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는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견딜 수 없는 사랑』으로 번역된 이 소설의 원제는 Enduring Love, 즉 '지속하는 사랑' 또는 '견디는 사랑'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사랑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 변함없이 지속하는 사랑의 모습과 험난한 역경을 견디는 과정에서 강화되거나 파경에 이를 수 있는 사랑의 모습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아름다운 들판에서 오랜만에 만난 연인과 소풍을 즐기던 조 로즈와 클라리사는 아이 혼자 타고 있는 헬륨 기구가 위태롭게 떠오르는 것을 발견한다. 이 모습을 발견한 사람들이 사방에서 달려왔고 기구를 붙들기 위해 밧줄에 매달리지만, 거센 바람이 불어와 그들 모두를 허공으로 들어 올린다. 그 순간 누군가 한 명이 밧줄에서 손을 놓아 땅으로 떨어졌고 이어서 사람들이 기구를 놓고 땅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존 로건만이 끝까지 기구를 붙잡았고 더 높이 떠오른 기구에서 밧줄을 놓쳐 사망하게 된다.


사건을 함께 목격한 조와 클라리사는 죄책감을 느끼고 서로를 향한 굳건한 사랑으로 끔찍한 경험을 이겨내고자 한다. 그러나 그날 밤, 조는 사고 현장에 함께 있었던 패리로부터 한 통에 전화를 받는다. "당신 감정을 이해한다고 말하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나도 같은 감정이니까요. 사랑해요."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패리의 전화를 클라리사에게 숨긴 '최초의 실수'를 시작으로 이 둘의 관계는 균형을 잃기 시작한다.


"그 사고 이후 우리가 느낀 고통은 우리가 실패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줄을 놓은 것도 우리의 본성에 속하는 행동이었다. 이기심 또한 우리 마음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는 무엇을 주고 자신은 무엇을 가질 것인가. 우리는 칠턴스 언덕 위 3~4미터 상공에 떠 있으면서 '우리냐, 나냐'하는 해결할 수 없는 아주 오래된 도덕성의 딜레마에 직면했다." (29)


소설 초반부는 기구 사고와 이 사고를 함께 목격한 사람들이 느끼는 죄책감에서 시작되지만 그 이후는 스릴러의 성격을 띤다. 사고 현장에 함께 있던 패리는 조가 먼저 자신을 사랑했다고 주장하며 그 사랑의 책임을 묻고 집 앞을 서성이며 수십 장의 편지를 보내온다. 하나의 해프닝 정도로 여기던 조는 매일 자신을 미행하며 헛소리를 하는 패리의 행동을 점점 심각하게 여기고 그 문제를 클라리사와 논의하고자 하지만, 클라리사는 사고의 충격으로 조가 지나치게 패리의 문제에 집중한다고 여기며 패리가 보내온 편지가 실은 조가 쓴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사실 나 또한 마지막 순간까지 패리의 존재를 의심했다. 클라리사의 생일에 식당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이 실은 패리가 자신을 죽이려고 사주한 사람들이 실수로 다른 사람을 죽인 것이라는 조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의 세상은 내부에서 결정되고 개인적인 필요성에 의해 움직이는 세상이었고, 이런 식으로 온전하게 유지되었다. 그가 틀렸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필요한 것도 없었다. 내가 그에게 열정적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썼어도 아무런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고안한 감방에 틀어박혀 의미를 알아내려 애쓰고, 실제하지 않는 교류에 희망이나 실망의 드라마를 채워넣었다." (215)


자신의 사랑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상대방을 격렬하게 사랑하고 상대방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드 클레랑보 신드롬의 패리는 조의 반응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망상을 이어간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인물, 기구에 매달려 죽음을 맞이한 존 로건의 부인은 차 안에서 발견된 피크닉 용품과 여성의 장미 향수가 나는 스카프를 증거로 남편이 외도 중이었고, 여성에게 잘 보이려다 사고를 당했다고 믿는다. 진실보다는 자신이 믿고자 하는 대로 믿는 사람들.


그렇다면, 지속하는 사랑은 무엇인가. 내 어릴 적 대중음악의 가사에는 '영원한 사랑'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다. 그래서 변함없고 영원한 사랑이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이라고 여겨왔다. 날 떠나도 돌아와 달라며 기다리고, 죽을 때까지 당신을 잊을 수 없다고 고백하는 사랑. 노래 가사 속 아름다웠던 영원한 사랑을 지금은 집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이 소설 속 지속적인 사랑(상대방에게는 견딜 수 없는 사랑)은 제드 패리에게서만 찾을 수 있다. 패리의 사랑만이 비록 병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이지만 그가 죽어 없어지는 날까지 지속되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와 클라리사는 견디는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조와 클라리사는 화해하고 아이를 입양해 잘 키웠다고 밝히고 있다. 자신들이 믿는 사랑의 의미와 멀어지더라도 진정한 사랑으로 가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는지 볼 필요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