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스케치북
상현 지음 / 고래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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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님(@sang.ted)의 그림 에세이를 오래전부터 보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내면의 단단함'이었다. 조심스럽고 신중하고 한 마디의 말조차도 오래 생각해놓고 내놓는다는 진중함이 느껴졌다. 나는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때, 대체로 먼저 뱉어놓고 후에 생각하는 경솔하고 유약한 사람이라 나와 아주 다른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이 이야기는 ‘도망가고 싶은 마음’에서부터 시작한다. 첫 도망은 바로 열여덟 살에 학교를 그만둔 일. 집안 사정, 나의 미래, 몸과 마음의 건강 모든 것이 서서히 위태로웠던 나이에 홀로 창밖을 보며 지내던 시간이 1년쯤 지나자 자신만의 정답을 발견한다. 오랫동안 스스로 결심한 마음과 말들을 골라 '나 학교 그만두고 싶어'라는 말 한마디를 내뱉었을 때, 엄마는 그간 버티고 있었던 마음을 헤아려주었다. 그렇게 학교를 벗어난 후, 스스로 나름의 성취를 찾는다. 건강을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하고, 적고 건강하게 먹으려 노력하며 몸을 만들었고, 한 밤부터 동이 뜰 때까지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신문 배달을 한다. 아직은 어린 나이, 모두가 동일하게 걸어가는 경로에서 도망을 택했지만, 주저앉아 삶을 내팽개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해 골몰하며 마음을 다졌을 시간.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살아지는 대로 사는 사람이 있다고. 이 말을 떠올리며 나는 때때로 내가 살아지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돌아본다. 그저 눈앞에 주어진 것들에 몰두해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느덧 마흔을 넘기고, 사회적으로는 어른이 된 것 같겠지만 이 전보다 성장하고 내면이 성숙해가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에세이를 보며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나는 나만의 길을 가고 있나?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뙤약볕만큼 뜨겁게 부딪히며 내달렸던 그 어린 날이 아련하고, 순간순간 스쳐 지나가며 나의 열기를 식혀 주었던, 선선함과 촉촉함이 더 선명하다. 어쩌면 여름이란 계절은 그 한가운데를 지날 때보다, 지나간 후에 더 애틋하고, 그리워지는 계절이 아닐까.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종종 꺼내어 추억할 생각이다. 생애 가장 여름이었던 그 해를."_p.118


호주 북부의 작은 휴양지에 있는 리조트에서 하우스맨으로 일하던 워홀 시절을 저자는 '여름'에 비유한다. 침대만 겨우 들어가는 아파트에서 친구와 지내며 수십 장의 이력서를 돌리고, 새벽부터 자전거를 타고 출근해 다채로운 영어 욕을 들으며 하루를 견디던 시간. 지나치게 뜨겁고, 지나치게 생기 넘치는 조금은 버거운 계절. 나에게도 지나치게 뜨겁고 버거웠던 시간이 있다. 대학원에 갈 계획이었지만, 내 모자란 재능과 가정 형편을 생각해 바로 취업을 했던 첫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을 해내는 즐거움도 컸지만 언제나 마음 한편에는 미련이 남아있었고, 외면하고 싶은 처지와 불안한 미래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온몸으로 휩쓸리던 그때가 있었다. 나에게도 그 시간을 지나치게 뜨겁고 생기 넘쳐서 조금은 버겁던 그 여름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예전에는 내가 꿈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는 정반대였다. 꿈은 우연한 순가에 나타나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고, 무엇이든 될 것만 같은 따뜻한 희망을 건네기도, 때론 한계를 마주하게 하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차갑게 알려주기도 했다. 이젠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라는 답이 먼저 떠오른다. 내가 원하는 모습이나 명료한 정답이 되어 주길 감히 바라지 않는다. 걷다 보면 작은 빛을 내듯 밝아 온 힌트들을 발견하며, 그저 무언가를 해 나간다. 그것은 생애 동안 맴돌며, 나를 천천히 만들어 갈 테니까." _p.258


좋은 에세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는 잊고 있던 기억들을 다시금 꺼내볼 수 있도록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글이다. 『작은 스케치북』이 그랬다. 무작정 도망치고 싶었던 열여덟 살의 나, 우연인 듯 운명인 듯 우연히 입사했지만 지금까지 마케터의 길을 걷게 했던 첫 직장 생활, 퇴근 후 술 한잔 기울이시던 아버지에게 늘 술을 마시지 말라고만 했지, 술 한 잔 따라드리지 못했다는 후회의 순간, 항상 확신하지 못하고 '내 길이 맞을까?' 의심하면서도 지금까지 한 길로 걸어온 삼십 대의 시간들. 돌아보면 부끄러운 순간도, 나약했던 순간도 많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적어도 내 삶에서 도망치지 않기 위해, 또 다른 도망의 길을 선택한다면 언젠가는 꽤 거대하고 멋진 하나의 여정이 되어 있지 않을까.' 비틀거릴지언정 적어도 나만의 속도로 온전히 자신을 마주할 때 삶을 단단하게 디뎌갈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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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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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Foster)』는 영화로 제작되면서 「말없는 소녀(The Quiet Girl)」로 제목이 바뀌었다. 대체로 말없는 아이는 어른들로부터 '착한 아이'로 불린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눈치를 보고, 마음의 문을 닫은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심리적 억압에 의해 아이 스스로 자신에 대해 부적절감과 무가치감, 그리고 상대로부터 자신이 긍정적인 태도를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는데 이는 아이가 생활하는 환경에서 자신에 대해 평가하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말할 기회가 주어진 적이 없는 아이.


어느 여름 날, 한 소녀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먼 친척 부부의 집에 맡겨진다. 아버지는 아이를 맡기며 “먹을 건 엄청나게 축낼 겁니다. 대신 일을 시키세요”라며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없이, 나중에 데리러 오겠다는 말도 없이 떠났다. 넉넉하지 않는 형편에 무심하고 거친 아버지, 다섯째 아이를 임신한 채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 일과 밭일까지 신경 쓰느라 지친 어머니에게 보살핌과 관심을 받지 못하던 소녀는 눈치만 살필 뿐이다.


지금 당장 말하고 싶다. 솔직히 말하고 집으로 돌려보내지는 것으로 끝내고 싶다. “매트리스가 낡아서 말이야.” 아주머니가 말한다. “이렇게 습기가 차지 뭐니. 항상 이런다니까. 널 여기다가 재우다니, 도대체 내가 무슨 생각이었을까?”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 


킨셀라 부부는 소녀가 그동안 겪어온 삶과는 달랐다. 첫날 긴장한 탓인지 매트리스에 오줌을 싸고 쫓겨날까 겁먹은 아이에게 방이 원래부터 습해 매트리스에 습기가 찼다고 모른 척 보듬어주고, 손 한 번 잡아준 적 없는 아빠와는 달리 손을 잡고 보폭을 맞춰 걸었으며 딸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 팔로 감싸서 끌어안아주는 어른들. 무릎을 꿇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불을 덮어주고, 헛간 청소를 시킬 줄 알았는데 토스트 굽는 법을 천천히 가르쳐 주며, 아이는 오냐오냐 커야 한다며 1파운드 지폐를 주는 어른들. 그곳에서 처음 경험하는 다정함과 돌봄은 자신이 속한 세계가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아주머니의 손은 엄마 손 같은데 거기엔 또 다른 것, 내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것도 있다. 나는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지만 여기는 새로운 곳이라서 새로운 말이 필요하다."


어느 날, 동네 이웃의 장례에 참석하게 된 부부는 무릎 위에 소녀를 올려두고 소중히 보살피지만, 지루해하는 아이를 잠시 봐주겠다는 이웃의 말에 아이를 보냈다가 “입 다물기 좋은 기회를 놓친” 이웃에게서 비밀 아닌 비밀을 듣게 된다. 킨셀라 부부는 얼마 전 사고로 아돌을 잃은 것이었다. 이 작품에서 '말'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소녀와 부부가 처음 만났을 때 '말 없던' 소녀는 불행에 길들여진 결과였다. 그러나 부부는 자신들에게 닥친 불행에 분노와 복수가 아닌 침묵으로 서로를 보듬고 소녀에게 사랑과 다정함을 나누어준다. 그래서 소녀 또한 이 부부의 거대한 불행을 목격하게 되자 침묵한다. 이들에게 침묵은 서로를 보듬는 행위인 것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여운이 남아 연달아 두 번을 읽었고, 영화 「말없는 소녀」도 보았다. 이 아이에게 주어지는 섬세한 사랑과 킨셀라 부부의 온유함이 마음에 남아 이 작품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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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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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안부』는 1994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가스 폭발 사고로 친언니를 잃은 해미와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엄마와 아빠는 언니를 잃은 고통을 해미에게 감추지 못할 정도로 힘겨워했고, 해미는 괴로워하는 부모님 앞에서 슬퍼하지못하고 괜찮은 척 거짓말로 슬픔을 숨긴다. 결국 이 사고로 가족은 헤어져 해미는 엄마와 함께 독일에 정착한 행자 이모집에서 살게 된다. 독일에서도 낯선 환경에서 혼자서도 잘 적응하고 있는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는 무혐의의 거짓말을 이어가지만, 이모는 그런 해미의 불안과 슬픔을 눈치채고 가만히 다독여준다.


"지난 일 년 동안 네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변화가 생겼을 거라는 걸 이모도 안다. 많이 힘들었을 거라는 것도."
이모가 말하는 변화라는 게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등교한 언니가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가스 폭발 사고로 갑자기 사라져버린 일을 가리키는 지, 언니를 잃은 고통으로 엄마 아빠의 사이가 멀어져버린 일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대하는 방식이 바뀌어버린 일을 가리키는지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_p.24


독일에서 만난 행자 이모와 마리아 이모, 선자 이모는 모두 파독간호조무사로 독일에 파견되어 정착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1973년 독일로 파견되어 이곳에서 공동체를 이루었고 간호 노동자로 일하며 봉급의 대부분을 한국에 송금하여 가족들을 부양해 온 인물들이다. 이후 해미는 독일에서 사귄 한수와 레나 마음을 나누며 조금씩 안정을 찾는다. 어느 날 한수는 해미와 레나에게 자신의 엄마(선자)의 첫사랑을 함께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아이들은 선자 이모의 일기를 몰래 읽으면서 첫사랑이 누구인지 단서를 모으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금씩 본연의 모습으로 애써 돌아가지만, 해미는 행복을 느끼는 순간마다 여전히 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소중한 이들과 작별하는 경험으로 관계 맺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누군의 삶에 깊이 관여한다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 누군가의 삶에 내가 또다시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는 그 무시무시한 가능성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는 두려움.


이모가 손을 뻗어 내가 아이였을 때 그랬던 것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모의 손길이 닿자, 나는 오래전 이모의 집 거실에서 있던 어린아이가 되어 이십 년이 훨씬 넘게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언니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여전히 언니에게 마음속으로 말을 걸 때가 있다고. 상실 이후 시간이 때때로 선처럼 흐르는 것이 아니라, 쳇바퀴를 돌듯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_p.227


행자 이모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는 지극히 정성과 수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해미는 너무 어린 나이에 언니와의 이별을 감당해야만 했다. 그리고 독일에서 파독 이모들과 한수, 레나와 어울리며 안정을 찾아가고 있을 때 쯤 다시 한 번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는 친구들과 한국에 가서도 자주 안부를 나누자고 약속하지만, 병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엄마에게 첫사랑과 연락을 닿게 해주고 싶은 한수의 간절함을 알기에 끝내 그를 찾지 못하자 그동안 선자 이모를 많이 그리워했다는 거짓 안부를 대신 써서 독일에 보낸다. 그리고 해미는 거짓 편지를 썼다는 죄책감에 한수의 안부 전화를 받지 못하고 멀리한다.


내 삶을 돌아보며 더이상 후회하지 않아. 나는 내 마음이 이끄는 길을 따랐으니까. 그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긍심이 있는 한 내가 겪은 무수한 실패와 좌절마저도 온전한 나의 것이니까. 그렇게 사는 한 우리는 누구나 거룩하고 눈부신 별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알고 있으니까. _p.303


『눈부신 안부』에서 해미는 삶의 갖가지 비극으로 인해 멀어졌던 소중한 사람들과, 너무 어린 나이였기에 슬픔을 묻어두었던 자기 자신과의 진심어린 화해를 위해 다시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아나선다. 그를 찾아 마지막으로 선자 이모가 보내 온 안부 편지를 전달하는 것이 자신의 상처로부터 화해할 수 첫걸음이라고 여긴다. 선자 이모가 남긴 마지막 편지에 '나를 위해 내 편지를 전해준 아이들의 마음이 나를 며칠 더 살 수 있게 했듯이,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그 편지가 거짓임을 알면서도, 자신을 위해 정성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해미의 마음이 전해진 것이다. 그래서 이 안부는 눈부시게 다정하고, 용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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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치광이 이웃 위픽
이소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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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쓸모가 있을까? 물가와 금리가 인상되어 소비가 위축될 거라는 보도 이후에는 늘 도서 매출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아마 영화관도 미술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들은 지출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되면 가장 먼저 문화적인 지출을 줄인다. 어쩌면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다. 위기가 닥칠수록 사람들은 생존에 필수적인 최소한의 것들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때 문화나 예술은 사치스러운 것이 된다. 그래서 『나의 미치광이 이웃』가 제시하는 2073년, 기후변화와 식량 위기로 먹고사는 문제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시대에 ‘문화 폭동’으로 예술 작품이 모두 사라진 세상은 두려우면서도 낯설지 않다. 


​"문화 폭동은 내가 학교를 막 졸업한 해의 다음 해, 그러니까 2073년에 일어낫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유명한 환경학자 보리스 잘란스키 박사의 논문이 그 시발점이었다. 세계 3대 곡창지대를 잃은 지금 인구의 43퍼센트가 하루 평균 두 끼의 식사로 하루를 겨우 연명하고 있는데,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서 쓰고 있는 에너지 소모가 너무 많다는 내용이었다. 논문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사람들은 깡통과 유리병, 쇠 파이프와 돌멩이를 던졌다. 그렇게 그림은 한순간에 모두 소실되었고 백제 시대의 향로도 반가사유상도 그때 그렇게 두 동강이 났다. 장소만 차지하고 배고픔에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예술은 가장 먼저 제거되었다." (61)


극심한 기후변화와 오존층 위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들이 하늘을 메우면서 우주 쓰레기로 가득 찬 대기는 태양을 가렸고, 그로 인해 농작물은 잘 자라지 않았다. 해수면이 높아져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나라를 잃었다. 이제 땅에서 나는 곡식과 채소는 값비싼 음식이었고, 그나마 값싼 생선들로 생계를 유지했다. 이렇게 먹고살기도 빠듯한 세상에서 유리는 유화를 사랑했다. 이우환을, 윤형근을 사랑했다. 가족의 희생을 등에 업고 미술을 전공했지만, 미술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었기에 이번에도 모른 척 가족들에 기대어 베를린 예술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미아를 만난다.


"그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치졸하게도 미아의 인생을 빼앗고 싶다는 것이었다. 젠장. 저게 내 경험이었으면 나는 천재로 벌써 세상에 이름을 널리널리 알렸을 텐데. 미아보다 더 친절하게 관람객에게 다가갈 수 있었을 텐데. 미아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는 미아의 불행조차 빼앗고 싶었다. 저 모든 행동이 미아의 삶과 불행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그것을 빼앗아서라도 뛰어난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그 정도로 이름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미아가 될 수 없었다." _p.46


미아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키리바시에서 태어난 미아는 2056년 해수면 상승으로 난민이 되었고, 부모님과 함께 독일에 난민 신청을 넣으려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넜다. 그러나 독일군은 난민을 받지 않기 위해 이들을 구하지 않고 주위를 돌며 파도를 일으켜 뗏목을 부서지게 했고, 미아는 이날 가족 모두를 잃었다. 그러나 미술에는 특출난 재능을 지녔기에 학우들 사이에서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자 언제나 논쟁의 대상이었다. 미아는 무국적자 난민으로 천재적인 예술적 재능을 지녔지만 돈이 없어서 가족이 없어서 나라가 없어서, 현실과 끊임없이 부딪히고 다쳤다. 그러나 특출나지도 인정받지도 못했던 유리는 미아의 재능과 삶을 동경한다.


한국에 돌아온 유리는 범세계적으로 문화 폭동이 일어나기 전 명화의 원화를 본 적이 있다는 이유로 미디어 아트 작가가 되었다. 과거 소실된 작품은 남아있지 않지만 미디어로 복구하여 관람객에게 체험할 수 있도록 고흐나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재구성하여 전시했고, 유리는 그렇게 이름 없이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미아, 얼마 전까지 나는 고흐였어. <별이 빛나는 밤>을 작업했지. 다음에는 프리다 칼로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해야 하는데, 이러다 미술 작가가 아니라 개발자가 되는 건 아닌가 몰라. 미아, 너에게만 진심을 고백하자면 나는 사실 아직도 네모가 그리고 싶어. 여전히 멋진 네모 말이야. 그래서 더 네 생각이 났을 수 있겠어. 이곳은 내가 가장 치열하게 네모를 그리던 곳이고, 너는 유일하게 나에게 멋진 네모를 그린다고 말해준 친구였으니까." _p.108


이 소설을 읽으면서 대학 시절이 생각났다. 늦은 밤까지 고민하며 글을 썼고, 교수와 친구들의 비평에 일희일비하며 자신의 재능과 미래를 수없이 번복하며 괴로워했던 그 시간들. 이따금 듣게 되는 동기들 소식에 아, 이 친구는 아직도 글을 쓰고 있구나. 순수 문학을 쓰건, 글을 쓰는 직업을 졌건 존경할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유리처럼, 그러니까 나처럼 다른 직업을 가지게 되어도 괜찮다. 밥벌이도 중요하니까. 그렇게 치열하게 예술을 사랑했던 시간들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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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학의 자리
정해연 지음 / 엘릭시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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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쁜 짓 하자.
다현은 준후에게 문자를 보냈다. 준후는 다현을 교실 안으로 밀어 넣으면서 다급히 문을 닫았다. 뒷걸음질 치던 다현은 달려든 준후가 티셔츠를 걷어 올리자 책상 위에 걸터앉으며 준후를 안았다. 수업을 하는 교실, 담당하는 학생과 선생, 미성년자. 그는 유부남의 몸으로 미성년 학생과 관계를 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다현이 학교를 빠져나갈 수 있도록 경비원을 붙들어두었다. 삼십 분 이상 흐른 후 흐트러진 교실을 정리하러 올라갔을 때, 교실 천장에 목을 매단 다현의 나체가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준후는 믿을 수 없는 눈길로 다현의 시신을 보았다. 사실이 알려지면 파멸이다.


『홍학의 자리』을 읽게 된 것은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이 줄거리를 들은 후였다. 정해연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스릴러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경고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겪은 어린 시절의 행복이 그 사람을 얼마나 좋은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지 보다는, 불행한 어린 시절이 이 사회를 파괴하는 끔찍한 범죄자로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고 경고하는 것이 스릴러 작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히며, 이번 경고는 인정욕구라고 말했다. 당신은 누구에게 인정받고자 하는가. 그 인정에 중독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아루바라는 섬이 있어요. 네덜란드에 있는 곳인데, 거기에 가면 홍학을 볼 수 있대요. 해수욕장 같은 데 가면 왜 핑크색 학 모양의 커다란 튜브 있잖아요. 플라밍고라고도 부르고요. 여자들이 많이 올라타 있죠. 그게 홍학을 본떠서 만든 거예요."


교실 천장에 목을 매단 다현은 나체 상태였다. 조금 떨어진 바닥에 한 뼘 반 정도 길이의 비즈가 달린 칼이 놓여있었다. 준후는 그것을 집어 들고 밀려나 있는 책상을 끌고 와 단숨에 뛰어올랐다. 다현의 목을 감은 줄은 흔히 볼 수 있는 PVC 재질의 노끈이었다. 다현의 목에는 여러 개의 상처가 있었고 무언가에 찔린 것처럼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책상은 엉망으로 교단 앞까지 밀려가 있었다. 다현이 밟고 올라갈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타살을 의미했다. 다현은 자살을 할 이유도 없었다. 심지어 다현은 나체 그대로였고, 목에는 칼에 찔린 상처도 있었다. 부검이 진행되면 다현의 몸에 남아있는 정액이 검출될 것이다. 자신이 범인으로 지목될 것이 분명했다.


"다현의 엄마는 문제를 일으키고 자살하는 순간까지 자식을 걱정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기대던 할머니는 죽었다. 사랑하는 남자는 자신을 버거워했다. 그 남자의 아내는 다현을 모욕하고 저주하고 때렸다. 오랜 친구를 잃었다. 사기 사건의 피해자인 조미란이 학교에서 다현과 마주칠 때마다 어떤 시선을 보냈을지는 뻔했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 다다를 때까지 나는 범인을 확신할 수 없었다. 어떤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에게 악의가 있는 사람을 찾으면 답이 있다. 즉, 누가 피해자를 죽이고 싶어 하는가, 그로 인하여 누가 가장 이익을 얻는가. 그러나 어린 나이의 다현에게 악의를 품은 자들은 너무나 많았다. 최근에 읽은 많은 추리소설은 범인을 감추기보다는 범인을 먼저 밝히는 편을 택한다. 왜냐하면 마지막까지 트릭을 감추고 독자의 관심을 이끌더라도 범인이 밝혀진 후 실망감을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범인인가, 보다는 왜 범행을 저질렀는가에 포커스를 맞춘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달랐다. 내가 가지고 있던 수많은 편견을 부수고, 자신이 흩뿌려놓은 단서들을 완벽하게 조합하여 결말을 맺는다. (완벽한 떡밥 회수...) 그리고 책을 덮고 나면 깨닫게 된다. 프롤로그부터 책 제목까지 모든 것에 힌트가 있었음을. 


한국에도 이렇게 추리소설을 잘 쓰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그리고 책을 읽고나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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