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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V 빌런 고태경 - 2020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정대건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누군가 오랫동안 무언가를 추구하면서도 이루지 못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비웃습니다. 자기 자신도 자신을 비웃거나 미워하죠. 여러분이 자기 자신에게 그런 대접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냉소와 조롱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값싼 것이니까요. 저는 아직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꿈과 열망이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제 영화를 상영하는 겁니다.”
『GV 빌런 고태경』은 첫 독립 장편 영화 '원 찬스'의 흥행 실패 이후 대표작을 내지 못한 서른 세 살의 영화감독 조혜가나 관객과의 대화(Guest Visit)에서 'GV빌런' 고태경을 만나 그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혜나는 GV에서 이상하고 무례한 질문으로 분위기를 흐리는 고태경의 행동을 지식을 드러내고 뽐내는 행위나 감독을 향한 조롱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초록 사과]의 조감독 출신에 20년째 입봉을 준비하는 50대의 감독지망생인 그의 진짜 모습을 알아가게 된다.
이 소설에는 대조적이면서도 동일한 두 인물이 등장한다.
영화감독을 꿈꿔온 조혜나는 갑작스러운 기회로 자신의 첫 독립 영화 '원 찬스'를 촬영했다. 제작 기간도 예산도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 열악한 조건에서도 작품을 찍겠다고 선택했다. 그러나 새벽까지 촬영한 테이크에서 오케이를 못 내고 스텝과 배우의 압박에 노굿(NG)인데도 오케이를 해야 했다. 그 후 자신에게 남은 것은 형편없는 자신의 첫 작품과 빚뿐. 그때 '원 찬스'를 찍지 않았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잘하고 싶었지만 잘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내 능력에 대한 믿음이나 내가 확신하던 것들은 다 무너졌다. 그때 열악한 조건에서 작품을 찍은 건 내 선택이었다. “정말 좋은 기회였죠……. 제가 다 망쳤어요. 그땐 사람들 원망도 많이 했는데 누굴 원망하겠어요. 다 제 잘못이에요.”
1990년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시기에 영화감독을 꿈꾸며 최강호 감독 사단에서 조감독을 지냈던 고태경은 흥행하리라 믿었던 영화가 엎어지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며 꿈에 그리던 입봉의 기회에 가까이 다가갔다 실패했다. 그 후 다른 작품의 감독이 하차하며 갑작스럽게 입봉의 기회가 찾아왔으나 자신의 영화를 만들겠다고 거절한 후 20년째 영화감독 지망생으로서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공부하고 있다. 때때로 그는 '만약 그때 데뷔를 했더라면'이라는 후회와 자신의 선택으로 사라진 '만약'의 이야기로 괴로웠다.
삶은 엉터리고 대부분 실망스러운 노 굿이니까 사람들은 오케이 컷들만 모여 있는 영화를 보러 간다. 우리가 ‘영화 같다’ ‘영화 같은 순간이다’라고 하는 것은 엉성하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 오케이를 살아보는 드문 순간인 거다.
『GV 빌런 고태경』이 좋았던 이유는 여전히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미련하게 달려나가는 누군가에게도, 신기루처럼 자신의 꿈을 좇았지만 이제는 다른 행복을 붙잡고 있는 사람에게도 위로가 된다는 점이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걸 미워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걸 더욱 사랑하는 방향으로 가고 싶어.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뭘 위해서 이 모든 일을 하겠어?”
선택의 프로. 그런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나는 앞으로도 실수하고 후회하고 반복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미워하지는 않을 거다.
반복해서 후회하는 삶의 지점이 있을지 모른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 내 삶이 달라졌을 텐데. 지금 그 결정은 잘한 것일까? 그때 작가는 독자에게 말한다. “그런데 말이야. 사랑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이번 생에 뭘 더 좋은 걸 했겠어?”
맞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했던 그 시절이 내가 그 무엇이 되게 하지는 못했더라도 그 순간보다 더 좋은 걸 얻을 수 없었을 거야.
👉 너무너무 추천하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