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경애는 다시는 다신을 방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번에는 고통 속에 떠내려가도록 놓아두지 않겠다. 그렇게 움직일 때마다 마치 환영처럼 아주 단순한 일도 차마 하지 못해 무기력하던 어느 여름의 기억들이 먼지처럼 공중으로 떠올랐다. 어떻게 생겼는지 어느에서 뭘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언니의 응원을 받아 겨우 문밖으로 나가 옥수수나 맥주를 사들고 왔던 시절, 생각해보면 경애가 파업 이후 회사에서 은근한 따돌림을 받으면서도 버틴 건, 버틴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버려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모멸 속으로.
때는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자신을 부당하게 대하는 것들에 부당하다고 말하지 않는 한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구원은 그렇게 정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동적인 적극성을 통해서 오는 것이라고 시흥의 창고에서 생각했다. _p.307

 


 

 

이 책을 읽은 후 꽤 오랜 시간동안 '여운'속에서 지낸 것 같다. 마음을 쿵, 울리는 책이 있는가하면 가만히 마음을 두드리다가 끝내 왈칵 쏟아지는 눈물내게 하는 책이 있다. 경애의 '마음'이 꼭 나와 같아서 나는 끝내 눈물을 쏟았다. 그래서 이번 여름, <경애의 마음>을 만난 것은 오랫동안 잊을 수 없는 행운 중 하나일 것 같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사는 '견디다'라는 단어이다. 나는 그 '견디다'라는 단어의 무게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 어쩌면 모두가 각자의 무게를 견뎌온 삶에 대하여. 그리고 나의 '견딤'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잘 견디고 있을까? 문득 외면하고 있던 내 마음, 폐기하고 방기했던 내 마음들의 무게가 견딜 수 없어서 지켜내지 못하고 내버려두었던 많은 시간들에 대해 생각했다. 머리를 감고 이를 닦고 세수를 하는, 누구나 하루에 한번쯤은 귀찮아도 후다닥 해내는 그런 일마저도 너무 무거운, 그런 시간. 남들에게는 자신을 방치하는 일이고 나 자신에게는 최선이었던 그 시간에 대하여.


아주 단단했던 사람도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마음이 완전히 무너지기도 한다. 경애처럼 사랑했던 E와의 이별, 그것도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불이난 호프집에서, 돈을 내지 않고 달아날까 문을 걸어잠그고 도망친 사장에 의해 죽게된 연인에 대한 마음 하나라도 삶은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자신에게만 주어진 행운이라는 것과 미성년자가 호프집에 있었다는 이유로 죽어 마땅한 일이 된 시선 속에서 경애가 아주 단단하고 강인한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스스로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었을까?

혹은 상수처럼 아주 오랜시간 차곡차곡 쌓여 조금씩 마음이 붕괴되기도 한다. 삿뽀로에서 암으로 혼자 외로이 죽어간 엄마와 정치인으로 가족들때문에 구설에 오르내릴까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아버지. 그걸 견디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변한 형과 그 무엇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자기 자신.

경애는 무기력한 시간 뒤로 자신을 숨기고, 상수는 '언죄다'페이지를 운영하고 소통하며 위안을 얻는다. 본질적인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그들에겐 최선이었던 회피였다고 생각한다. 나도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고 여겼으나 사실은 그저 내 마음을 외면하고 버려두었던 적이 있다. 누구나 성장하면서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그 슬픔과 상황에 마주하기보다는 내 마음을 폐기하고 내 스스로의 마음을 속이기 시작했다. 일렀던 아버지의 죽음과 그로인한 엄마의 방황도, 그래서 마주할 수 밖에 없었던 가난과 조금더 가보고 싶었으나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꿈도, 견디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어리숙했던 직장생활까지. 그 모든 것들을 외면하고 내 마음을 속였던 댓가는 반드시 왔다. 마음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기를 선택했을 때 얼마나 망가지고 마는지를.

 

자신의 연인이었던 E의 죽음으로 마음을 폐기했던 경애는 그 무뎌진 삶을 겨우 일으켜 일상을 살았다. 하지만 직장 생활에서도 녹녹치 않았는데, 일부 인원이 감축되면서 경애는 파업에 참가해 시위도 하고 삭발도 하며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파업이 종료되고 경애는 다시 복직이 되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많은 이들의 비난을 사게된다. 그 비난 가운데서 스스로를 방기하며 총무과에서 사무용품을 나눠주는 일을 하며 시간을 견딘다. 그것이 스스로를 지키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영업부로 이동하여 상수와 한 팀이 되고 베트남 발령이 나면서 경애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상황이 달라졌는가? 아니다. 경애가 스스로의 마음을 더이상 방기하지 않기로 마음 먹는다. 부당한 인사로 베트남 영업 도중 시흥의 물류센터로 발령이 나고 경애는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결심한다. '마음을 폐기하지 말라'는 언니의 말에 힘을 얻어.

마음을 방기하지 않는 일, 그래서 자신을 스스로 지키고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사는 것. 아주 거창한 것 같지만 주어진 시간을 견디는 것의 시작은 무엇일까?

경애는 자신의 마음을 버려두지 않기로 한다. 부당인사에 대응하여 회사 앞에서 날마다 일인 시위를 하고 있지만, 스스로 무기력에 빠지며 도망치지 않고 스스로 목소리를 내며 자신을 지키고자 한 것이다. 자신을 부당하게 대하는 것들에 부당하다고 말하지 않는 한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경애는 알았다. 구원은 그렇게 정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동적인 적극성을 통해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맞서보는 것.

상수는 자신이 선택하고 만들어 온 것들로부터 도망치지 않기로 결심한다. '언죄다'의 언니로 살면서 늘 최선을 다해 그들을 이해하려고 했고, 그 시간들이 소중한 시간들이었기에 더이상 도망치지 않고 책임지는 것, 거짓되고 만들어진 모습으로 남들 앞에 서는 것을 멈추기로 결심한다.

우리가 흔히 누군가에게 '힘내세요'라고 말할 때 우리의 진심은 무엇일까? 나는 경애가 '힘'을 내기 시작한 부분에서 눈물이 참 많이 났다. 부당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 그래서 스스로를 다시 침잠하게 하지 않고 구원하는 것이 우리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그래서 많은 시간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고 외면한다. '다 그렇게 살아', '어쩔 수 없어' 라는 말로 위로하며.

하지만 경애의 마음이 '힘'을 내기 시작했다는 것, 자신을 지킨다는 것이 사실 겉으로 볼 때는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작은 행위인지, 하지만 온 우주의 힘을 끌어온 것처럼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슬퍼졌다. '힘'을 낸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닐까. 긍정의 힘으로 자신을 속이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하찮은 작은 행동이지만 스스로에게는 엄청난 용기를 끌어내보는 것. 그래서 자신을 지켜내는 것.

경애의 마음이 꼭 나 같아서.
그 폐기되었던, 부스러졌던 마음이 꼭 내 것 같아서.
많이 슬펐고, 안아주고 싶었고, 그래서 나도 '힘'을 내보고 싶었던 시간이었다.

당신의 마음도 부스러질지언정 폐기되지는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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