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2
켄 키지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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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뇌 검사를 받으러 간 환자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서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병동에서 나갈 때만 해도 발버둥을 치며 고래고래 욕설을 퍼부었는데, 몇 주 뒤 주먹다짐이라도 한 양 눈에 시퍼렇게 멍이 든 채 돌아올 때는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얌전한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 중에는 한두 달 뒤에 퇴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행복한 꿈에 젖어 몽유병 환자 같은 얼굴을 하고 돌아다닌다. 병원에서는 이를 성공 사례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그런 사람은 콤바인을 위해 만들어진 또 하나의 로봇에 불과하다. 그 같은 로봇이 될 바에는 차라리 실패작이 되는 게 낫다. 



정유정 작가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읽으며 “전두엽 절제술로 인해 인간성을 빼앗긴 맥 머피”를 베개로 눌러 죽이는 장면을 보며 “살인이 인간에게 구원이 될 수 있다는 것” 을 처음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1960년대 발표된 작품으로 체제 순응적인 보수주의와 물질주의에 대한 반문화 운동이라 할 수 있는 히피 문화의 확산으로 기존의 도덕, 제도에 반하여 인간성을 회복하고 자유를 되찾고자 하는 당시의 시대상을 대변한다.


이 소설은 정신병원에 수감된 환자들의 이야기로 작중 체제에 순종적이고 고분고분한 인간을 만들기 위해 평범한 환자들에게 정신병 진단을 내려 격리시키고, 치료라는 명분으로 정신적 학대를 일삼는 행위를 저지른다. 하지만 아무도 저항하지 못하는데, 저항했다가는 전기충격이나 뇌 전두엽 절제술을 받아 식물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주인공 맥 머피는 노동형 선고를 받고 작업장에서 일하다 미치광이인 척 하고 정신병원에 들어오게 되는데, 이러한 억압의 현장을 발견하고 권력의 중심인 수간호사와 병원 체제에 저항하다, 끝내 인간성을 빼앗는 “전두엽 절제술” 이라는 수술을 당하게 된다. 맥머피의 저항은 가치가 있을까?


사회학자 미셀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정신병원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인간적 장치가 아니라 이성중심적 사회가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가치기준으로 광인을 추방하고 감금해온 장소로서 인간에 대한 권력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억압적 수단의 필연적 산물이라고 분석한다. 아마 켄 키지는 이러한 권력과 통제의 구조를 보여주기 위해 '정신 병원'이라는 배경을 설정하지 않았을까.


이 작품은 거대한 사회 지배 구조에 주목한 책으로, 사회가 인간을 어떻게 무력하게 만들어 통제 내에 머물도록 하는지에 주목한다. 어느 사회나 법, 도덕, 제도를 통하여 체제와 규율을 정하고 이제 반하는 사람은 서로의 합의하에 감시와 처벌을 하며 통제해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체제를 이용해 다수를 지배하려는 권력이 등장한다. (항상..꼭..)


그렇다면 지금 이 사회에서 우리를 무력하게하고 통제 내에 머물도록 하는 장치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도 수많은 감시와 처벌의 체제가 존재하지만 나는 '노동'을 통해 체제를 통제하고, 이러한 통제 속 과도한 노동을 통해 인간성을 상실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봤다. 수년 전,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자필 메모가 공개된 적이 있다.

1. 야간의 주간화, 2. 휴일의 평일화, 3. 가정의 초토화, 4. 라면의 상식화


일자리가 줄어들고 실업률이 높아진다는 말만으로도 우리가 처한 노동 환경에서 경직될 수밖에 없다. '노동'은 우리 삶에 필수불가결하고,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때로 불합리하고 억울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쉽게 저항하지 못하게 된다. 야간이 주간화되고, 휴일이 평일화되어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노동'에서 고개를 들 수 없도록, 그 어떤 것에도 저항하지 못하고 지친 일상에만 머물게 하는 것이 그가 생각한 통제 방법이었을까?


정유정 작가가 했던 “살인이 인간에게 구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란 말을 떠올려 본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정유정 작가는, 켄 키지는 자유없이 억압된 통제 속에서 저항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인간답지 못하다'고 바라본 것이다. 내가 죽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내 마지막 인간성이 자유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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