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52
오스카 와일드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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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땀한땀 수놓아 완성한다는 것이 드라마 속 주인공이 입고나와 유명해진 그 옷을 만든 장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며칠간 미술관에서 아르바이트 하고 있다. 이 지역의 미술가들이 대거 작품을 출전해 만든 전시회라 회원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중, 내가 일하는 5일간 하루도 빼먹지 않고 미술관 문 여는 시간과 문 닫는 시간에 맞춰 미술관으로 와 자신의 설치 작품을 확인하고 흐뜨러진 부분들을 수정하시는 분이 계신다. 첫날은 대체 누구시길래 작품도 완성 못시키고 이제와 수정하시나 했고 이튿날은 혹시 내가 못미더워 저러시나 했다. 그리고 셋째날에는 대체어떤 작품이길래 저렇게 공들이시나 싶어 미술관에 비치된 도록을 읽어보고 인터넷에서 작가 정보를 찾아봤다. 


 그분의 작품은 '소음'을 주제로 해 여러 장소에서 사라진 기억처럼 없어져버린 소리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작품은 여러가지 구상물들을 한 데 모았기 때문에 처음봤을땐 의아할 수 있으나 의미를 알고나면 구성물들 하나하나가 작가의 마음속에서 제각각 하나의 의미들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그것이 혹여나 관람자에 의해 훼손되거나 위치가 흐트러지면 작품의 의도가 깨지는 것일 수 있겠다. 관객의 눈에 아주 작은 부분이라 할지라도 작가의 눈에는 그 한 부분조차 작품의 의미를 품고 있는 요소인 것이다. 남이 보기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 같아도 말이다.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미술관으로 출근하셨던 것. (그리고 그분의 작품은 여러모로 취향저격이기도 해서 다른 전시가 열리면 보러가기 위해 이름을 기억해두기도 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또한 그렇게 하나하나, 한땀한땀 공들인듯한 작품이었다. 지인이 먼저 읽고 '내가 읽기엔 너무 어렵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것이 어떤부분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어떤 책들은 문장이 읽기 좋게 쓰여 앉은 자리에서, 그곳이 어떤 자리든지, 스르륵 읽어내려갈 수 있는 것들이 있는 반면 이 책처럼 한 문장 한 문장에 공을 들여 몇 번이나 책을 잠시 덮고 의미를 헤아리지 않으면 안되는 작품들도 있다. 널리 알려진대로 대단한 유미주의자이기도 한 오스카 와일드의 유일한 소설. 그리고 그의 아름다움에 대한 철학이 그대로 집대성된 단 한권의 책. 오스카 와일드는 그의 내부에 있는 아름다움에 관한 모든 것들을 이 한 권의 책에 모두 쏟아넣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주인공인 도리언 그레이, 바질 홀워드, 헨리 경의 인생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뭔가를 끊이없이 추구하고 그 과정에 있어서는 어떤 시련도 침입할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 드리워져 있는 듯한, 예전에 서평으로 한번 작성한 적이 있는 '필경사 바틀비'같은 외골수적 성향이 짙었다.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결국 작가를 따라갈 수밖에는 없는 모양이다. 오스카와일드 또한 숱한 비난에도 끄떡없이 자신의 철학을 담아 이 책을 써냈으니.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오스카와일드는 한문장 한문장에도 그런 집념을 주입했다. 그래서 턱턱 막히고 한문장 한문장을 공들여 그림그리며 읽지 않으면 나중에는 너무나 터무니없고 맥락없는 이야기로 읽히고 말도록 써서 이야기를 완성했다.


 예를들어 소설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바질 홀워드의 작업실 장면은 작업실의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전경에 대한 묘사나 헨리경이 도리언 그레이에게 말하는 젊음에 관한 충고, 도리언그레이에게서 바질 홀워드가 발견한 순수하면서도 파괴적인 아름다움, 초상화에 관한 묘사 등등 작품 전반을 꿰뚫는 장면임에도 도입부를 대충 읽고 어서 서사가 펼쳐지기만을 기다리며 슬슬 넘기다가는 나중에는 갈피를 잃게 된다. 이후에 등장하는 인물들간의 대화또한 마찬가지다. 오스카 와일드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철학의 대상을 비단 이야기 속에만 담은 것이 아니라 문장, 구성, 담화문, 등장인물들의 철학 속에도 담았다는 것에 계속해서 감탄하며 읽었다. 


 심지어 소설 속 도리언 그레이의 변화 또한 오스카 와일드는 결코 '타락(아름다움의 세계에서의 탈락)'의 관점으로 담아내지 않고 '추의 아름다움(또다른 아름다움)'으로 담아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오스카와일드가 '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라고 밝혔던 도리언 그레이는 끝까지 아름다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이끌어 낸 것은 끊임없이 어떻게 살고자 했던 도리언 그레이의 철학의 반영이고 그렇게 뭔가를 끊임없이 추구한다는 점 자체가 독자로 하여금 한 번 더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도록 이끄는 부분이 아닌가 한다. 


 모든 면이 너무도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이것이 소설이 아니었다면 미술관에 매일 출근하시는 작가분처럼 작품을 완성한 이후에도 또다른 강박을 느껴야 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그 자체로 무결하게, 어느 한군데 빠짐없이 오스카 와일드와 그의 아름다움에 대한 집념, 그런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오스카 와일드의 생을 드러내는 소설이었다. 이 작품과 오스카 와일드의 생애는 '필경사 바틀비'를 읽었을 때처럼 여러모로 나에게 교훈을 주었다. 그게 꼭 예술적인 측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또한 그렇다. 읽은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자꾸만 소설 속에 담겼던 문장들이나 장면들이 여기저기를 쿡쿡 쑤시고 있다. 나의 생도 이토록 고집스럽게 아름다울 수 있을지 자꾸만 생각해보게 되는 날들이다.





42p 젊을 때 당신의 젊음을 깨달으시오. 쓸데없는 것에 귀 기울이거나 희망 없는 실패를 만회하려 발버둥치거나, 아니면 무지한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 저속한 사람들에게 당신의 삶을 내주면서 당신의 황금 시절을 헛되이 낭비하지 마시오. 그 모든 것은 다 우리 시대의 감상적인 목적이고 그릇된 이상에 불과하고. 당신의 삶을 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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