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받는 지배자 -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김종영 지음 / 돌베개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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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붉은눈님의 리뷰를 읽고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나는 이 책을 다른 인터넷 서점을 통해서 구매한 사람이다. 얼마 전 이 책을 구입하여 통독을 하였고 현재는 또 다른 사회학자인 김경만 교수의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두 책의 저자 모두 치열하게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고 있는데 나는 이 책들이 일견 다른 듯 하면서도 많은 부분에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점차 깨달아 가고 있다. 어찌되었거나 이 책, 『지배받는 지배자』의 논의가 내가 평상시 관심을 갖고 있는 논의들과 대단히 밀접히 관련되어 있었고 여러 가지로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마지막 장에 이를 때까지 눈을 책에서 뗄 수 없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사회학을 통해 어떻게 “학술적으로” 사회현상을 분석할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저자인 김종영 교수는 치밀한 이론적인 논의와 15년간의 현장연구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는데 이러한 점만으로도 이미 이 책이 기념비적 저서라고 생각한다(나는 이러한 나의 생각을 다른 인터넷서점의 리뷰에도 적었다.). 이 책은 미국유학 혹은 한국의 엘리트사회에 대한 단순히 현황을 보여준다거나 실태를 고발하는 식의 저널리즘적인 책도 아니며 최근 횡횡하고 있는 대중교양서적(~콘서트, ~식탁, ~인문학 시리즈 등등)도 아니다. 이 책은 한국사회에서 만연해 있는 미국유학 현상에 대한 (내가 아는 한 거의) 이론적인 논의를 동반한 최초의 경험적 연구를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받고나서 첫 페이지를 펴는 순간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 까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완독을 했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나서 문득 개인적으로 자주 방문하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는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서 방문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알라딘 서재를 중심으로 한국의 인문사회서적을 소비하는 광범위한 교양대중 혹은 공중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서 자주 방문해 내가 궁금해 하는 책의 반응을 살펴보곤 한다. 그러다 붉은눈 님의 인상 깊은 리뷰를 보고 나 또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붉은눈 님처럼 조만간 유학을 가게 될 학생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한국 유학생이 열등한 학생으로 추락하는 부분에서는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이야기 혹은 다가올 나의 미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편, 붉은눈 님은 어떠한 전공이신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현재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공부하고 있고 또 그중에서도 사회학에서 이루어지는 논의에는 다른 분야보다는 친숙하게 느끼고 있다. 이러한 한줌의 동질감 속에서 나는 붉은눈 님의 리뷰에 대해 나 나름대로 대답을 해 보려고 한다.

 

붉은눈 님은 이 책에서 저자인 김종영 교수가 “우리 학문의 종속성”을 분석한 글이라고 정리하였다. 붉은눈 님의 요약은 그가 쓴 “4.”에 정리되어 있는데 그에 따르면 소위 미들맨으로써 한국의 지식인은 트랜스내셔널의 갭 사이에서 이득을 취하고 있는 “보따리 장수”로써 미국의 헤게모니 재생산에 기여를 하고 있다. 한편 그는 세부 항목들을 통해 이 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다음의 네 가지로 재구성할 수 있다: 1) (직전에서 언급했듯이) 이 책은 “우리 학문의 종속성”을 분석한 글이다. 2) 퇴고의 문제 3) 알 수 없는 용어와 용법이 난무하다 4) 글의 장르에 대한 의문: 보고서?

 

본격적으로 붉은눈 님의 리뷰에 대한 반론을 펴기 전 나는 붉은눈 님이 지적한 “2) 퇴고의 문제”와 관련되어 주술관계가 일치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등의 기술적인 점에서는 일부분 동의한다. 실제로 내가 혼자서 읽을 때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붉은눈 님이 지적한 부분들에서는 일부 주술관계 부분에서의 문제와 함께 영어식 표현이 보이기도 한다. 이는 붉은눈 님이 대단히 꼼꼼하게 이 글을 읽었음을 보여주는 지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부분을 제외하고 붉은눈 님이 언급한 나머지 세 부분, 다시 말해 1번, 3번, 4번에 대해서는 나는 그러한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

 

먼저 1)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자. 물론 붉은눈 님께서 이야기하셨듯이 그리고 수많은 언론기사들(검색을 해 보니 이 책에 대해 많은 언론기사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이 지적하듯이 저자는 이 책의 상당부분을 한국의 지식엘리트가 “열등한” 엘리트라는 점을 강조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이는 저자의 주요 논지의 일부분만을 지적하는 것이다(일부분 중에서도 저널리즘이 선택하기에 가장 섹시한 주장!). 이 책의 에필로그에 적혀 있듯이 이 책의 핵심은 “학문은 더럽다.” 라는 것이다. 우리는 학문을 순수한 열정을 바탕으로 진리를 향한 제한 없는 (민주적? 귀족적?) 토론이라고 상상한다. 하지만 15년간의 현장연구를 통해 저자는 한국의 학문세계 또한 불평등하고 구조화/계층화 되어 있다는 점을 이론적 논의와 함께 현장연구를 통해 “실제로” 혹은 “경험적으로” 드러냈다(저자는 이렇게 위계서열이 있는 상황을 피라미드로 비유를 하고 있다.). 여기에서 구조화/계층화가 “불평등”하다는 것은 과학자들 간의 상호인정을 넘어서 불평등한 특수주의적 규범(학부학벌, 미국대학학벌, 젠더, 성격 등등)이 지배적이라는 지적이다(저자의 과학자 사회의 보편주의-특수주의 구분은 머튼의 과학사회학의 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특수주의적 규범은 한편으로는 한국의 소위 “학문후속세대”로 하여금 미국으로 떠나게 하면서도 동시에 그중 일부에게는 한국으로 금의환향을 할 수 있는 지렛대로 작용을 하고 있다. 한편 그러한 루트를 택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미국유학을 통해 미국 대학에서 자리를 잡거나 미국/한국의 직장에서 일을 하는 등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 지금껏 시사칼럼이나 에세이와 같은 식으로 이러한 식의 이야기를 하는 필자들은 많았지만 대부분 주관적인 인상비평에 머물렀다. 따라서 이런 차이점은 이 책의 가치가 한층 돋보이게 만든다.

 

한편, 이 책의 용어와 용법의 난해함에 대한 붉은눈 님의 지적 3)은 다소 괴이하다. 각 학문분야마다 그 학문분야의 핵심적인 개념과 어휘들이 있듯이 사회학에서도 사회학적인 개념들이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왔고 이를 바탕 아래 고도로 추상적인 이론적 논쟁에서부터 경험적인 논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들이 확장되어 왔다. 이처럼 전문성을 바탕으로 구성된 논의의 장을 부르디외의 이론을 빌리자면 사회학의 학문적 장(혹은 사회학계)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시중에 유통되는 미국 유학 가이드를 읽는 것이 아니라 미국유학에 대한 학술적인(사회학적인) 연구를 책으로 읽는다면 당연히 그러한 용어와 용법에 있어서의 낯설음은 사회학의 학문적 장으로 진입해 가는데 치루어야 하고 극복해야 할 상징적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붉은눈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학문적 글쓰기는 오로지 동료 전문가가 읽는 논문으로만 한정되어야 하고 책에서는 대중성을 갖추어야 하는가? 나는 내가 자주 찾는 광화문 교보문고의 철학 칸에 꽂혀있는 무수히 많은 책들을 보면 그러한 주장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학의 예를 들자면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등 읽기에 대단히 벅찬 양서들에 대해서 번역에 대한 일부 논란은 보았어도 그 책들에서 저자들이 제시하고 있는 개념과 용법이 대단히 난해하기 때문에 책으로 출판되면 안 된다는 식의 주장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책과 마찬가지로 스튜어트 홀, 아넷 라루, 폴 윌리스의 저서들 또한 이론적인 논의와 현장연구를 통한 경험적 데이터가 결합되어 있는데 이를 두고 용법과 용어가 난해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식의 주장을 하지 않는다. 이는 수학 수식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수학 학문분야의 연구 성과를 보여주는 책을 읽더니 수식이 지나치게 많다고 불평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한 사회에 대해 학술적인 연구를 한 다음 이를 책으로 출판하는 경우와 기존에 남들이 해낸 연구 성과들을 재주껏 요약해서 만들어내는 대중교양서적은 반드시 구분되어야 하며 각각의 독자성을 인정해야 한다.

 

참고로 붉은눈 님이 인용한 부분 중 “대학은 학문의 성지(temple)인 동시에 일종의 분류 기계(sorting machine) 또는 체(sieve)다.” 라는 부분은 Stevens, Armstrong, Arum이 Annual Review of Sociology에 출간한 논문, “Sieve, incubator, temple, hub: Empirical and theoretical advances in the sociology of higher education” (2008)과 맞닿아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 논문은 지금껏 고등교육사회학에서의 논의를 정리하여 보여준 대단히 중요한 논문 중 하나이다. 만약 붉은눈 님이 고등교육사회학 혹은 교육사회학의 기본적인 문헌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면 이러한 표현에 대해서도 익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상징적 자본의 부재는 이러한 표현의 맥락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뜬금 없다거나 부적절하다는 생각을 하게 할 수도 있다. 여기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사회학적인 책을 읽기 위해선 사회학의 학문적 장에서 사용되는 용어와 용법에 익숙해 져야 하는 상징적 비용을 치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만약 그러한 비용을 치루고 싶지 않다면 연구서가 아니라 대중교양서적을 읽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보고서의 문체라고 지적한 4)에 대해서도 동의를 할 수 없다. 물론 저자의 문체가 다소 건조하고 하다는 점은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대중서와 같이 친절한 글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심지어 (기억이 맞다면)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던적 조건』은 맨 처음에는 보고서로 제출되었다가 단행본으로 출간된 책이다. 그리고 이 글이 일부 언론에서 지적하듯이 저널리즘적이라건 학술적인 연구와 대중서의 한 가운데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전적으로 질적 연구와 질적 연구의 글쓰기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일 뿐이다.

 

한편, 나는 붉은눈 님이 지적한 부분을 뛰어 넘어 도리어 이 책의 하위챕터 간에 존재하고 있는 긴장감에 대해서도 지적을 하고 싶다. 많은 언론기사에서 보여주듯 저자는 많은 부분 한국의 “열등한” 엘리트가 어떻게 탄생하는가에 대해 쓰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저자는 미국 유학 후 한국으로 돌아온 한국 학술세계의 구성원들(교수 등)에 국한되지 않고 그외의 다양한 삶의 양상을 포착해 내고 있다. 즉, 저자는 앞서 언급하였듯이 미국유학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미국 대학에서 자리를 잡거나 미국/한국의 직장에서 일을 하는 등 앞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또한 다루고 있다. 나는 이러한 분리로 인해 저자의 논점이 두 가지로 확장되었고 내부적으로 이 두 가지 논점 사이에서 일종의 긴장감을 느꼈다. 다시말해 트랜스내셔널한 미국유학의 양상 전체를 보여주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와 한국의 "열등한" 엘리트 형성 자체에 포커스를 맞춘 저자의 의도 사이에서 논점이 모아지지 않은 채 분리되고 있어 보인다.  

 

지금까지 내가 쓴 글은 내가 이 책을 사서 읽고 또 붉은눈 님의 리뷰를 보고 적은 간략한 스케치이다. 듬성듬성 부족한 부분도 많지만 이렇게 학술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책이 앞서의 리뷰에서 제대로 파악되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이 들어 이렇게 글로 적어 보았다. 분명 이 책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경험적인 연구를 통해 산출된 어떤 사회학적 작업보다도 치밀하고 세밀한 작업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당장의 논문실적을 위해 진행하고 있는 논문을 여러 편으로 쪼개고 비슷한 내용을 꼬아서 여러 편의 논문을 쓰는 시대에 이렇게 진지하고 뛰어난 책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기적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나와 같은 학문후속세대에게도 이 책은 엄청난 지적인 자극이 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논의하고 있는 주제들은 앞으로 사회학에서 세분화하여 탐구해야 할 대단히 중요한 주제들이라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이 책에서 저자가 다룬 주제는 미국 유학현상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주제를 뛰어 넘어 이후 1) 지위재(positional good)로써 미국박사가 국내에서 갖는 상징적 우위, 2) 한국 대학교수 임용과정, 3) 한국 학계의 연구문화, 4) 이주자로써 한국인 교수가 갖는 특성, 5) 미국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 6) 한국 지식인의 미들맨으로써의 특성과 한국 지식담론의 후진성의 관계 7) 한국인 엘리트-이주자 연구 8) 기업의 글로벌화 등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는 반드시 연구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면서도 아직 연구되지 않은 ‘검은 대륙(프로이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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