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섹스는 왜 펭귄을 가장 닮았을까 - 다윈도 알지 못한 지구상 모든 생명의 사랑과 성에 관한 상식과 오해
다그마 반 데어 노이트 지음, 조유미 옮김 / 정한책방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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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이런생각이 듭니다. 별 다섯개를 백점만점으로 생각한다면 별 세개는 60점쯤 되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까지 별점을 5점으로 매긴 책이 없고 (언젠가 단한권의 인생책을 만난다면 그책에 5점을 주기 위해) '인생책' 그 직전의 모든 책들에 별점 4점을 주고 있으니, 별점이 3점이라고 해도 인생책 직전 직전의 책들입니다. 아주 잘 읽은 책들입니다. 60점대에 61점부터 69점까지의 스펙트럼이 있듯 별점 3점의 영역 속에도 상 하가 있겠습니다. 이 책은 소수점 아래자리를 버림한 3.75점의 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최소한 이정도는 돼야 책이라고 낯짝을 들고다니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어디에나 그렇듯 출판가에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출판사들이 있습니다. 유능한 작가들과 턱턱 계약을 맺고 출판사 이름이 곧 마케팅이 되는 회사들입니다. 그런 곳들의 책은 회사빨로 괜찮아 보이는 경향도 있겠지만, 믿고 읽을 수 있을만한 최소한의 퀄리티가 보장됩니다. 장사가 될만한 책들을 선별해서 출판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책을 좋아하는 소비자의 고오급 눈높이에 적정한 혹은 이정도면 우리회사 얼굴에 먹칠하지는 않겠다 하는 책들만 출간하겠죠. 


 문제는 그 이하의 출판사들입니다. 회사마다 소신을 가지고 경영하는데 어떻게 급을 나누겠냐만은, 매출의 문제도 있고, 돈문제를 떠나 소비자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이 회사는 이 회사보다 덜 신뢰가 간다던지, 이 회사는 이 회사보다 책의 퀄리티가 떨어진다던가 하는 높낮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기준으로 생각할 때 '그 이하'의 출판사들에서 내는 책들이, 결론만 말하자면 '엉망진창'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말이 길어지니 요점만 말하자면 업계에서 어정쩡한 입지를 가지는 출판사들이 이미 커져있는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 내는 상업적이고 어줍잖은 책들보다 오히려 요즘은 '독립' 이라는 문구나 '1인' 이라는 문구를 달고 다니는 소규모 출판사들이 손으로 하나하나 도자기를 빚어내듯 만들어내는 책들이 읽을 가치가 있을 확률이 더 높더라는 말입니다. 


 결국 세상은 상업화에 너무 신물이나서 클래식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저의 개똥철학에 확신을 더해주는 사례들이 몇가지 있는데, 그중 한가지가 요즘 출판업계 굴러가는 모양새 입니다. 이런 상업화된 구조에서 벗어날래! 하고 뛰쳐나온 예술가적 성향이 짙은 몇몇 편집자분들이 그동안 본인이 거대 출판사에서 쌓아왔던 역량을 퍼부어 정말이지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며 또 그것을 출판하는 행위 자체가 대단히 예술적이기도 한 책들을 찍어내고 있습니다. 그런 출판사에는 신기하게도 매니아들이 생겨나 어느정도 회사가 굴러갈 정도의 매출은 되지만, 제 바램은 이런 곳에서 만들어낸 책들이 얼마나 좋은지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발 이런 출판사 경영자분들이 일을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좋은책들을 계속해서 더 많이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다른 책들 독후감 한편 분량에 해당하는 저런 긴 잡얘기를 왜하냐면, 이 책을 펴낸 정한책방이 그런 좋고 멋진 곳들중 하나라서 그렇습니다. 물론 소규모의 출판사중에는 트루로 친구와 함께 쌍욕을 퍼부으며 요즘 책내기 쉬운가보라고 아무글이나 다 책으로 낸다고 뒷다마를 깠던 출판사도 있었지만 여기는 아닙니다. 정한책방은 다른 것 같습니다. 이 출판사의 천정한 사장님을 뵌적이 있었는데, 책 한권한권에 대한 애착과 집념이 대단하신 분이었습니다. 좋은 책에 대한 열망이 남다른 분이었죠. 저 개인에게는 별로 좋은 인상은 아니었지만 책에 대해서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어쩐일인지 저 개인에게는 굉장히 까탈스럽고 그런 분이었지만 또 그것이 사회적 책임에 무디거나 젊은이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어른으로써 존경할 수 있는 어른이라는 것은 사실 - 그런 책임감들이 결과물에도 베어나오는 거겠죠) 


 아무튼 이 책은 사장님에 대한 개인적인 인상이 별로라 덮어만 두고 있던 책이었는데 읽을 책이 다 떨어져 뒤적이다가 단숨에 읽어내려간 책입니다. 




 인간의 섹스가 왜 펭귄을 가장 닮았는지 궁금해서 이 책을 선택하신 분들은 생각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에 당황하실 수 있습니다. 잡스런 책들에 함께 쌍욕을 퍼붓던 친구와는 이 책을 '펭귄책'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는 펭귄이야기가 그렇게 많이 담겨있지 않습니다. 제목만 보고 저는 이 책이 인간의 섹스의 특징과 의미같은 것들을 죽 나열한 뒤에(약 10%정도) 곧바로 펭귄의 습성으로 넘어가서 펭귄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한 뒤(80%) 인간과 펭귄의 어이없는 연결을 통한 철학적인 메시지(10%)로 마무리하는 책일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펭귄이야기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예전에 봤던 황제펭귄 다큐를 두차례 정도 떠올릴 만큼 밖에 담겨있지 않습니다.


 이 책은 제목 아래 달린 '다윈도 알지 못한 지구상 모든 생명의 사랑과 성에 관한 상식과 오해'에 더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단세포 생물과 같은 미물에서부터 인간이라는 만물의 영장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들의 번식에 대해 과학적으로 굉장히 깊은 지식을 전달해 줍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책은 그 과학적 팩트가 시사하는 바를 간결하게 전달하는데, 그것이 제가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인 짧은 과학적 사실을 가지고 길고 장황한 철학적 이야기를 뽑아내는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나 개인적이라 일기에나 쓸법한 사념이 아닌 '인간의 성에 대한 이해'라는 목표에 명확하게 다가가는 고찰들입니다. 인간의 성이라고 하는 타이틀 아래 수많은 궁금증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 성욕, 임신, 육아, 결혼, 외도, 동성애, 페티쉬 등등 수많은 질문들을 앞서 말했듯 미생물을 비롯 각종 동식물의 종족번식 사례를 통해서 풀어갑니다.


 책이 말하는 방법을 가만 들여다보면, 생물의 번식 방법 중에 이런 형태가 있는데 그런 형태를 띄는 이유는 무엇때문이다, 이런 형태는 또 어떤 것에 유리하기 때문에 이렇게 발달한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어떠어떠한 인간의 성은 어떤어떤 이유때문에 이렇게 발달한 것이다. 또 그것이 어떤것에 유리하고 어떤것에 불리하다. 이런식입니다.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이 독후감처럼 잡소리 없이 몹시 흥미로운 팩트들을 이야기해주고 그 팩트들을 통해 알게된 새로운 팩트들을 알려줄 뿐입니다. 팩트들은 생각보다 과학적으로 몹시 깊은 지식들이면서도 흥미로운 내용도 많을 뿐만 아니라 저자가 글을 잘씁니다. 재미나게 쓰기 때문에 재미가 납니다.  


 생각나는 팩트들을 몇가지 써보자면 단세포생물 중에 어떤 생물은 여성으로만 이루어져 있답니다. 대신 죽은 동료의 사체에서 DNA를 접수해서 번식을 해나간다고 합니다. 이 방법은 만약 DNA에 결함이 생긴다면 그 결함이 대대손손 전달되다가 더욱더 악화되는 파국을 초래합니다. 남녀로 분리되는 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에 선택적으로, 진화론적으로 대다수의 생물들이 분화된 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인간은 자신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처음의 사랑인 부모와의 사랑 때문에 부모와 닮은 배우자를 선택한다고 합니다. 어릴때 양부모에게 길러진 자녀들은 양부모와 닮은 배우자를 선택한다고 합니다. 그럼 닮은 정도가 아니라 그 자체인 부모님이나 형제들을 사랑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냐? 6세 이전에 가족 관계를 쌓은 사람에게는 성적으로 끌리지 않는다고 하네요. 실제로 수많은 근친관계 중에는 6세 이전 떨어져 지내다 만난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책에서는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론들로 다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위의 근친에 대한 이야기에도 6세 이전에도 꼭 붙어다녔고 태어나 단한번도 떨어진적 없는 형제지만 서로를 사랑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겠고, 동성애나 페티쉬 등 이론으로 설명 가능한 종족의 번식과는 맥락이 다른 성적 취향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작가는 에필로그 직전의 마지막 챕터에서 기가막힌 이야기를 적어두었습니다. 


219p 그리고 또 한 가지, 동물 세계에는 동성애에 대한 증오가 없다. 같은 성끼리 섹스하는 것을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뉴욕 동물원의 로이와 실로도 펭귄 공동체의 완벽한 일원으로 살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펭귄인 에릭도 동료에게 따돌림 당하지 않고 에리카로 잘 살고 있다. 자연은 판단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인간뿐이다. 아마도 그것이 유일하게 부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리고 작가를 따라 '아마도' 인간의 섹스를 펭귄과 결부시킨 제목의 저의는 바로 저부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 책의 멋진 점은 인간의 어떤 것도 이상할 일이 아니고 그 모든것이 '자연스러운' 일임을 책 한권에 걸쳐 애둘러 설명한뒤 한방에 콕 찔러 제목을 저렇게 선정한 점입니다. 밤 늦게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고 하늘의 별이 아름다웠고 자고있는 부모님의 숨소리와  또 창밖의 모든 일들이 마냥 평온하게 느껴졌습니다. 멋져멋져.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과학을 통해 인간의 육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몹시 잘 설명해주었지만 그것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정신적인 작용들에 대해서는 너무 간결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뭐 그게 더 안전하니까, 혹은 욕구 때문에 등등의 이유가 적혀있었지만 오늘도 또 어딘가의 어떤 사람들을 밤잠 설치게 만들고 온 세상에 울려퍼지는 유행가가 동시다발적으로 사랑타령을 하고 있다는 게 고작 그런 이유였단 말이야? 생각하게 하는 너무 짧은 설명이었죠. 그런데 그점의 해결은 다음에 읽게된 '반야심경' 풀이 책(읽을 것이 떨어져 아버지 책장을 뒤지다가 나온 책)이 해줬습니다. 


 깨달음을 얻는 데 '육체'는 사다리의 첫번째 칸이라고 합니다. 반야심경 책에는 생물학이나 진화론 같은 '과학'도 같은 예로 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육체를 향한 맹목적인 추구는 사다리를 올라가지도 않고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는 꼴이랍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첫번째 칸을 디뎌야 다음 칸으로 넘어갈 수 있죠. 육체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다음 단계인 정신작용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고도 적혀져 있습니다. 『인간의 섹스는 왜 펭귄을 닮았을까』가 인간의 정신작용을 이해하는 데 첫단추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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