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바다
이언 맥과이어 지음, 정병선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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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봄, 영국. 인도 전선에서 돌아온 의사 섬너는 고래잡이배 볼런티어호에 선박의로 탑승한다. 섬너는 전직 군의관으로 세포이 항쟁 당시 인도에서 복무했으며 그때 입은 부상으로 다리를 절뚝거린다. 한편 같은 배에 탄 작살수 헨리 드랙스는 상식이나 도덕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짐승 같은 사내다.

 

얼어붙은 북쪽 바다로 떠나는 항해. 인도에서 푹푹 찌는 더위, 전쟁터의 잔인함과 추잡함에 질린 섬너는 빙하와 북극곰, 바다코끼리를 볼 생각에 들뜬다. 그러나 섬너가 마주한 것은 혹독한 자연, 그리고 거칠디거친 사람들이었다.

 

선장 브라운리는 고집스러운 선원이지만, 3년 전 퍼시벌호 사건 때문에 좋지 않은 소문이 따라다닌다. 퍼시벌호가 난파 사고를 당한 후 거기에 탔던 선원들은 모두 죽거나 불구가 되거나 미쳐 버렸지만, 브라운리만이 다시 배에 타게 된 것이다. 사실 이 항해의 목적은 고래잡이가 아니었다. 고래잡이로는 갈수록 수익이 줄어들자 선주 백스터가 보험금을 타기 위해 선장 브라운리, 일등 항해사 캐번디시와 짜고 볼런티어호를 가라앉히기로 한 것이다.

선장은 바다표범 사냥에 선박의, 급식장, 사환들까지 전부 내보내고 섬너는 부빙 사이를 뛰어넘다가 얼음물에 빠져 죽다 살아난다.

 

"당신이 물 속에 얼마나 처박혀 있었는지 아세요? 제기랄, 세 시간이라고요. 보통 사람 같았으면 죽었어요!"

북극곰 두 마리와 조우한 선원들은 어미를 죽여 가죽을 벗기고, 새끼는 동물원에 팔기 위해 산 채로 붙잡는다. 그 과정에서 노잡이 한 명이 곰에게 물어뜯겨 죽고 만다.

 

- 누구냐?
- 아무도요.
- 조지프, 누가 너한테 이랬어?
- 아무도 안 그랬어요.

 

어느 날, 어린 사환 조지프 해너가 배가 아프다며 섬너의 선실을 찾아온다. 섬너는 진찰 도중 소년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범인을 찾으려 하지만 조지프는 넘어져서 다친 것뿐이라고 둘러댄다. 그러나 얼마 후 조지프 해너는 시체로 발견된다. 선원들은 이 항해가 저주받았다며 불안해하기 시작하고, 섬너는 드랙스를 의심하게 된다.

바다 위 '배'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잔혹극은 소설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이 항해의 목적은 고래잡이가 아니었다."
라는 문장만으로 전국민이 떠오르는 사건이 있겠지만(물론 연상일 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이 책과 비슷한 사건은 현실에서도 여러차례 일어났는데, 2011년 6월, 중국에서 일어난 적이 있었는데, 이 원양어선은 남태평양에서 조업을 하던 중 실종되었다가 상당 수의 선원이 실종된 채 발견되었다.

 

그 실종되었던 며칠 동안,
그 배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이 사건을 오랫동안 연상했다. 이 사건에 대해 들었을 때는 큰 그림의 팩트, 조업 중 일어난 그 배 내에서의 선상반란과 살인을 떠올렸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는 이 선상반란의 과정과 심리 상태를 세밀하게 상상해볼 수 있었다.

그 배에 타게된 모두는 절박했고, 모두 생각한 것보다는 가혹했던 조업과 거칠디거친 사람들, 갇혀있는 <배>라는 좁은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공간은 자신의 도덕성이나 가치관을 벗어나 생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을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강렬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감각'이었다. 시각적, 후각적 감각들을 자극하는데 거친 욕설을 가감 없이 번역하여 포경선을 타는 거친 선원들의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고, (놀란 마음에 번역가는 누구인가, 판권을 확인해보기도 했다.) 가난한 거리의 술 냄새와 피, 독자에게도 전해지는 추위와 폭력에 대한 생생한 묘사로 내가 고래잡이 배 위에 함께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한다.

 

이 작품은 현재까지 17개국에 번역 계약이 체결되었고, 영국 BBC에서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하는데 밀폐된 '배'라는 공간은 굉장히 연극적인 부분이 있어서 연극으로 각색되어도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토리는 조금 다르지만, '배'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감각적인 영화로 봉준호 감독의 <해무>도 떠오른다. 마주하기 어려운 인간의 잔혹성은 너무나 위협적이고 무자비하지만, 그에 비해 가독성이 너무 좋아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겨울에 읽기에는 물론 춥다ㅜㅜ 여름에 시원하게 보기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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