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학의 자리
정해연 지음 / 엘릭시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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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쁜 짓 하자.
다현은 준후에게 문자를 보냈다. 준후는 다현을 교실 안으로 밀어 넣으면서 다급히 문을 닫았다. 뒷걸음질 치던 다현은 달려든 준후가 티셔츠를 걷어 올리자 책상 위에 걸터앉으며 준후를 안았다. 수업을 하는 교실, 담당하는 학생과 선생, 미성년자. 그는 유부남의 몸으로 미성년 학생과 관계를 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다현이 학교를 빠져나갈 수 있도록 경비원을 붙들어두었다. 삼십 분 이상 흐른 후 흐트러진 교실을 정리하러 올라갔을 때, 교실 천장에 목을 매단 다현의 나체가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준후는 믿을 수 없는 눈길로 다현의 시신을 보았다. 사실이 알려지면 파멸이다.


『홍학의 자리』을 읽게 된 것은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이 줄거리를 들은 후였다. 정해연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스릴러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경고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겪은 어린 시절의 행복이 그 사람을 얼마나 좋은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지 보다는, 불행한 어린 시절이 이 사회를 파괴하는 끔찍한 범죄자로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고 경고하는 것이 스릴러 작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히며, 이번 경고는 인정욕구라고 말했다. 당신은 누구에게 인정받고자 하는가. 그 인정에 중독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아루바라는 섬이 있어요. 네덜란드에 있는 곳인데, 거기에 가면 홍학을 볼 수 있대요. 해수욕장 같은 데 가면 왜 핑크색 학 모양의 커다란 튜브 있잖아요. 플라밍고라고도 부르고요. 여자들이 많이 올라타 있죠. 그게 홍학을 본떠서 만든 거예요."


교실 천장에 목을 매단 다현은 나체 상태였다. 조금 떨어진 바닥에 한 뼘 반 정도 길이의 비즈가 달린 칼이 놓여있었다. 준후는 그것을 집어 들고 밀려나 있는 책상을 끌고 와 단숨에 뛰어올랐다. 다현의 목을 감은 줄은 흔히 볼 수 있는 PVC 재질의 노끈이었다. 다현의 목에는 여러 개의 상처가 있었고 무언가에 찔린 것처럼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책상은 엉망으로 교단 앞까지 밀려가 있었다. 다현이 밟고 올라갈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타살을 의미했다. 다현은 자살을 할 이유도 없었다. 심지어 다현은 나체 그대로였고, 목에는 칼에 찔린 상처도 있었다. 부검이 진행되면 다현의 몸에 남아있는 정액이 검출될 것이다. 자신이 범인으로 지목될 것이 분명했다.


"다현의 엄마는 문제를 일으키고 자살하는 순간까지 자식을 걱정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기대던 할머니는 죽었다. 사랑하는 남자는 자신을 버거워했다. 그 남자의 아내는 다현을 모욕하고 저주하고 때렸다. 오랜 친구를 잃었다. 사기 사건의 피해자인 조미란이 학교에서 다현과 마주칠 때마다 어떤 시선을 보냈을지는 뻔했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 다다를 때까지 나는 범인을 확신할 수 없었다. 어떤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에게 악의가 있는 사람을 찾으면 답이 있다. 즉, 누가 피해자를 죽이고 싶어 하는가, 그로 인하여 누가 가장 이익을 얻는가. 그러나 어린 나이의 다현에게 악의를 품은 자들은 너무나 많았다. 최근에 읽은 많은 추리소설은 범인을 감추기보다는 범인을 먼저 밝히는 편을 택한다. 왜냐하면 마지막까지 트릭을 감추고 독자의 관심을 이끌더라도 범인이 밝혀진 후 실망감을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범인인가, 보다는 왜 범행을 저질렀는가에 포커스를 맞춘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달랐다. 내가 가지고 있던 수많은 편견을 부수고, 자신이 흩뿌려놓은 단서들을 완벽하게 조합하여 결말을 맺는다. (완벽한 떡밥 회수...) 그리고 책을 덮고 나면 깨닫게 된다. 프롤로그부터 책 제목까지 모든 것에 힌트가 있었음을. 


한국에도 이렇게 추리소설을 잘 쓰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그리고 책을 읽고나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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