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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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는 많지만, 그중 위화 작가를 향한 마음은 특별하다. 부전공으로 중국학을 공부하면서 처음 읽었던 위화의 작품은 암기하듯 외웠던 중국의 근대 대격변기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그중 『인생』이라는 작품을 너무나 좋아했다. 『인생』은 푸구이라는 인물이 국공내전,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 등 중국의 파란만장한 근대사 속에서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이야기이다. 토지 개혁 과정에서 모든 재산을 몰수 당하고, 마을 사람들은 집 안의 솥까지 빼앗긴 뒤 공동 식당에서 밥을 먹고 농장에서 노동을 하지만 홍수까지 겹쳐 최악의 기근이 찾아든다. 그때 현장 부인이 출산 중 출혈이 심해 생명이 위독하게 되자 아들 유칭이 차출되어 피를 수혈해 주게 되는데, 의사의 무지로 아이의 몸속 피를 모조리 빼 죽고 만다. 핏기 없이 창백하게 죽은 아들을 끌어안고 울부짖던 푸구이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소설가 장강명은 『원청』 추천평에 '나 혼자 ‘위화적인 순간’이라고 부르는 시간들이 있다. 너무 재미있고 뒤가 궁금한데, 갑작스럽게 가슴이 미어져서 책장을 잠시 덮고 마음을 추슬러야 하는 시간. 그의 책을 읽고 나면 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저절로 다짐하게 된다. 주변 사람들에게 잘하자. 불행을 담담히 받아들이자. 잔인해지지 말자.'라고 썼다. 그중 '불행을 담담히 받아들이자'라는 말이 마음에 새겨졌다. 불행을 담담히 받아들이자.


『원청』은 청나라 시대가 끝나고 중화민국이 시작되는 1900년대 초반 신해혁명기를 배경으로 쓰였는데, 마을의 부유한 도련님이었던 린상푸는 우연히 마을을 지나는 한 남녀를 집에 들이게 된다. 마을의 유일한 관리였던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베를 짜며 부지런히 린상푸를 돌봐주시던 어머니도 그가 열아홉 살이 되었을 때 병으로 여읜 후였다. 그들은 남매이며, 여동생은 샤오메이 오빠는 아창이라고 밝혔으며 그들은 원청이라는 아주 먼 남쪽 도시에서 친척에게 의탁하기 위해 북쪽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린샹푸는 내심 샤오메이가 마음에 들었는데, 다음 날 여자는 병으로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고, 오빠는 곧 돌아오겠다며 여동생을 부탁학하고 먼저 떠났다. 샤오메이는 린샹푸 곁에 머물며 건강을 되찾았고, 혼인을 맺었다. 그러나 데리러 오겠다는 오빠 아창이 돌아오지 않자 샤오메이는 근심에 절에 가서 공양을 드리겠다고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샤오메이는 린샹푸가 지닌 금괴의 일부를 가지고 떠났다. 린샹푸는 샤오메이를 잊지 못한 채 여러 스승을 찾아다니며 기술을 연마하던 중 샤오메이가 돌아왔다. 아이를 가져 배가 부른 샤오메이는 '왜 금괴를 가지고 떠났는지' 묻는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용서를 구했다. 린샹푸는 더 묻지 않고 다시 샤오메이를 받아들였고, 그해 여름 딸을 얻었다.


​"당신은 돌아왔지만, 금괴를 하나도 가져오지 않은 데다 어디 두었는지도 말하지 않았지요. 분명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 같으니 더는 묻지 않을게요. 다만 당신이 또 말없이 떠난다면 내가 찾으러 갈 거예요. 아이를 안고 세상 끝까지 가서라도 당신을 찾을 거예요." _p.81


​린샹푸는 아이를 두고 또다시 떠난 샤오메이를 찾아 남쪽으로 향했다. 샤오메이는 원청이라는 아주 먼 남쪽 도시에서 왔다고 했다. 양쯔강을 건넌 뒤에도 600여 리를 더 가야 하는 그곳은 강남 물의 고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도 원청이라는 곳을 알지 못했다. 지나온 마을 중 아창이 말한 원청과 가장 비슷한 곳은 시진이었다. 원청은 실재하지 않으며 아창과 샤오메이의 이름도 거짓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린상푸는 시진으로 돌아가 샤오메이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작정한다.


위화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시대의 변혁 앞에 개인의 운명과 삶이라고 볼 수 있는데, 작가는 시대 속에서 한 개인에게 주어지는 운명을 헤어나가는 평범한 인간을 세세하고 숭고하게 그려낸다. 사실 린샹푸의 삶을 보며 우리는 과거 청나라 시대가 끝나고 중화민국이 시작되어 신해혁명기를 겪은 한 인물이라고 여기지만, 그 시대를 살아간 수많은 인물들은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어쩌면 먼훗날 내가 살아가는 지금의 시대도 누군가는 코로나 전염병으로 탈세계화와 고립주의 시대 또는 코로나로 인한 최악의 경제 침체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그럼에도 더 가치있는 것을 찾고, 더 옳은 것을 쫒으며 나아가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원청을 찾아 헤매는 린샹푸의 모습일지라도 우리는, 아무리 가혹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삶을 걸어가야만 하는 이유를 증명해낼 것이다. 어쩌면 우리도 위화적인 순간을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위화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시대의 변혁 앞에 개인의 운명과 삶이라고 볼 수 있는데, 작가는 시대 속에서 한 개인에게 주어지는 운명을 헤어나가는 평범한 인간을 세세하고 숭고하게 그려낸다. 사실 린샹푸의 삶을 보며 우리는 과거 청나라 시대가 끝나고 중화민국이 시작되어 신해혁명기를 겪은 한 인물이라고 여기지만, 그 시대를 살아간 수많은 인물들은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어쩌면 먼훗날 내가 살아가는 지금의 시대도 누군가는 코로나 전염병으로 탈세계화가 본격화된 시기 또는 코로나로 인한 최악의 경제 침체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저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주어진 삶에서 더 가치있는 것을 찾고, 더 옳은 것을 쫒으며 나아가고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비록 원청을 찾아 헤매는 린샹푸의 모습일지라도 우리는, 아무리 가혹한 운명에도 각자 이 삶을 걸어가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낼 것이다. 어쩌면 우리도 위화적인 순간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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