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 시인선 80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어떤 경우에는 사람들의 자폐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자주 공격성으로 변질되기도 하는 그것이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가시적인 장면들을 상상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자폐적이지 않은 사람인가를 떠올려보면 결국 모두 다른 방면으로의 자폐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폐쇄적인 공간 그러나 그 내부를 이루는 것들이 각자 다른 개별의 공간 속에서 자꾸만 사람들은 몸을 웅크리는 것이다. 


 기형도의 시집은 기형도만의 자폐적 공간에 놓여있다. 기형도의 공간에는 날카로운, 금속석의 어떤 물질 대신 안개가 있다. 기형도는 낮게 깔린 어둠 속에 있다. 그것이 기형도 스스로가 시에서 밝힌 '이미 늙은 사람'의 느낌인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 시들의 과한 징징거림과 '나좀 봐달라'는 어떤 날카로운, 위험천만하고 어찌보면 화려하기까지 한 느낌 대신에 '나 혼자 슬픈 노래를 부르겠다'는 느낌의 조용하지만 만연한 자폐다. 


2 이제 나는 나의 자폐적 공간 속에서 발견한 좁은 틈으로 타인과 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엿보며 지낸다. 


3 유난히 추종자가 많기도 하고, 또 표제작을 무척 감명깊게 읽었기 때문에 기대했던 시집이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다음으로 미뤄뒀던 시간이 10년도 더 넘는 것 같다. 최근에야 처음 시집 전체를 읽으면서 차라리 10년 전에 읽었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예전에는 그저 그 마무리가 아름답다고만 생각 했던 요절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요즘은 '이 작가가 더 무르익었다면 어떻게 변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4 어쨌거나 개인이 감당하지 못하는 어둠들과, 그 방향으로 지어진 자폐의 공간에 대해 요즘 접하는 시들은 거진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고 그런 분위기가 이제는 시에 만연하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읽기에 기형도의 시들이 가히 와닿지 않는지도 모른다. 당대는 서정시가 주류를 이루던 때이기 때문에 기형도의 시가 주는 어떤 날카로운 면모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5 잎 속의 검은 잎이나 익히 알려진 빈집이 주는 느낌들 보다는 그 외의 시들이 좀 감정인 상위층에 놓여있다고 말해도 좋은 걸까. 날카로운 어둠이 음습함보다는 더 낮은 위치의 우울이라는 내 생각대로라면 그렇다. 어쨋든 시집은 전체적으로 생각했던 것보다는 밝은 느낌. 그러나 그 또한 어두운 측면으로 난 자폐성을 아직 벗어나지는 못한 느낌도 함께 가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