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 (별밤 에디션)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터인가 엄마가 불편했다. 서른이 넘으면서였나. 나는 내가 엄마의 세상에서 엄마의 습관대로 자라다 이제 나만의 생활 패턴과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그렇다고 생각했다. 작년 여름, 독립을 하게 되고 우리는 가끔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고, 내가 미워하던 엄마의 모습이 아니라 엄마가 살아온 삶에 대해 생각했다. 곤히 자다 일어나 백신을 맞고 열이 오른 내 이마를 무심히 짚어보고 가던 손길에 눈물이 나던 것도 이 탓이었을까.

"엄마는 나를 보며 무안한 듯 웃어 보였다. 그런 엄마가 예전처럼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보는 엄마의 표정에서 엄마 또한 내게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서로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가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우리는 눈빛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더이상 끝까지 싸울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정말 끝이 날까봐 끝까지 싸울 수 없는 사이가." _p.137


『밝은 밤』의 ‘지연’은 서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희령’으로 떠난다. 바람을 피운 남편과 이혼 후 배신감과 충격에 도망치다시피 서울을 떠나 도착한 바닷가 마을 희령은 열 살 때 할머니 집에 놀러 가기 위해 방문했던 때를 빼면 가본 적이 없는 낯선 곳이었지만. “아가씨, 내 손녀랑 닮았어. 그 애를 열 살 때 마지막으로 보고 못 봤어. 내 딸의 딸인데.” 어떤 이유에선가 할머니와 엄마의 관계가 소원해진 탓에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만나지 못했던 할머니를 그곳에서 만나게 된다. 

"어떤 말을 듣는 순간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라는 걸 알게 한다. 내게는 엄마의 그 말이 그랬다. 엄마는 내게 전화를 해서 나의 이혼으로 엄마가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얼마나 괴롭고 우울한지 호소했다. 심지어 내 전남편에게 연락해서 그의 행복을 빌어주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엄마의 눈에는 나의 고통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_p.18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잠이 달아난 새벽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책도, 드라마도 아끼고 아끼다 느즈막이 꺼내보는 편이었다. 왜 그 새벽에 이 책을 펼쳐들었을까.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었던  나만의 기억과 순간들이 떠올라서, 뜨거운 차를 불어 마시며 오래 울었다. 나도 나 자신을 속이고 있는 순간들이 있었음을. 영원히 잊히지 않을 어떤 말들이 여전히 우리 사이에 머물고 있음을 알았다. 내 편이 되어주길 기다렸던 시간들과 고단했던 엄마가 나를 헤아리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멀어졌다.


"어차피 맞서 싸워봤자 승산도 없을 거라고 미리 접어버리는 마음. 나는 그런 마음을 얼마나 경멸했었나. 그런 마음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발버둥쳐야 했었나. 그런 생각을 강요하는 엄마가 나는 미웠다. 그런 식의 굴욕적인 삶을 원하지 않는다고 저항했다. 하지만 왜 분노의 방향은 늘 엄마를 향해 있었을까. 엄마가 그런 굴종을 선택하도록 만든 사람들에게로는 왜 향하지 않았을까. 내가 엄마와 같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나는 정말 엄마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p.314

 

"내가 지금의 나이면서 세 살의 나이기도 하고, 열 일곱 살의 나이기도 하다는 것도. 나는 나를 쉽게 버렸지만 내게서 버려진 나는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그 애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관심을 바라면서, 누구도 아닌 나에게 위로받기를 원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학교에 갈 채비를 하던 열 살의 나에게도, 철봉에 매달려 울음을 참던 중학생의 나에게도, 내 몸을 해치고 싶은 충동과 싸우던 스무 살의 나에게도, 나를 함부로 대하는 배우자를 용인했던 나와 그런 나를 용서할 수 없어 스스로를 공격하기 바빴던 나에게도 다가가서 귀를 기울인다. 나야, 듣고 있어. 오래 하고 싶었던 말을 해줘." _p.337


아직은 내 마음 밖으로 꺼내놓을 수 없는 많은 감정들이 일렁이지만, 이 이야기가 정말 많은 위로가 되었다.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게 아쉽다.) 아마 이 책을 읽은 사람들 서로 다른 인물과 다른 장면에서 각자의 상황에 따라 공감하고 눈물 흘리고 위로받았을 것 같다. 그래서 술 한잔하면서 이 책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마 그 순간에는 평소 내가 하지 못했던 마음들을 꺼낼 수 있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