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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미숙 ㅣ 창비만화도서관 2
정원 지음 / 창비 / 2019년 2월
평점 :

과거에 나를 돌아보면 나는 정말 미숙한 사람이었다. 아마도 이런 나의 미숙함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위로한다며 건넸던 '어떠한 말'이 돌아보니 상처가 되었을 것 같고,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해한다고 했을 때 내가 진심이 아니었음을 분명 알았을 것이고, 나에게 자신의 상처를 고백했던 친구에게 마음을 다해 위로해주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순간, 내가 내뱉고 행했던 것들이 진심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나를 아프게 했고, 사과하고 싶었다. 그 때는 내가 미숙하다는 것조차 모를만큼 미숙해서 너에게 상처주는 것조차 몰랐다고.
미숙이 자라왔고, 또 우리가 자라왔던 시간들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아마도 자신이 스스로 기대하는 것보다는 미숙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미숙함이 당신의 마음에 쓰라린 상처를 남기고도 여전히 모르거나, '그 때 왜 날 때렸어?'라고 묻는 미숙에게 그저 고개를 돌린채 '미안해'라고 밖에 말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미숙의 아버지는 오래 전 시집을 출간한 시인으로 '시대를 성찰하는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그 이후 평생을 가족의 생계도 내팽겨치고 매달려도 다음 시집을 낼 수 없었다. 스스로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과 아들이 없다는 것에서 오는 자괴감이 딸들을 더욱 미워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미숙의 어머니는 자신의 꿈을 위해 생계를 책임지지 않는 남편을 대신하여 부업을 하며 가족들을 부양해야하는 것에서 오는 삶의 고단함과 남편의 폭력 앞에서 딸들을 사려깊게 돌볼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 사이에서 언니 정숙은 사춘기가 되어가고 점점 반항적으로 변해간다. 미숙은 누구에게도 상처주고 싶지 않아서 그저 가만히 있는다.
시간이 지나 미숙에게도 마음을 나눌 친구가 생겼다. 전학 온 재이는 이혼한 부모 사이를 오가며 살고 있는데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면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 재이와 함께 어울리며 지하철을 타고 홍대에 가보기도 하고, 노래방에서 놀고, 단 둘이 여행을 떠나기도하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그렇게 진심을 나누고 서로의 상처를 이야기하며 우정을 이어가지만, 미숙이 재이에게 고백했던 자신의 상처, 가족 이야기를 재이는 소설로 써서 발표한다. 자신의 진심을 이용했다고 느낀 미숙은 예상치 못한 상처를 겪고 재이와 절교한다. 그렇게 미숙은 더욱 자신에게 몸을 움츠린다.
친구들이 '미숙아'라고 놀려대며 자신의 주번을 대신하게 할 때도, 언니가 이유없이 자신을 때릴 때도, 부모님의 폭력적인 부부싸움을 볼 때도 미숙은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사실 미숙은 그들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언니 정숙이 불안하고 두려울 때마다 습관적으로 허벅지를 꼬집으며 고통을 참는 모습을 지켜보며 언니의 반항심과 분노를 이해했고, 어머니가 느낄 삶의 무게와 고달픔을 이해했으며, 진돗개라고 애지중지 키우던 개가 진돗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절미’를 홀로 돌본다.
비록 미숙은 사람들에게 '미숙아'로 불리지만, 그들 중 가장 성숙한 사람일지 모른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지만 똑같이 상처를 돌려주지 않고, 그들과 다른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어른으로 자랐으니까.
이 작품에는 모두가 '미숙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미숙한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지만은 않다. 때론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던 누군가의 모습이거나,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었던 내 모습이기도 하니까. 가족과 평생 살아오면서 가족들에게 상처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때론 그 마음의 상처가 너무도 커서 감당하지 못할 때도 있고, 그 원망으로 많은 시간을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한 그들의 '미숙함'을 무조건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든 언제고 '미숙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단단하고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언젠가 가족의 폭력 속에서 자라온 자신의 상처를 어렵게 꺼내보였던 친구가 있었다. 그 때 나는 뭐라고 했던가. 그냥 같이 울었던 것 같다. 내가 아는 말 중에는 건낼 수 있는 말이 없어서, 내가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그리고 성숙하지 못한 그 사람들이 미워서. 지금이라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 되지 말자, 우린 더욱 단단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자.
매일 자신의 똥을 먹던 '절미'는 미숙과 살아가며 점차 자신의 똥을 먹지 않게 되었다. 절미도 미숙의 사랑을 받으며 조금씩 성장했다. 그래서 이 미성숙한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조금은 희망이 있는 것 같다. 우리도 언젠가는 더디더라도 성장할테니까.
언니는 내 우상이었고 인내였다. 그런 언니가 변하기 시작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무너지고 있었다. 눈에 띄게. 그렇게 희망이 절망하고 있었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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