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회색 노트 ㅣ 쏜살 문고
로제 마르탱 뒤 가르 지음, 정지영 옮김 / 민음사 / 2018년 8월
평점 :

아마도 너는 도움과 위로와
희망이 필요할 텐데, 나는 애정의 말은 커녕 고작 자신을 위해서밖에 살지 못하는 에고이스트의 한탄만을 적어
보내는구나.
사랑하는 벗이여. 용서해
줘!
다른 말은 쓸 수가
없다. 나는 지금 위기를 겪고 있어. 지금 나의 마음은 산골짜기의 자갈밭보다도 더 메말라 있어! 모든 것에 대한 불안, 또 나 자신에 대한
불안, 이것이 가장 잔인한 괴로움 아닐까? _p.83
이 작품은 예민한 두 사춘기
소년이 벌인 일주일간의 가출 사건을 그리고 있다. 독실한 가톨릭교도이자 명망있는 티보 집안에는 아들 자크와 모든 사람들이 예의 주시하는
프로테스탄트 집안 출신의 다니엘은 학교 선생님의 눈을 피해 회색 천을 덧댄 노트에 서로의 비밀 이야기를 공유하며 점점 깊은 관계를
쌓는다.
그러나 이들의 비밀스러운 우정 행각은 강압적인 학교
선생에게 노트를 들키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들의 노트에 주고받은 섬세하고 시적인 언어들은 너무나 순수하여 어른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선생들은 이 사건으로 인하여 다니엘을 퇴학 시키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시작된 두 소년의 가출은 선생과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이어지며 배를
타고 알제리로 떠나고자 가출을 시도한다.
사춘기에 한 번쯤은 지나가는 성장통과 같은 예민한
고뇌들과 반항, 그리고 모두가 주어진 가정에서 각자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들은 백 년전에 쓰여진 이 작품과 지금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지금은 모든 것에 많이 무뎌졌지만, 나 또한 이 두 소년들처럼 몹시 예민하게 성장하며 불합리하고 이해할 수 없다고 느꼈던 고통들이 있었다.
지금은 그 시기를 쉽게 '중2병'으로 하찮게 부르지만, 성장하는 한 사람의 생애에서는 그 예민함이 그 사람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한다.
그 때의 내 슬픔이, 고통이, 예민해서 견딜 수 없었던
수많은 것들이 지금은 별 것 아니게 되었지만, 그렇게 견뎌냈던 시간들이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 되었고, 나를 이루는 조각들이
되었으니까.
그 시절, 이유없이 억울했던 날도, 눈물만 흘리던 친구의
손을 잡아주던 어떤 날도 소중하지 않은 날은 없다. 이 두 소년의 짧은 가출이 어른들의 눈에는 그저 철없이 반항하는 허튼 짓일지 모르겠지만, 이
두 아이에게는 인생을 바꾸는 사건이 된다는 것을 그 시절을 지나온 우리는 모두 안다.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문제 의식도 좋았지만, 그와 함께
아팠지만 반짝거리는 내 시간들이 떠올라서, 그 불안이, 그 슬픔이 떠올라서 말할 수 없는 울림이 있었다. 고뇌도 반항도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해야한다.(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