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생애 소설Q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돌이키고 싶은 일들이 있었다. 그 순간만 내 인생에 없었더라면. 그 실수만 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자꾸만 누군가를 원망하고, 나 자신을 자책하며 스스로를 과거에 머물게 했다.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았을까?


『완벽한 생애』는 각자 삶의 터전에서 도망치듯 떠난 세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다. 방송작가 일을 하던 윤주는 직장 상사와 동료에게 모욕을 당한 뒤 일을 그만두고 미정이 지내는 제주로 향한다. 미정은 인권법재단 간사로 일하다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신념을 잃고 제주로 도망치듯 떠나온 상태였다. 윤주는 미정의 집에서 머물 한 달 동안 자신의 원룸을 홍콩 출신 시징에게 빌려주고, 시징은 홀연히 자신을 떠난 옛 연인을 우연히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그리움을 안고 서울로 떠나온다.


각자 목적은 제각각이지만 자신들이 살던 곳에서 도망친 건 같다. 낯선 곳에서 지내며 일상의 익숙함이 사라지자, 이들은 그동안 외면해온 자신의 진심을 마주하게 된다.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완벽한 삶이란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 끝을 확신할 수 없는 신념은 애초에 갖지 않아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일까. 어째서 고민을 거듭하고 애쓰며 투신할수록 생애는 엉망이 되는 것인지, 미정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_p.85


나의 이십 대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투성이었다. 어른들이 삶에 대해 알려준 것들은 커다란 곡선들뿐이었다. 대학에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등등. 하지만 계획과 예상에 없던 일들은 폭력적으로 내 삶에 끼어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고, 과거의 내 선택이 이해할 수 없었고, 내 선의와 최선을 모욕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다. 여전히 젊은 혈기로 가득했고, 세상엔 궁금한 것이 많았으니까.


나도 몇 년 전 미정과 윤주처럼 내가 일상을 모두 버리고 떠난 적이 있다. 맞다, 그건 도망이었다. 나의 최선과 열심을 장난처럼 저울질하며 정치질 하는 상사들에 지쳤고, 그런 상황에서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고 자꾸만 미성숙하게 작아지는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무엇이 나를 이런 상황으로 몰고 간 것일까 끝없이 과거를 복기했다. 설명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나에게는.


"내 좋은 친구는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라고, 이 행성에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일 뿐이라고요. 친구의 그 말을 상기할수록, 그가 나와 헤어진 뒤에야 다른 사람과의 정착을 결심한 걸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저 그의 생애에서는 필연적인 과정을 밟고 있는 것뿐이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요. 그것이 우리 각자의 여행이겠죠. 물론 필연적인 과정들을 통해 생애가 완벽해지는 건 아닐 것입니다. 완벽할 필요도 없을 테고요. " _p.151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때가 나를 바꾸었다고. 지나치게 자기 확신에 차있던 나를 유연하게 만들었고, 최선을 다해도 안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했고, 당장은 아프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나를 더 성숙하게 하는 과정일 수 있었다고. 확실한 것은 과거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훨씬 나 자신이 편안해졌고, 진심으로 나를 알게 되었다.


지우고 싶고 돌이키고 싶은 순간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안다. 여전히 미성숙하고 서툴러도 이런 나 자신을 용납할 수 있는. 다 잘할 수는 없고,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완벽할 필요도 없고. 미정과 윤주, 시징에게도 그럴 것이다. 신념을 따르고 사랑에 진심일수록 상처받고 방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치고 부서지고 옳은지 옳지 않은지 판단하지 못한 채 흔들리면서 '살아있음'을 깨달아가는 이 과정보다 더 완벽한 생애는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