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나 도쿄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한정현 지음 / 스위밍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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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실시간 검색어 1위에는 '부산 데이트 폭력'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새벽 시간 부산 덕천동의 한 지하상가에서 남녀가 다투는 영상이 인터넷에 확산된 것이다. 영상 속 남녀는 서로 발길질을 하며 싸우다 남성이 여성을 일방적으로 폭행하기 시작했다. 남성은 주먹으로 여성을 계속 때려 쓰러뜨린 뒤 휴대전화로 여성의 얼굴 부위를 수차례 때렸고 의식을 잃은 여성을 두고 자리를 떠났다. 당시 CCTV로 현장을 목격한 상가관리인이 경찰 신고 후 여자를 찾아갔으나, 피해 여성은 신고를 취소해달라는 말만 남긴 채 자리를 떠나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폭행 영상이 유포되자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는데, 경찰이 지목한 수사대상은 CCTV 유포 대상자였다. 전문가들은 데이트 폭력의 끝은 살인이라고 말한다. 2011년부터 2018년까지 284명이 데이트폭력에 희생됐다. 매년 36명, 열흘에 1명꼴로 여성이 살해당했다.

"한주의 연인은 모든 사람에게 친절했다.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그의 주문 하나를 듣지 못한 날이었다. 그는 몇 번이나 사과하는 아주머니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대신 밥을 먹는 내내 식탁 밑으로 한주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한주가 소리를 지르려고 하면 발을 밟았다. 그 식당에 오자고 한 건 한주였기 때문이다." (p.104)



『줄리아나 도쿄』의 한주는 데이트폭력 생존자이다. 지적이고 다정했던 연인은 한주에게 지속적으로 폭력을 가했고, 그때마다 그녀는 자신을 자책했다. 결국 심각한 폭행으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한주는 그 후유증으로 외국어증후군을 얻고 더이상 한국말을 하지도, 알아듣지도 못하게 된다. 이제 그녀가 말할 수 있고 알아들을 수 있는 유일한 언어는 일본어뿐.


“나의 친구 한주의 생일을 축하해. 눈의 요정이 너를 지켜줄 거야.”

한주에게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기억은 계속 찾아오지만, 그때마다 함께 일하는 동료 유키노가 한주를 돕는다. 두 사람은 “돈을 합쳐 안전과 공간”을 마련하기로 하고 동거인 사이가 된다. 함께하는 시간이 쌓여가면서 그들은 서로가 사랑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임을 알아본다. 

한주는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에 제일 먼저 없어지는 건 소리'라는 말을 이해했다. 그녀가 공부했던 한국의 여성 노동자들을 통해서였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된 여성 노동자들은 온몸을 던져 말하려 했다. 말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린 작업복을 벗어버리고서.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녀들은 강간과 폭행을 당하고 만다. 겨우 낸 목소리가 또다른 폭력으로 사라졌다는 뜻이다. (94)​


상처받은 경험은 그 사람을 그 시간 속에 고여있게 만든다.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그 시간에 묶여 있다. 그렇다면 극심한 상처와 고통의 기억은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그들에게도 다시 시간이 흘러갈 수 있을까?


2018년, 부천 데이트폭력 사건의 생존자는 한 달간 자신의 집에 감금된 채 연인이었던 가해자에게 학대를 당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말대답을 했다는 이유로 손바닥으로 얼굴을 때렸다''머리채를 잡고 안방 침대 옆으로 끌고 가 주먹으로 몸 전체를 때렸다''경찰에 신고하면 경찰이 오는 동안 죽도록 맞을 것이고, 네 머리에 칼을 꽂을 것이라고 말하며 맥주잔으로 정수리를 내리쳤다'고 한다. 3번의 시도 끝에 탈출한 피해자는 이미 복강에 염증이 가득했고 장기가 파열돼 출혈이 심했다. 2번의 큰 수술과 폭행 후유증으로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그러나 가해자의 형량은 징역 4년, 그는 30세에 사회로 돌아온다.


『줄리아나 도쿄』는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나아가게 만드는 힘은 '연대'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부산 지하상가에서 폭력을 당한 여성은 왜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을까. 이 사건에서 처벌받아야 할 사람이 CCTV유포자인가? 고여있는 누군가의 시간을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연대해야 한다. 당신이 틀리지 않았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생존자의 책임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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