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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듣는 시간 - 다른 세계를 여행하는 다큐멘터리 피디의 독서 에세이
김현우 지음 / 반비 / 2021년 11월
평점 :
지난해 GS25 편의점에서 가정의 달을 맞아 캠핑용 식품 판매 이벤트를 담은 포스터를 공개했다. 이 포스터에는 작은 소시지를 집으려는 손과 ‘캠핑가자’라고 적힌 문구가 삽입되어 있었는데,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해당 그림의 손 모양이 메갈리아의 상징과 비슷하고 소시지는 남성을 비하할 때 자주 사용된다며 항의했고, 이는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결국 이 홍보 포스터를 디자인한 디자이너는 자신이 '페미나 메갈, 일베 등 어떤 사상도 지지하지 않는, 워킹맘'이라며 사과의 글을 올렸다. 내가 『타인을 듣는 시간』을 읽으며 이 사건을 떠올렸던 이유는 "어떤 단어에 대해 내가 아는 의미만이 유일한 의미라는 생각"(p.79)이 불평등과 차별을 만든다는 말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을 하나의 '통계 단위'로 보는 것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지점에서 사람은 근본적으로 나뉘는 것 같다. 다만, 그것이 그저 숫자만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숫자가 아닌 사람에 대한 부담을 껴안아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_p.13
『타인을 듣는 시간』은 다큐멘터리 PD인 저자가 '타인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공장 노동자, 트랜스젠더, 장애인, 학교폭력 가해자 등 다양한 타인들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하나의 숫자(대상)가 아니라 온전한 한 사람으로 만나는 과정을 통한 성찰을 담고 있는 서평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내 운동화는 몇 명인가'라는 다큐를 기획할 당시, 하나의 공산품이 완성되어 소비자의 손에 도달할 때까지 각 과정에서 손으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의 삶을 취재했던 경험과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함께 서술했다. '25만 명의 광부가 실업을 당했다고 할 때, 뉴캐슬 뒷골목에 사는 광부 앨프 스미스'라는 사람은 단지 25만이라는 숫자 가운데 하나, 하나의 통계 단위일 뿐이다.'(p.13) 그러나 컨테이너선을 타고 손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을 취재하면서 그는 그들을 하나의 숫자가 아닌 하나의 사람임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EBS 다큐 프라임 「부모와 다른 아이들」은 앤드루 솔로몬의 책 제목을 그대로 빌려 제작했는데, 장애·자폐를 겪는 당사자들과 성소수자, 그 가족을 1년간 밀착취재해 그들이 받고 있는 오해와 차별을 담아냈다. 그는 이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자폐', '사랑', '장애'라는 단어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이 이들을 직접 대면하고 만나면서 달라졌다고 말한다.
내가 길을 지나가며 어떤 '장애'를 지닌 사람을 마주친다면, 나는 내가 지닌 '장애인'이라는 이미지 그대로 그를 대상화하여 만난 것뿐이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며 서로의 삶을 듣게 된다면 나는 더이상 '장애인'을 만난 것이 아닌 고유한 한 사람을 만난 것이 된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 지식으로만 알았던 '장애'라는 단어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지고, 그 사람으로 인해 의미가 확장된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고,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이 아닐까.
"다른 세계와의 접촉이 없는 개인, 다시 말해 확장되지 않는 개인은 결국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비겁함, 망상, 근본주의 같은 것들, 그리고 자신의 안락함을 지키는 과정 혹은 안락함을 얻으려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모든 추악함은 약함의 다른 모습이다." _p.23
저자는 이렇게 '단어'의 의미가 뒤바뀌고 확정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실 이 과정은 매우 단순하다. 단지, 상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듣는 것' 뿐이다. 혐오와 배제가 만연한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메시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