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생활
송지현 지음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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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tvN에서 방영하는 '여름방학'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보고 있다. 배우 정유미(인간 민음사라 불리는..)와 최우식이 강원도 고성이라는 곳에서 한 달 살기 하며 여름 방학처럼 일상의 쉼을 가지는 콘셉트의 방송이다. 하루에 꼭 해야 할 일은, 한 끼 이상 건강식을 먹는 것과 운동하기 뿐이다.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하기도 하고, 바다로 나가 서핑을 배우기도 하고, 평소 해보지 않았던 요리나 베이킹을 시도해보기도 한다. 최우식은 종종 말한다. '나 평소였으면 정말 이러지 않는데.'


"진짜 너무 힘들어서 쓰러지고 싶은데, 그 와중에 나는 너무 건강해."

해줄 말이 없어서 나는 위로 대신 대답을 했다. "동해 갈래?" (p.58)


지난해 11월, 상훈 씨의 제안으로 민음사 블로그에서 《동해 생활》을 연재했다. 사실 당시 너무 바빠서 이 작품을 연재하는 전후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시작했고, 나는 막연히 완성된 원고를 만드는 과정에서 홍보를 위해 연재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 재밌는 원고라면 내가 편집자여도 먼저 공개하고 싶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재 보신 분들은 다 아시죠?) 일단, 웃겨 ㅋㅋㅋㅋ


"“우리 예전에 같이 살았을 때 기억나? 그때 학교 담벼락에 기대서 밤새 귀신 얘기하고 그랬잖아. 우리는 앞으로 살면서 그 담벼락을 다시 찾아야 할 것 같아.” 그 얘기를 듣고, 나는 동해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응급실을 나섰을 때는 새벽 3시였고, 나는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이라는 것밖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둠 속으로 계속, 계속 액셀을 밟았다." (p.25)


나는 『동해 생활』을 읽으며, 몇 년 전 한 달 살기로 훌쩍 떠났던 제주도를 떠올렸다. 과정보다는 목표와 결과가 중요하던 혈기왕성하던 이십대의 나는, 자주 쉽게 소진되었다. 그래서 예민해지고 때때로 우울했다. '만족스러운 결과는 얻었는데, 내가 얻은 것은 뭐지?' 결국 퇴사를 앞두고 제주도 한 달 살기를 계획했다. 그렇게 떠난 제주도는 화창한 3월, 베란다를 열면 곽지 해수욕장이 보이는 곳에서 나는 한 달 동안 잠만 잤다. 아! 밤에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기는 했다. 그러다 주말에 친구들이 놀러 오면 요리를 해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맛집 정도는 함께 가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축축한 모래사장에 친구와 누워 말없이 별을 보던 그때, 그곳이 나의 담벼락이었나 보다.


"튜브는 한 철만 쓰는 물건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빨리 망가져 버렸다. 동생과 나의 지난여름 한 철처럼. 우리는 이제 동해를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떠나는 까닭이, 여기가 지긋지긋해서라든가 일을 너무 많이 하게 돼서라든가, 그런 이유는 아니다. 그냥 이제는 우리 삶 속에서 동해라는 곳을 대여하는 시간이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동해 생활에는 긴긴 우울증 치료에도 유쾌한 순간은 있고, 서럽게 눈물을 쏟아도 신경 쓰지 않고 알아서 술 마시는 친구도 있다. 최승자 시인은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라고 하는데, 많은 이들이 서른을 넘으며 저마다의 성장통을 겪는 듯하다. 그때 잠시 일상을 벗어나 천천히 호흡을 다시 고를 수 있다면, 잃은 것 같았던 본래의 나로 돌아가 엉망진창인 채로 지내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화해할 수 있는 많은 순간들이 보일 것이다. 지금은 떠날 수도 없으니, 이 책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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