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아침의 나라
신원섭 지음 / 황금가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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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장르를 뭐라고 정의하면 좋을까. 보통의 경우, 스릴러 혹은 범죄 소설이라고 말하면 자연스럽게 '살인 사건'을 떠올리게 되는데, 신원섭 작가의 『요란한 아침의 나라』는 누군가가 죽거나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문득 궁금해져서 '스릴러' 장르의 정의에 대해 검색해 보니, 서스펜스를 중심으로 한 플롯 그 자체 혹은 범죄를 소재로 한 장르소설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범죄'라는 범위가 무척 넓은데 익숙하게 읽고, 영화로 봐온 내용만 한정해서 좁은 범위로 생각했던 것 같다.


​『요란한 아침의 나라』는 거대한 부지를 매입했으나 미혼모 쉼터로 인해 진입로가 막혀 개발이 지연되고 있는 부동산 투기업자 한 사장이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복지 법인 '사랑의 집'과 대표 오유라에 관한 비리를 파헤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 사장은 전직 형사 출신인 청부 용역 이진수에게 의뢰해 사랑의 집에 관한 비리를 파헤치면서 인권 변호사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하나연을 영입해 시민단체 간의 파워 게임으로 쉼터를 뺏을 계략을 세운다.


오유라는 한때 시민운동에 헌신하며 미혼모 쉼터를 운영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잇속을 위해 단체의 기부금을 개인 용도로 사용하고, 쉼터를 별장처럼 이용하면서 어린 미혼모를 무임금에 가정부처럼 이용했고, 아내의 일을 도와 미혼모 시설을 관리하고 있던 진상은 어린 미혼모를 꾀어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 이에 대응하는 이진수나 하나연도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는 마찬가지. 이들은 시민단체를 내세워 서로의 정의를 실현하고자 진실을 폭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속내는 모두 똑같을 뿐이다.


​"먼저 전국구 저명인사인 오유라가 기업들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유치한다. 대규모 자금이 흘러들면서 인근 부동산이 들썩인다. 여기에 지역 언론과 개발업자들이 가세해 분위기를 조성한다. 와중에 등장하는 절차적 장애물은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치우면 된다. 물론 알짜배기 개발 정보는 내부자끼리 사전에 나눠 먹은 뒤다. 지난 몇 년간 김주미 시장이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구시가지 재생사업의 이면에는 이러한 맥락이 작동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모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_p.213


이 소설에서 재미있는 점은 전직 형사 출신 이진수와 부동산 업자 한 사장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정점에서 대결하는 인물은 '사랑의 집' 대표 오유라와 '희망 연대' 대표 하나연 변호사의 대결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범인'이 누구인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정의'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지점이다. 뒤에 작품 해설을 쓴 김시인 평론가는 이를 '여성 누아르'라고 지칭했는데, 매우 근사한 표현이다. 지금까지 '누아르'는 어둠의 세계 속 피비린내 나는 남성들의 서사이자 전유물처럼 여겨졌는데 이를 전복시킨 것이다.

"어차피 세상에 무해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나연은 생각했다. 인식의 범주를 끝없이 확장하다 보면 5000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일상조차도 제3세계 아동 노동을 방조하는 행위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하나연은 그냥 합리적인 사람이 되기로 했다. 법이 허용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고, 내야 할 세금을 탈루하지 않는 것. 그것이 그녀가 발을 딛고 사는 흑과 백의 어느 중간쯤이었다." _p.298

"성범죄자에게서 훔친 돈을 피해자에게 건네는 일은 선한 행위인가? 부패한 법인의 재산을 횡령하는 일은 정의로운가? 하나연은 자신이 합리와 비합리의 경계선상 어디쯤을 걷고 있는지 마음속으로 가늠해 보았다." _p.360


부패한 시민단체와 정치인, 부동산 투기업자의 계략과 저마다의 이익을 위해 정의나 공정따위는 쉽게 무시되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그리고 모두가 부패한 사회에서 나도 적당히 합리적인 사람으로 눈 감고 살고 있겠지. 이들의 반격과 결말이 어떠할지는 직접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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