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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8호 : 콘텐츠 ㅣ 인문 잡지 한편 8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22년 5월
평점 :
나라는 사람을 스스로 규정할 때 '콘텐츠 생산자'라고 생각한다. 가령 직업인으로서는 출간된 책을 독자분들에게 알리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데, 예를 들면 흥미롭게 줄거리를 요약하거나 인상적인 문장들을 텍스트 또는 이미지(카드 뉴스)로 만들거나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이벤트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어쩌면 '문학'이라는 작품을 많은 이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로 재가공하여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사적으로 내 인스타그램 계정에 꾸준히 업로드하고 있는 리뷰도 내가 생산하는 하나의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콘텐츠'는 무엇일까? 사실 지금까지 이 의미에 대해 정확히 생각해 보지 않았다.
"오늘날의 콘텐츠를 특징짓는 것은 얼어붙은 결정 같은 불멸의 작품이 되고자 하는 오래된 열망이 아니다. 가치의 척도가 되는 것은 원형으로 자리매김할 만한 본질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도, 원형을 모범적으로 모방하고 있는가도 아니라 이와 같은 모방의 유희를 수행하고 있는가다."
《한편 8호 콘텐츠》를 읽으면서 평소에 자주 소비하는 콘텐츠들을 떠올렸다. 출퇴근길에는 「김복준의 사건 의뢰」, 「프로파일러 배상훈의 CRIME」같은 범죄 수사 콘텐츠를 듣고, 업무 시간에는 다른 출판사를 비롯하여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마케팅 콘텐츠들을 살펴보기도 한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서는 「달려라 방탄」을 반복해서 보거나 알고리즘으로 유도된 유튜브 세상에서 귀여운 아기 영상이나 동물들 영상을 보며 잠든다. 내가 왜 이 콘텐츠들을 좋아할까? 나는 이 콘텐츠들을 통해 어떤 의미를 소비하고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실 우리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원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여가와 오락을 위해서 필요한 건 위험천만한 모험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를 더없이 만족스럽게 하는 것은 적당한 참신함을 가진 ‘판에 박힌 것들’이다."
《한편 8호 콘텐츠》에서 인상적이었던 글은, 짧디짧은 생명력을 가지는 이 모방과 복제의 흐름 속에 콘텐츠를 소비하는 행태에 대해 우리는 매 순간 염증을 느끼고 있으며 욕망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방식이라는 해석의 「산만한 나날의 염증에 관하여」와 문화 예술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도덕성을 유지시키는데, 범죄물을 소비하면서 우리 자신이 윤리적 존재임을 재확인한다고 설명한 「범죄물을 대하는 자세」였다. 연구자처럼 나 또한 '범죄 수사'와 관련된 콘텐츠를 좋아하면서도 내가 왜 이러한 콘텐츠에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 스스로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글이기도 했다.
나는 왜 '범죄물'을 좋아할까? 철학자 애덤 모턴은 '악의 기본 특징을 분석하면서 ‘이해 불가능하다는 관점’을 든다. 악의 이해 불가능성은 잔인한 행위를 한 타인을 이해하려 할 때 인간이 빠지는 혼란에 주목하는 개념'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나는 나와 같은 '인간'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한 것에 대해 이해해보고자 하는 노력이자, 불행을 당해야 할 어떠한 이유가 없는 평범한 누군가가 겪게되는 불행을 안타깝게 여기고 도와주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도 극단의 상황에서는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경계이자 억울하게 불행을 당하게 되었을 때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콘텐츠는 결국 흥밋거리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도덕성을 유지시키고, 이 과정에서 우리 자신이 윤리적 존재임을 재확인하며 나아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변화를 촉구하도록 움직이게 하기도 한다.
우리가 소비하는 '콘텐츠'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고,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그것들을 고민하게 해서 좋았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