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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 1
네빌 슈트 지음, 정유선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10월
평점 :
이 책의 저자는 네빌 슈트님이다. 난 무엇보다도 그가 소설 <피리 부는 사나이>의 저자였다는 것이 놀라웠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독일 하멜른의 아이들이 사라진 사건을 다룬 이야기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가다가 다리가 불편한 아이가 일행에서 쳐진 뒤 그 사실이 마을 주민들에게 알려졌다. 그러자 정작 아이는 자신이 따라가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면서 울고 있었다. 이 스토리는 현실에서 피리 소리를 갈망하면서 따라가야만 하는 일상을 비판하면서 여러 가지 새로운 버전으로 많이 회자되고 있다.
네빌 슈트님의 두 번째 작이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이다. 이야기는 마치 한편의 장편 서사시를 보는 것 같다. 이야기의 시작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영국 런던이다. 가죽 제품 공장의 속기사로 일하던 '진 패짓'이 자신이 전혀 알지 못했던 삼촌으로부터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는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자신이 전쟁 당시에 정착했던 어느 마을에 우물을 지어주기로 결심한다. 그곳에서 우물 공사 인부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그녀 역시 전쟁 중에 있었던 가슴 아픈 일을 떠올리며 그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털어놓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일본군이 말레이에 상륙한다. 일본군은 여성과 아이들을 포로로 사로잡는다. 여성들을 위한 포로수용소가 있다는 거짓 정보에 포로들은 걷고 또 걷는다(일본군이 포로를 한곳에 두지 않고 이리저리 이동을 시켰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서로 포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함이다). 말라리아, 이질 같은 풍토병, 열병, 탈진 등으로 일행들은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래도 걸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뿐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군가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아도 너무 지쳤기 때문에 살려고 버둥거리기도 힘들다는 듯 무기력했다.(117쪽)
이 책의 1권을 읽을 때, 사실 좀 지루하다. 별다른 흥미를 끄는 사건이 없이 그냥 밋밋한 이야기의 연속이다. 재산 유산에 대한 법률적인 이야기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잠시 참아야 한다. 그렇게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이 소설의 백미인 로맨스 부분을 맞이하게 된다. 그 처절한 전쟁 지옥 속에서도 사랑은 피어났다. 전쟁이 끝나고 영국으로 돌아와 일상을 보내던 주인공은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는다. 그녀는 마침내 그 시절 연인을 찾아 나서고.....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다. 아마도 이런 러브스토리는 현대에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좀 더 특별하고 아름답지 않나 생각된다.
조 하먼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에 품고 있는 자기만의 장소가 있는 거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곳은 앨리스 스프링스 주변 지역이에요."(151쪽)
이것을 읽는 순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어딘지 떠올려 보았다. 바로 세네갈 사막 마을인 음보로비란 마을이다. 바로 나의 일터이자 안식처다. 코로나로 잠시 한국에 머물렀지만, 내일이면 그곳으로 떠나야 한다. 내가 가장 마음에 품고 있는 장소다.
다이내믹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책의 스토리는 어울리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옛 것이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시대가 오는 것 같다. 음악계의 트로트 열풍이 좋은 예이다. 단조로운 곡조이지만 깊이 있는 가사가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주기 때문은 아닐까?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은 마치 트로트 같은 작품이다. 강렬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진한 기운이 묻어 나오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