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는 것과 만들어지는 건 그렇게 다르다. 태어난다는 건 목적 없이세상으로 배출되어 왜 태어났는지를 계속 찾아야하는 것이기에, 오로지 그것뿐이기에 그 해답을 찾는 시간만큼 심장의 시계태엽은 딱 한 번 감겼지만 만들어진다는 건 분명한 목적으로 세상에 존재한다. 이유를 찾아야 할 필요도 없이 존재하는 동안 끊임없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야 하는 것. 그렇기에 목적을 다할 때까지 망가지지 않도록 만들어진 것은 계속 엔진을 교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랑이 말했다. 그 말은 목적을 다하면 꺼버린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 P9
사막 한가운데 우물이 있다. ~ 예전에는 오아시스라 말하기도 했지만 시간이지날수록 점점 메말라가는 그것을 더는 오아시스라 부를 수 없었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이름을 없애기에는 물이 있었던 곳이라는 희망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우물이 되었다. 차오르기도 하고 메마르기도 한 어느 순간부터는 늘 메말라 있기만 했지만. - P15
불현듯 재생되는 것은 마치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와 인간을 마비시키는 그리움 같아서 나는 그것을 흉내 내고 싶다. 감정을 훔칠 수 없으니 베끼는 것이다. - P16
‘바람이 불지 않으면 사막은 단숨에 그림이 돼.‘ 랑은 그렇게 말했다.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다.‘ 내가 반박하자 랑이 다시 반박했다. ‘식상한 말 하지 마‘ 나는 말을 이었다. ‘그림에는 감정이 들어가고 사진에는 의도가 들어가지. 감정은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고 의도는 해석하게 만들어. 마음을 움직인다는 건 변화하는 것이고, 변화한다는 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다는 것. 그래서 인간은 정지해 있는 그림을 보고도 파도가 친다고, 바람이 분다고, 여인들이 웃는다고 생각하지. 사진은 현상의 전후를 추측하게 하지만 그림은 그 세계가 실재한다고 믿게 돼.‘ - P19
‘그럼 역시 그림이 맞아. 사막은 아무 의도가 없어. 사막을 판단하는 건 사람의 감정이니까.‘ 랑에게 사막은 어떤 존재이기에, 그토록 원망하고 분노하며 하염없이 바라보았을까.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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