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연예인 이보나
한정현 지음 / 민음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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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지구에서 다섯 명의 아이들이 우주의 끝으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20년 후..."


어렸을 때, 한 동네에 살던 사촌들과 모여 '후뢰시맨'을 봤던 기억이 난다. 지구를 지키는 다섯 용사는 힘을 합쳐 괴물과 용감하게 싸웠고, 끝내는 외계인들을 모두 무찌르고 지구에서 행복하게 살았을 거라고 무심히 생각해왔다. 하지만 실제 '후뢰시맨'의 다섯 용사들은 사실 외계인에게 납치된 아이들이었다. 과거 개조실험제국 메스의 에일리언 헌터에게 납치당한 5명의 아이들은 외계인 '플래시(후뢰시)' 성인에게 구조되어 메스 제국에 대항하기 위한 전사 플래시맨으로 특훈을 받는다. 성인이 된 다섯 아이들은 자신들을 부모와 갈라지게 한 메스를 향한 분노와 그들이 지구를 공격하려는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지구로 귀환한다.


플래시맨들은 자신들이 자란 플래시성과 그 위성에서 전송되는 "프리즘 슈트"라는 강화복으로 변신하여 괴물들을 무찌를 수 있었는데, 이탓에 플래시성에서 자란 사람은 장기적으로 지구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른바 '반(反) 플래시 현상'이라 불리는 신체적인 거부 현상을 일으키고 만다.


신체적으로 거부 현상을 일으키고 지구에 계속 머문다는 건, 죽음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그들은 반(反) 플래시 현상을 치유하는 방법을 발견하고 지구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다짐하며, 본래의 고향인 플래시의 별로 귀환한다.


후뢰시맨이 이렇게 슬픈 내용이었나. 어쩌면 어린 나는 지구를 떠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곧 돌아올거라 굳게 믿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후뢰시맨을 처음 봤던 건 초등학교 1학년 때인 1991년 여름이었다. 오후 5시에 시작하던 그 만화영화를 무리 없이 볼 수 있었던 건 입학과 동시에 다니기 시작했던 피아노학원과 미술학원을 갑작스레 그만뒀기 때문이다. 그해 여름, 개구리 소년들이 실종되었다. 모든 아이들의 하교가 다급해졌다. 나는 그저 질색하던 피아노학원을 그만뒀다는 것이 기뻤을 뿐이었다. 믿는 구석이 있었다. 곧 후뢰시맨이 나타나 아이들을 구해 줄 거였다.(p.9)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에 수록된 「괴수 아키코」는 소설을 쓰기 위해 1970~1980년대를 전공한 연구자 '그'를 인터뷰한 내용을 각색한 것으로, 이모라고 불렀던 엄마의 친구들과 가방에 엘피판을 숨겨가며 음악을 듣고 문학 잡지를 읽던 엄마의 실종과 화재로 신발 한 짝만 남겨놓고 사라진 아버지의 실종이라는 '비극적인 가족사'를 통해 노동권을 보장하라며 나체 시위를 하던 여성 조합원 시위와 1970년대 오키나와 주둔 미군 부대 방화사건을 비롯한 정치적 억압의 사건들을 드러낸다.


죽는 것과 사라지는 건 다른 의미였다. 존재하기 때문에 죽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거였다. 그러므로 모든 죽음의 전제는 '살아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p.30)


사실 외계인에게 납치된 다섯 명의 후뢰시맨은, 어느 날 갑자기 지구에서 사라져버렸다. 「괴수 아키코」의 어머니도, 훗날 화재로 신발만 남기고 사라져버린 아버지도 모두. 우리는 이러한 '사라짐'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것이 가족의 죽음이었거나, 외계인에게 납치되고 '결단코 집을 나간 것이 아닌'(p.32) 어머니가 돌아오지 못한 것을 끝내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저 사라짐. 그래서 언젠가 지구를 지키기 위해 돌아왔던 후뢰시맨처럼 그들도 돌아올거라 믿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석사논문에서 이 소설이 난해한 형식적 실험을 위한 메타픽션으로서의 가능성만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폭압적인 당시의 정치 상황 속에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능했고 이를 통해 리얼리즘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다고 분석했다. (p.41)


『소녀 연예인 이보나』의 작가 한정현은 인터뷰에서 '여성노동자, 성노동자, 기지촌 문학'에 관심이 크다고 밝혔다. 역사 속에 가려지고 소외된 사람들의 일상사와 개인사, 인간사의 다양한 모습과 그들의 잃어버린 목소리들을 언어로 옮기려 노력하겠다고.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로는 알고 있었고, 친구는 이 작품을 꼭 읽어보라고 강조했지만 이제야 읽어보게 되었다. 읽고 난 소감은, 앞으로 출간될 모든 작품들을 믿고 읽을 새로운 작가를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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