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장폴 뒤부아 지음, 이세진 옮김 / 창비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한 여론 조사에서 '성공'을 결정하는 데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 대하여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조사한 결과, 70대 이상을 제외한 모든 세대에서 '부모 등 배경이나 외부 압력'이 성공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답했다. 더욱 눈에 띄는 점은 '본인의 노력이나 능력'이 가장 낮은 응답율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한때는 나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그 만큼의 결과가 돌아올거라 믿었다. 하지만 내가 수고하여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누군가는 노력에 비해 많은 것을 얻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포함하여 우리는, '성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런 씁쓸한 결과가 도출되었을까.​


그 할머니들은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 끝으로 간신히 생에 매달려 있었다. 언젠가 전부 무너져내릴 줄 알고 있었지만 나는 개수대에 물이 샌다, 가스레인지 후드 필터를 갈아야 한다, 하는 소리를 들으면 허겁지겁 올라가서 손을 봐줬고 내가 여기 있다는 말로 그들을 안심시켰다. 그 거대한 집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이 나에게 각별했다는 것을, 어떤 면에서 내 딴에는 그들을 사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 본문 중에서

렉셀시오르 아파트에서 26년간 관리인으로 일한 폴은 입주민들의 개인적인 부탁까지 기꺼이 마음쓰며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밀리니엄 이후 그의 가치를 알아주던 입주자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세대가 교체되고, '비용 절감'만 외치는 새로운 입주자대표에 의해 천덕꾸러기로 전락하여 착취와 갑질을 당한다. 폴은 한평생 성실하고 진실되게 삶을 살았음에도 자신에게 닥친 여러 불행과 입주자대표에 대한 증오를 이기지 못하고 작은 사건에 의해 교도소에 수감된다. 뜻하지 않게 추락해버린 평범한 사람의 삶, 우리는 그것을 '실패'라고 부르기도 하고, '절망'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인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렉셀시오르가 잘 돌아가게끔 책임지라고 뽑아놓은 사람이 바로 나잖아요? 두고 봐요, 당장 오늘부터 당신이 근무시간을 어떻게 쓰는지, 한푼의 예산이라도 어떻게 사용하는지 내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겁니다.” 그 면담을 마치고 나오면서 나는 굴욕스럽고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그날 내가 서툴고 투박하게 내뱉은 반박은 나에게 약간의 존엄성도 돌려주지 못했다. ─ 본문 중에서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기꺼이 도움을 주고 관용을 베풀던 렉셀시오르의 공동체는 세대가 바뀌면서 변해간다. 비용 절감과 수익 극대화를 외치는 현재 사회의 축소판처럼, 렉셀시오르는 보수 공사를 맡은 외주업체 직원이 추락하여 사망했어도 그로인해 배상하고 책임질 일이 없다면 상관없는 일로 여기고 건실하게 노동하는 사람들을 노예로 취급하는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세상의 잣대로 보면 도박에 빠진 목회자, 살인미수자, 사람 목숨을 돈으로 책정하는 냉정한 손해사정인이지만,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누구보다 정직하고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낸 보통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처벌이 확정된 다음부터 아버지는 여태껏 여기서 아무도 들어본 적 없는 설교들을 준비했다. 교회의 한계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네 인생의 우여곡절을 너그러이 끌어안는 설교들을. 그는 삶이라는 시궁창 속에 바로 우리의 자리가 있음을, 낙엽송이나 맥貘이나 우리와 같은 감방을 나눠 쓰기는 마찬가지임을, 비록 우리의 본능은 정반대를 속삭일지라도 우리 모두 미래를 불안해하고 신들의 호의를 믿으려고 애쓰고 있음을 말했다.


가족 사이의 갈등,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예기치 못한 사고, 착취당하는 노동, 사실 우리가 경험하는 인생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누구나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불행'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것은 아마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묻는 것일지 모른다. 그것의 답을 찾는 것은 스스로의 몫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제목이 그 답을 찾는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 참고로 2019년 공쿠르상 수상작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