많은 사람이 반드시 행복하지는 않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불행하다.” 정도였다. 때문에 어느 정도의 돈이 나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도와주고 그 삶 속에서 내가 원하는 방향을 지향할 수 있을 정도의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의 근간에는 돈을 탐하는 순간 이상과 멀어지고 현실과 타협하게 될 나의 모습이 두려워서였다. 그런 시각에서 작가가 취해온 삶의 태도나 방식은 신선하면서도 반대로 열망하는 미래의 모습에 가까웠다.
진리가 영원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불변성이 아니라 근원성에 있다. -219p-
진리란 무엇일까. 내용을 읽으며 안을 깊게 들여다본다. 불변성. 변하지 않는 성질이다. 진리란 답인가? 진리란 수학 문제처럼 명확한 공식과 풀이로 인해 나아가야할 어떤 지향점에 끝에 있는 것일까. 작가는 불변성이 아니라 근원성을 논한다. 근원적이라는 것은 뿌리에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근원성이란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가를 찾아 전진하는 것”이라고. 그가 신을 대하는 입장에서 입각해 본다면 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이다. 그에게 신은 진리이며 진리는 근원적으로 인간을 구원하고 사랑받게 하며 충만하게 하는 주체일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진리의 참 뜻이 뭐기에 저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찾아본 결과 진리란 “인식에 관한 초월적인 가치이며, 지성(知性)이 노리는 목적으로서의 초월적인 대상이다.” 읽고 보니 좀 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무신론자의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 진리는 오직 초월적 대상을 목적 삼을 때만 찾을 수 있는 것인가. 때문에 사고를 바꿨다. 무신론자의 진리는 그 스스로가 갈구하고 찾아나아가야할 ‘신’ 그 자체라고 말이다.
영원한 것에 대한 그리움이 없었던들, 누가 내 발을 일보라도 옮겨 놓을 수 있었을까? -320p-
마지막 챕터는 작가가 알던 한 교수의 일기에 대한 내용이었다. 나는 이 부분에서 가장 크게 감명을 받았으며, 또한 충격을 받았는데, 이는 그 일기의 내용이 어느 수행자가 고통 속에서도 평정을 유지하며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을 원한다. 사랑은 어떤 이에게는 정열적으로 타오르는 장미 같은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하고 깊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마치 우주나 우주너머의 블랙홀처럼 모호한 세계의 이야기 일 수도 있다. 나는 사랑을 많이 해보지 못했다. 심지어 대부분 결실을 맺지 못했거나, 결실을 맺기 위해 물을 주는 노력조차 안 해 본 경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나는 늘 사랑을 갈망했고 염원했다. 그런 나의 관점에서 사랑은 너무나 모호했지만 우주처럼 멀다기 보다는 아름다운 외국의 풍경처럼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 이유로 책에서 교수나 타인들이 취했던, 그 당시에만 존재할 수 있었던 감성이나 감정, 상황들은 너무나 천천히 느긋하게 흘러들어와 눅눅하고 끈적하게 가슴에 내리 앉았다.
“소유와 영원과 사랑의 본질에 대해 적힌 노래”
정리를 하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사실 본질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약간 억지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전혀 기대하지 않고 봤던 에세이가 가져다 준 가슴의 파장은 결코 적지 않기에 저렇게 적고 싶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아간다. 끝없이 존재를 찾고, 사랑을 갈고하며, 소유에 집착한다. 나 역시 그렇고 내 주변의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그 근원에 대해 스스로에 대해 좀 더 알아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면, 그 지침서로써 오랜 세월과 풍파를 맞서 싸워온 이의 역사를 한 번쯤은 읽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