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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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교육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신은 왜 일을 하나요?"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하지. 먹고 살 다른 방도가 있었다면 나는 일을 하지 않았을테니까. 하지만 이 대답은 정답이 아니었다. 꿈을 이루고, 성취감을 느끼고, 자아실현을 하는, 지금 들으면 조금 허황되고 추상적인 말들. 회사는 그런 마인드를 요구했다. 십여 년 전만해도 우리는 '일'을 성공과 성취의 수단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2005년에 출간된 박민규 작가의 『카스테라』를 보면 '일'이란 생존의 수단으로 여겨진다. 출근 시간 신도림역에서 푸쉬맨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나는,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나. '공포스러울 정도의 거대한 동물이 파아, 하아, 플랫폼에 기어와 마치 구토물을 쏟아내듯 옆구리를 찢고 사람들을 토해냈다. (중략) 영차, 영차, 무언가 물컹하거나 무언가 딱딱한 것들을 마구마구 밀어넣긴 했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어찌 내 입으로 그것이 인류였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p.74) 실제 안전선은 지하철 밖에 존재했지만, 삶의 안전선은 전철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의 봉급, 여전한 할머니의 약값, 발생될 엄마의 치료비... 아버지의 눈동자가 그토록 잿빛이었던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뭐랄까, 전지가 떨어진 계산기의 액정과 같은 그런 잿빛이었다. 이제, 계산이 안나온다. 나도, 계산이 서질 않았다.'(p.84) 해가 바뀔수록 자본주의 경쟁 체제는 극도로 심해졌고 IMF가 끝난 이후에도 이어지던 경제난은 끝날 줄 몰랐다. 당장 자신의 일자리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어 매년 새롭게 절망했다. 그런 시기들을 겪고나니 모두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어떠한 노력으로도 바뀌지 않을 자신의 계급에 대한 냉소적 인식,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앗아가고 인간을 굴욕적으로 만드는 세계, 어른들이 말하는 꿈이나 희망 열정 등이 무가치하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시대였다.


그러나 2019년 장류진 작가가 바라본 세상은 어떨까? 「일의 기쁨과 슬픔」에는 유명 뮤지션의 내한 공연을 성사시키고 특진을 약속받았으나 공연 소식을 개인 SNS에 가장 먼저 올리지 못해 토라진 회장의 심술로 월급을 카드 포인트로 받는 인물이 등장한다.


"굴욕감에 침잠된 채 밤을 지새웠고, 이미 나라는 사람은 없어져버린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되었다고. 그런데도 어김없이 날은 밝았고 여전히 자신이 세계 속에 존재하며 출근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주해야 했다. 억지로 출근해서 하루를 보낸 그날 저녁, 이상하게도 거북이알은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포인트로 모닝커피 마시고, 포인트 되는 식당에서 점심 먹고, 포인트로 장 보고, 부모님 생신선물도 포인트로 결제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더 보내고 나서 그녀는 모든 것을 한결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p.51)


열심히 노력하면 삶이 극적으로 나아지리라는 꿈 같은 건 아무도 꾸지 않는 시대, 그렇지만 완전히 절망하지도 않은 상태. 실제로 일상 생활에서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대체할 수 있을 것 같다. "자기가 짠 코드랑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p.60) 지금 시대의 노동은 내 생활, 내 기호, 내 취미와 분리되어 철저하게 생계수단으로서의 역할만 담당하게 되었다. 일과 나 자신은 동일하지 않다고, 내 기쁨과 즐거움은 다른 곳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작품의 제목처럼 '일의 기쁨과 슬픔'은 우리 삶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감정이다. 그래서 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일을 하는 동안의 감정, 일의 댓가를 통해 얻는 기쁨들이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고 볼 수 있다. 나에게는, 내 아버지에게는,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일'은 무엇일까?


시대별로 다양한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노동문제를 들여다본다면 그 시대에 우리가 품었던 다양한 시선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로 2019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은 현 시대를 정확히 반영하는 작품이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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