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가입니다, 밥벌이는 따로 하지만
김바롬 지음 / 에이치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나는 작가입니다. 밥벌이는 따로 하지만>.

제목에서 왠지 모를 깊은 맛을 느낀다. 그래 맞아. 작가는 돈이 안되잖아. 그래서 밥벌이는 따로 해야 하고.

나도 작가이고 싶다. 그래서 그런가? 이 책은 내가 내야 할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나도 매일 무언가를 쓰고 있다. 누가 억지로 시키는 일도 아닌데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그날은 왠지 허전하다.

이 책의 저자는 '김바롬'이다. 지난 10년간 각종 밥벌이를 하며 세월을 보냈다. 돈을 벌기 위해 참아야만 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지. 청소 공사판, 세차장, 농장, 식당, 공장, 심지어 호주에 가서 워홀까지. 그러는 동안에도 항상 글쓰기가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손이 가는 대로 쓰고 있다. 그는 얘기하고 있다. '무언가를 쓰는 이상 나는 이미 작가고 앞으로도 작가일 거라고. 비록 여전히, 밥벌이는 따로 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을 깨달을 때가 종종 있다. 원래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갑자기 배려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관용을 베풀기도 한다. 그러면서 삶의 의미를 하나하나 배워나간다. 김바롬 작가도 다양한 알바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이리저리 부닥치고, 힘들어 지치기도 하고, 욕지기가 올라올 때도 많았을 것이다. 그때의 상황을 글로 써 내려가면서 인생의 참 의미를 하나하나 배워나간다. 작가가 33세의 나이라는 것에 놀랐다. 마치 50세 이상인 나보다 더 인생을 많이 산 것처럼 그의 글들이 구수하다. 나랑 친구해요. 김바롬씨.

사방 5미터 남짓한 주방에 갇혀 하루 열 시간씩 일했지만, 딱히 우울할 것도 없었다. 인생에 주어지는 시간 대부분은 성취가 아니라 견디는 데 쓰게 된다는걸, 그때의 나는 이미 알았기 때문이다. (p.98)

작가가 호주의 멜번시 한 식당에서 일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 중의 하나다. 그렇다. 인생에서 뭔가 성취를 하려면 너무 힘들다. 그냥 견디면서 하루하루 사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소중히 여기고 그 순간에 집중을 하다 보면 좋은 결과는 따라온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누군가에게 자꾸만 보여주기 위해서 경쟁하면서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김서방 보다 더 잘해야 하고, 이서방 보다 더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하루를 바쁘게 움직인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나 자신을 혹독하게 다루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작가는 수년 전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한 뒤 세계여행을 다니고 있는 케이라는 남자를 만났다. '뭐야?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나?' 기껏 호주에서 알바나 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여 열등감도 가졌겠지. 질투도 느끼면서. 하지만 케이는 이렇게 살아서 잃는 것도 많다는 얘기를 한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서 열등감이 사라졌다. 케이는 여행을 통한 자유, 영어와 요리 실력, 인간다움 등의 장점이 있지만, 생활 안정, 더 많은 기회, 인간관계 등 잃는 것도 많았던 것이다.

카를 융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 인간이 성공을 위해 앞으로 나아갈수록 우리의 그림자는 똑같은 크기만큼 지옥에 내려가 악마가 된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얻는 것이 탐나기도 하지만 우리의 인생에서는 쓸모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에게 열등감도 질투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누군가가 얻은 것이 무엇이 됐든 정확히 그만큼 잃은 것이 있을 테니까.

난 요즘 수필 읽는 즐거움에 빠졌다. 수필 속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이 가진 두려움을 이겨나가는 과정을 볼 때마다 나도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이 책은 나도 수필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해 준다. 나의 글이 졸필이 되어 때로는 부끄럽겠지만 뭐 어때.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나한테 아무 관심이 없는데. 그냥 써 내려가면 되지 뭐. 손이 가는 대로. 어차피 힘든 인생. 그 인생을 견뎌나가기에 글쓰기 보다 좋은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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