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프 보이스 - 법정의 수화 통역사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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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달리다가 아주 심하게 넘어진 적이 있었다. 앞서 걷던 엄마에게 달려가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엄마가 바로 앞에서 걷고 있던 것은 확실했다. 아라이는 울면서 엄마를 불렀다. 그러나 엄마는 돌아보는 일도, 멈춰 서는 일도 없었다. 아라이는 더 큰 목소리로 울며 외쳤다. 그래도 엄마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걸어갈 뿐이었다.

 

- 아아, 엄마는 듣지 못하지.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아라이는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_p.112

 

 

 

사치코 재판의 법정 통역, 적어도 이것 하나만은 수용될 것이다. 법원은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공평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아라이는 생각했다. 그들의 언어를 그들의 생각을 정확하게 통역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그래야 법 아래에서 평등이 실현될 수 있다. 그들의 침묵의 목소리가 모두에게 들릴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다. _p.318

 


언어는 '모국어'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모국어가 같은 사람들끼리 공통의 문화를 공유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제2외국어를 배우게 된다고 하더라도 '말'을 모국어로 생각하고 그것을 변환하는 과정을 거쳐 말하게 되는 것이다. 농인들에게도 '소수의 언어'이지만 모국어가 존재한다. 그것은 '수화'이며 수화를 중심으로 공통의 문화를 공유한다. 우리가 쉽게 범하는 실수 중 하나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쉽게 열등한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그들에게도 자신이 주인공인 동일한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을 잊곤한다. 그들 또한 우리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가족을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며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주인공 아라이는 농인 부모 밑에서 가족 중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농인 부모의 아이, 코다(Children of Deaf Adult)이다. '부모님은 들리는 자신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도 들리지않는 부모님과 형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성장하면서 가족을 비롯한 농인 사회에서 이질감과 소외감을 느끼며, 농인 사회에도 청인 사회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아라이는 오랫동안 근무하던 경찰서 사무직을 그만두고 구직 끝에 자신이 가진 기술을 살려 수화 통역사 자격을 취득한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농인들은 주로 '일본 수화'를 사용하여 대화를 하고, 중도실청자나 난청자들은 '일본어대응수화'를 주로 사용하는데 아라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수화를 또 하나의 모어로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탓에 수화 통역사로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그러던 중 한 농인의 법정 통역을 제안받게 되고, 과거에 경찰서 사무직으로 근무할 당시 농아시설 ‘해마의 집’ 이사장 살해 용의자인 농인의 취조 과정을 억지로 통역해야 했던 일을 떠올린다. 그당시 아라이는 농인이 받는 무당한 대우를 보면서도 묵인했기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또다시 ‘해마의 집’의 현 이사장, 즉 17년 전 죽은 전대 이사장의 아들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과거와 동일한 인물일까? 아라이는 묵비권을 인지하지 못한 채 법정에 서는 농인의 수화 통역을 하며, 해마의 집을 둘러싼 두 건의 사건을 통해 농인 사회의 모습을 세밀하게 들려준다.

 

외국에 있을 때는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차별을 받아도 항의하기 어려워 참게되는 경우가 있다. 내가 가진 언어를 통해 내 상황이나 감정을 그 나라의 언어로 유창하게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농인을 포함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대다수인 '청인' 사회에서 그들은 자신이 당한 부당함과 차별을 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얻게 된 가장 귀한 것은 농인을 '장애'를 지닌 사람이 아니라, 나와 모국어가 다른 사람이라고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서로의 언어가 달라 원활하게 소통이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는 언어가 다를 뿐, 누군가가 열등한 존재가 아니다. 필요하다면 서로의 언어를 조심씩 알아가면 되니까.

 

농아시설 '해마의 집' 사건은 자기 자신과 가족을 지키고자 했지만, 자신들의 언어로는 청인 사회에서 자신들을 지키기 어려웠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러한 일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을까? 네이버 창을 열고 '장애인 사건'이라고만 서칭해도 믿을 수 없는 참담한 사건들이 수없이 검색되는 것을 보면 지금도 여전히 그들은 스스로를 지켜내기 어려운 것 같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인식, 당신은 어떤가? 혹시 그들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없는 객체로 등한시하거나 열등한 존재로 여기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면 좋겠다.

 

다양한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 문제가 화두인 이 시기에, 이들 또한 또 하나의 소수자로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해하고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세지가 마음에 큰 여운을 남긴다. 꼭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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