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도살장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0
커트 보니것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에 방영된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 – 알쓸인잡」에서 가장 큰 소득은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을 알게 된 것이다. 이 방송에서는 매주 '인간'을 주제로 다양한 사건과 인물, 문학 작품들을 소개했지만 그중 심채경 박사가 '전쟁'이라는 인간의 흑역사를 소개하면서 언급한 '커트 보니것'에 단숨에 매료되었다. SF 작가로 만 알고 있었던 보니것은 실은 참전 군인이자 드레스덴 폭격 생존자이며, 이후 자전적 경험을 소설 『제5도살장』에 담아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그리고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이를 통해 얼마나 고통의 시간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기록했다.



금요일 저녁, 방송을 보며 이 책을 주문했고 주말 동안 『제5도살장』을 단숨에 읽었다. 나에게 낯선 '드레스덴 폭격'이 궁금해서 넷플릭스 「10대 사건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 드레스덴 폭격」을 찾아보았고, 트라우마를 연구한 베셀 반 데어 콜크의 『몸은 기억한다』을 읽으며 그의 삶을 조금은 헤아려 볼 수 있었다.



세계 2차대전 중 '드레스덴 폭격'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보니것은 최전방에 파견되어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혀 드레스덴 제5도살장에 수용되었는데, 당시 공업이 발달했고 엘베 강변의 피렌체로 불릴 만큼 아름다웠던 드레스덴은 아직 한 번도 폭격을 받지 않아 많은 피난민들이 모여 있었다. 1945년 2월 13일부터 사흘간 연합군의 주도로 도시 전체에 폭격이 시작되었고 도시는 불타서 살아남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 작전은 군사 시설이 아닌 시장이나 민간 거주지를 향한 민간인 폭격이었고, 쏟아지는 폭격에 도시는 1000도 가까이 불타올라 시체들은 녹아내렸다. 보니것은 지하 3층 고기 보관소에 숨어 겨우 살아남았고, 달처럼 완전히 비어버린 도시에서 시신 수습과 도시 재건에 동원되었다. 드레스덴 폭격에서 살아남은 보니것은 전쟁에서 돌아온 후 이 사건에 대해 책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실제로 책이 출간된 것은 1969년, 전쟁이 끝나고도 20년 넘게 지난 후이다.



"바깥에는 불이 폭풍처럼 번지고 있었다. 드레스덴은 하나의 거대한 화염이었다. 이 하나의 화염이 유기적인 모든 것, 탈 수 있는 모든 것을 삼켰다. 미국인들과 경비병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 하늘은 연기로 시커멨다. 해는 약이 바짝 오른 작은 핀 대가리였다. 드레스덴은 이제 달 표면 같았다. 광물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돌은 뜨거웠다. 그 동네의 다른 모든 사람이 죽었다. 뭐 그런 거지." _p.221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은 어떤 시간을 보낼까? 끔찍한 경험을 한 기억이 있다면, 그 기억으로부터 도망치거나 회피하고 싶어서 잊는 방법을 선택할 것 같다. 그러나 실제 전쟁이나 자연재해, 고문, 성폭행을 당한 경험을 지닌 사람은 끊임없이 그 기억 속에 머문다. 『몸은 기억한다』에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처음 그 일을 겪었던 당시의 장면이 눈앞에 떠오르고 그때의 냄새를 맡고 그때의 신체감각을 똑같이' 느낀다고 말한다. 보니것은 고통스럽고 지난 일로 잊어야 하는 기억을 자꾸만 되풀이하는 자신의 상태를, 소돔과 고모라를 떠나며 왔던 길을 돌아보아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에 비유했다.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고들 한다. 나도 물론 앞으로는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는 전쟁 책을 끝냈다. 이번 것은 실패작이고, 실패작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소금 기둥이 쓴 것이니까. 그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들어보라: 빌리 필그림은 시간에서 풀려났다." _p.37


빌리는 시간에서 풀려났다. 빌리는 눈을 깜빡여 1958년으로, 1961년으로, 또 1957년으로 시간 여행을 했다. 정오를 울리는 사이렌에도 그는 기겁했고, 눈을 감자 제2차 세계대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당시 정신의학에서는 PTSD나 트라우마를 정의하지 못했다. 그래서 전쟁 이후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인해 술에 취하거나 급작스러운 분노를 표출하고, 꿈으로 반복되는 기억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을 명확히 진단하지 못했다. 빌리도 미국으로 돌아와 마지막 학기를 보내던 중 제 발로 정신병원에 찾아갔지만, 의사들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YMCA 수영장 맨 끝 깊은 데 던지고, 그랜드 캐니언 가장자리에 데려간 것 때문에 빌리가 박살 나고 있다고 여겼다.



​"트랄파마도어인은 주검을 볼 대 그냥 죽은 사람이 그 특정한 순간에 나쁜 상태에 처했으며, 그 사람이 다른 많은 순간에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도 누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냥 어깨를 으쓱하며 그냥 트랄파마도어인이 죽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을 한다. '뭐 그런거지.'" _p.44


​"자, 이 모든 싸움의 대단한 결말은 무엇인가? 유럽은 수많은 보물과 2백만 명의 피를 낭비했고, 다투기 좋아하는 기사 몇 명이 약 백 년 동안 팔레스티나를 소유했을 뿐이다." _p.30


그렇다면 트라우마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의학적으로는 알지 못하지만 『제5도살장』을 통해 짐작해 보자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 같다.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은 '현재'를 상실하고 자꾸만 과거의 기억으로 반복해서 끌려가기 때문에 현재에 대한 인식도 미래를 상상하는 것도 어렵다. 그러나 보니것은 이 책을 쓰면서 현실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인식하기 시작한다. 비록 드레스덴에서의 일을 글로 써내는 과정에서 자신의 고통과 마주하고 대면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이 소설을 써냈고, 그것이 과거의 일임을 스스로에게 분명히 했다. 그리고 그가 "자, 이 모든 싸움의 대단한 결말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 우리는 전쟁이 개인의 삶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전쟁이 얼마나 무가치한지 생생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