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세실 > 일기쓰기 어떻게 가르칠까
웅진에서 나오는 엄마는 생각쟁이 1월호에 쓴 글입니다.
-------------------------------------------------------------------------- 일기쓰기 어떻게 시작할까
우리 반 1학년 꼬마들은 매일 아침 선생님 책상위에 일기장을 쌓아 놓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선생님이 짬을 내어 읽어본 뒤에 빨간 펜으로 뭐라 써주시는 그 말씀을 잔뜩 기대한다. 물론 선생님은 과한 칭찬 몇 줄을 써준다. 아이들과 일일이 눈도 못 맞추고 하루를 보내기 일쑤인데, 이렇게 일기로 만나 몇 마디 나누는 순간을 아이들이 행복해 하니 참 좋다. 잘 썼으면 잘 쓴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칭찬해준다. 놀라운 것은 아이들의 글 솜씨가 시간이 지날수록 진지해지고 분량도 길어진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읽어주는 관심을 통해 아이들은 누군가 내 글을 읽는다는 의식을 하며 글을 쓸 때 한 번 더 생각하고 쓰게 된 것이다. 물론 선생님의 희망처럼 모든 아이들이 글을 잘 쓰게 되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복합적인 여러 원인이 있기 때문에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일기를 통해 선생님과 나누는 애정행각이 야기하는 일말의 질투심이 혹시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오늘도 아이들 일기를 읽는다..
일기를 열심히 쓰면 어떤 점이 좋을까
몇 년 전에 가르쳤던 4학년 아이는 아빠의 명령이라며 늘 일기장 한바닥을 꽉꽉 채워서 써왔다. 물론 내용은 중간 이후로 가면서 앞에서 한 말을 지루하게 재방송 하고 있다. 그리고 우연하게도 이년 후에 동생도 우리 반이 되었다. 그런데 동생도 일기장 한바닥을 다 채워서 써왔다. 아빠의 놀라운 교육관이었다. 재미있게도 두 녀석 모두 시간이 흐를수록 글 솜씨가 늘었다. 억지로 한 페이지를 채우느라 두 녀석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기까지 했는데, 그 고통은 확실히 가치가 있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작은 일도 섬세하게 느끼고 표현할 줄 아는 글 솜씨로 조금씩 발전한 것이다. 그런 의욕에는 일기를 읽어주는 아빠와 선생님이 있었기 때문에 더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칭찬 속에 쓰는 일기는 좀 더 정교한 표현이 가능해 진다. 표현이 정교해 진다는 것은 정교한 사고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 전학을 와 마음 붙일 곳이 없었던 1학년 우리 반 아이도 일기로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며 아주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잘 쓰게 되었다. 어떤 날은 두 페이지 가득 쓰기도 한다. 글은 역시 쓰면 쓸수록 느는 게 틀림없다. 경제에만 빈익빈 부익부가 있는 게 아니다. 일기를 잘 쓰는 아이는 점점 더 잘 쓰게 되고, 쓰기 싫어하는 아이는 점점 더 안 쓰게 되니 말이다. 글쓰기 훈련에 일기 쓰기가 어떤 도움이 될까
매일 나에게 벌어지는 하루 일 중에 한 가지를 골라 글 한 편을 써내는 일은 최고의 습작과정이다. 따라서 일기쓰기는 글쓰기에 전적으로 도움이 된다. 첫째,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아이들 일기에 주된 소재로 등장하는 저녁식사 메뉴의 경우를 예로 들자. 만약 매일 먹는 식사와 별다를 바 없다면 아이들은 글감으로 고르지 않는다. 어제와 다른 매운탕이나 삼겹살이기 때문에 특별하다. 그리고 다음 날 같은 메뉴라면 아이들은 또 다른 곳에서 글감을 찾게 된다. 저녁식사처럼 일상에서의 작은 변화를 글감으로 찾는 노력이 쌓이면서 세상을 대하는 시선은 점점 더 세밀하게 발전한다. 같은 것 속에서 다른 것을 찾아내는 것은 글쓰기의 기본이다. 둘째, 다양한 표현으로 발전한다. 책 읽은 이야기를 쓰는 경우에 무조건 ‘재미있었다’라는 표현만 썼지만, 반복하다 보면 좀 다른 나만의 다른 표현을 쓰고 싶어진다. 그래서 ‘즐거웠다.’, ‘기뻤다’처럼 한 번 더 다른 표현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런 재미가 바로 글 쓰는 매력이다. 셋째, 생각하는 힘이 키워진다. 아이들에게 주제를 정해주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한 손에는 연필을 잡고 망연히 하늘을 보며 생각을 한다. 그러다 툭 생각이 나서 금세 쓱쓱 쓰거나 그리는 아이가 있고, 한참이 지나도 무엇을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아이가 있다. 아무리 글 솜씨가 출중해도 쓸거리를 정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즉 글쓰기에는 사고의 과정이 거쳐 가기 마련이다. 일기를 쓰면서 생각하며 겪는 치밀한 사고의 과정은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키는 자극제이자 든든한 영양분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일기를 잘 쓰기 위해 아이가 갖추어야 할 요건
글을 잘 쓰는 비법은 일단 많이 써보는데 있으며, 더 잘 쓰고 싶으면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쓰면 되고, 정말 더 잘 쓰고 싶으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독서를 많이 해서 배경 지식이 풍부하면 쓸거리는 더욱 풍부하다. 길을 지나다 세차게 부는 바람을 만났다. 그 순간 겨울바람 한줄기를 느끼면서 읽었던 책의 한 장면이 떠오를 수도 있다. 일기거리는 벌써 정해졌다. 또 독서는 다양한 어휘와 다른 사람들이 글 쓰는 방식도 저절로 배우게 된다. 심심 할 때 친구들과 끝말잇기 놀이나, 스무고개 놀이, 의성어로 다양한 장면 상상하기 같은 놀이를 하면서 말의 재미도 느껴보자. 무엇보다 대상의 작은 차이도 느끼는 관찰력이 자세한 글쓰기에는 꼭 필요하다. 차분히 생각하면서 하늘이나 나무처럼 주변의 대상을 주시하는 습관, 일이 일어난 순서대로 생각해보기는 관찰력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일단 마음의 부담을 덜고 즐거운 자세로 일기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선생님이나 엄마, 아빠가 읽어 주는 일이 기대되고 즐거우면 좋겠다. 그러니 일기에 꼭 속마음을 털어놓는 비밀을 쓰라고 강요하지도 말자. 그저 일상을 편안하게 글로 쓰고, 그 안에서 생각을 키워가는 즐거운 과정이 되도록 도와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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