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 좋았던 것들이 하나씩 시시해져도 띵 시리즈 20
하현 지음 / 세미콜론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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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에는 유독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었다. tvN '지구 오락실'을 보면서 초코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띵 시리즈 『좋았던 것들이 하나씩 시시해져도』를 한 챕터씩 읽으며 새로운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은 '아이스를 머금은 순수 밀크'와 초콜릿이 씹히는 커피 아이스크림 '와일드 바디'이다. 기분이 우울한 날에는 장바구니를 들고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가서 한가득 사 오는 게 일상인데, 다른 아이스크림은 한두 개씩 골라 담아도 '순수 밀크'와 '와일드 바디'는 넉넉하게 대여섯 개씩 담아와야 든든한 마음이 든다.

이 에세이에서 가장 좋았던 이야기는 첫 챕터의 「어쩌면 이건 어른의 맛: 체리쥬빌레」이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한 손님이 술에 취해 막무가내로 욕을 하며 체리쥬빌레 펭귄 모양 케이크를 주문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성인 남성에게 씨발 소리를 들어 당황한 작가는 케이크를 상자에 넣다가 실수로 윗부분을 뭉개뜨렸다. 그 케이크는 시급 4천 원의 하루 일당을 훌쩍 넘는 가격이었다. 술에 취해 떡이 된 사람이 뭉개진 케이크를 가져가도 이상하지 않겠지,라는 마음도 들었지만 결국 떨리는 목소리로 잘못을 고백하고 새 케이크를 꺼내 다시 포장했다. 그리고 죄인이 된 마음으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서있을 때 점장님은 '펭귄 케이크'를 건네며 "오늘 놀랐을 텐데 집에 가서 이거 먹고 푹 자, 그리고 살다 보면 좋은 사람 그렇게 될 때가 있어."라고 말한다. 그 케이크를 먹고 다음 날도 씩씩하게 출근하며 어른이 되어간다.



"점장님, 저 사실 체리쥬빌레 싫어해요. 점장님도 그러셨잖아요. 도대체 이게 왜 체리 맛인지 모르겠다고. 저는 캐러멜 프랄린 치즈케이크가 제일 좋아요. 그런데요, 여전히 가끔 일부러 체리쥬빌레를 먹어요. 내 안에 미움이 너무 많을 때. 그게 나를 해치려고 할 때. 그런 날의 퇴근길에는 분홍색 간판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요. 잘 지내시죠? 저는 잘 지내요." ─ 「어쩌면 이건 어른의 맛: 체리쥬빌레」 중에서


바밤바, 메로나, 더위사냥, 수박바, 빠삐코, 모두 대한민국 어느 동네를 가더라도 골목 슈퍼마다 냉동실을 지키고 있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아이스크림들에 대한 이 이야기를 도무지 단숨에 읽을 수 없었다. 어느 날은 문득 마음이 설레서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가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는 마음이 뭉클해져 엄마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 아이스크림을 살 때는 아빠와 같이 가야 먹고 싶은 대로 많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꼬마였던 나, 하굣길 정문 앞 문구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뒤적이며 친구들과 어울려 보냈던 시간들. 모의고사가 끝난 후 세상 절망을 다 짊어지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늘어놓던 푸념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떠올랐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아이스크림을 까먹는 지금도 언젠가 추억이 되겠지.


1990년대에 어린 자식을 키운 언니들에게도, 그 어린 자식이었던 나에게도 엑설런트는 그런 아이스크림이었다. 마음껏 사줄 수 없고, 실컷 먹을 수 없는. 그래서 어쩌다 한번 먹게 되면 그 맛이 두고두고 기억날 만큼 특별하게 느껴졌던 귀한 음식. 그렇게 생각하니 하나 더 먹고 싶어져서 냉동실 문을 열었다. ─ 「추억 필터 없이도 아름다운: 엑셀런트」 중에서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아이스크림은 '엑셀런스'이다. 키가 닿지 않는 냉동실 속 엑설런트는 늘 애가 닳게 했다. 하루에 꼭 하나만 먹어야 한다는 엄마의 규칙은 늘 억울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은색 포장지, 금색 포장지 각 한 개씩, 하루에 두 개를 먹고 싶었다. (내 기억엔 은색, 금색인데 정확하진 않다.) 어른이 되면 마음대로 열 개 다 먹을 거야, 이런 결심을 했던 기억도 난다.

『좋았던 것들이 하나씩 시시해져도』이 출간되고 후배들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편의점에 갔다. 꽤 비싼 끌레도르를 사주겠다고 호기롭게 이끌었다. 언니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하겐다즈 아이스크림도 사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날도 추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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