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유년의 기억, 박완서 타계 10주기 헌정 개정판 소설로 그린 자화상 (개정판)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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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할아버지는 늘 뒷짐을 지고 동네를 쏘다녔다. 저녁 준비를 마친 엄마가 할아버지를 모셔오라고 심부름을 보내면 마실 나간 할아버지를 찾아 동네를 휘저어야 했다. 어떤 날은 장독대 할아버지네 마루에 걸터앉아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고 계시기도 했고, 어떤 날은 동네 구멍가게에 앉아 화투를 치고 계시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집에 가자고 조르면 동네 어르신들은 군것질거리를 손에 쥐여주며 할아버지를 모시러 온 손녀를 기특해 했다. 어느 집이나 대문을 두드리고 들어서면 반갑게 맞아주던 때였다. "여덟 살까지 자라는 동안 이 세상에 부자와 가난뱅이가 따로 있다는 걸 알 기회가 없었다.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사는 줄만 알았다." (p.16)

이따끔 동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아카시아와 진달래를 따먹기도 했다. 아카시아는 커다란 나무에 하얀 송이로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데, 아카시아 송이를 따기 위해 깡충깡충 뛰어가며 한 움큼씩 뜯어내곤 했다. 내 기억에 아카시아는 달콤한 맛이 났다. 우리 가족은 집에서 가까웠던 인왕산에 약수를 뜨러 자주 올랐다. 봄에는 진달래를, 가을에는 밤과 도토리를 주웠고, 겨울에는 솔잎을 따서 송편을 빚었다. 결코 질리지 않는 놀이 중 하나였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과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박완서 작가의 자전소설로, 1930년대 개풍 박적골에서 보낸 꿈같은 어린 시절과 1950년 한국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의 삶을 그리고 있다. 황해도 개성 인근에 위치한 박적골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아버지를 잃었지만, 손녀딸을 하염없이 안쓰러워하는 할아버지 비호 아래 따뜻하게 자라다 엄마 손에 이끌려 서울의 현저동에 살게 된다. "나는 서울서 사는 법도를 익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건 실상 서울살이의 법도라기보다는 셋방살이의 법도였다. 눈뜨자마자 뒷간이 어디냐고 묻는 나에게 엄마는 변소는 안집 식구들이 다 다녀 나온 다음에 가는 거라고 했다." (p.58)⠀



1940년대 일제 치하의 서울 학교생활과 변소에 가는 일도 주인집 눈치를 봐야 하는 서글픈 서울살이 속에서 점차 세상을 깨달아가고, 한국 전쟁을 통해 순진한 이상주의로 좌익에 가담했다가 결국 의용군으로 끌려간 오빠, 인민군에 부역했다는 혐의로 사형을 언도받은 숙부, 동네 사람들로부터 빨갱이로 몰려 온갖 문초를 당한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 시대 보통 사람들의 삶을 보여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나도 어린 시절 조부모님의 비호 아래 천방지축으로 동네를 누비며 골목대장으로 지내다 학교에 입학할 무렵 분가한 부모님을 따라 개봉동으로 이사를 했다. 늘 내 편이던 할아버지를 그리워 했던 날들을 지나, 졸졸 따라다니는 동생 몰래 친구들과 놀러 나가기도 하고, 몰래 엄마의 지갑에 손을 댔다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못이겨 울면서 이실직고 하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성장은 자신의 미성숙함과 어찌할 수 없는 환경에 적응하고 성처받는 과정인 것 같다.

이 작품을 읽고 난 후, 하염없이 그리운 마음이 들었다. 서로 만나지 않고 거리를 두는 것이 미덕이 되어 누군가를 만나 안부를 묻고 모두 모여 술 한 잔을 기울이던 것이 언제인지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박적골의 풍경도, 달큼한 싱아와 아카시아도, 내가 살던 홍제동의 골목길 어르신들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면 한가득 그릇에 담아 서로 나누어 먹던 그 시절과 시대의 고통에도 서로의 손을 붙잡고 안위를 염려해 주던 때가 그립다. 그리고 박완서 작가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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