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도망치고 싶더라니 - 변화를 가로막는 내 마음의 정체는 무얼까?
뇌부자들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내담자와 의사의 상담 형식으로 쓰여진 심리 소설로 다섯 명의 내담자와 다섯 명의 의사가 등장한다. 처음에 의사를 찾아올 때 그들은 자신의 심리상태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다. 그저 자신이 하는 '어떠한 패턴의 행동'이 불편하여 상담을 하기 시작하고, 그 상담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 소설에 다섯 명의 내담자는
- 탈고를 미루는 시나리오 작가
- 아이에게 이유없이 화를 내는 초보엄마
- 갑자기 공황을 겪은 취업 준비생
- 폭식을 반복하는 만화가
- 불면증에 시달리는 성형외과 의사

 

 

내담자는 치료자의 안내를 따라 자기 마음을 온전히 들여다보고, 그 마음이 거부하고 있는 것, 두려워하고 있는 것, 부정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둘 알아 간다. 그리고 서서히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내면의 불안과 상처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생각해온 나는 자존감이 높고, 사람들을 좋아하고, 명확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떠한 일에도 머뭇거리지 않고 의사를 표현하고 그래서 꽤 일을 잘 한다는 말도 많이 들어왔다. 꽤 평범하지만 좌절할 만한 상황에 놓이지는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책과 관련된 일을 하며 얻는 만족감도 크고, 인복도 있어서 주위에 좋은 선배, 동료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나는 불안을 자주 느낀다. 사실 나는 내가 '불안'을 느낀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했다. 자주 어지럽고, 가끔 숨이 차는 증상이 나타나 내과에 자주 방문했지만 신체적인 문제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 신체적 증상들을 외면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하지만 작년부터 나는 내 자신을 조금씩 직면하게 되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 이 직면의 시작은 '혼란'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나는 누구인가?'라는 사춘기적 질문 앞에 놓인 것이다. 나는 나라는 사람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나에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내면의 불안과 상처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내담자가 가지고 있는 자신들의 마음과 행동패턴이 나에게도 조금씩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이 사용하는 방어기제는 나도 자주 사용하는 방어기제여서 나도 종종 회피하고, 감정을 타인에게 투사하고, 나쁜 감정을 외면하며 격리시키기 때문이다.

 

인정받지 못할까 두려워 불안해하고, 내 마음의 심리적 안전기지를 찾지 못해 우울할 때도 있다. 이 다섯 명의 모습이 조금씩 나와 닮아있어 나도 이런 도망을 치고 있지 않은 지 꽤 오래 곰곰히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도 내 불안을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다.

 

난 절대 불안하지 않아! 난 담대한 사람이야. 다 잘 되고 있어! 라는 강한 긍정을 내려놓고, 나도 불안할 수 있어. 난 지금 긴장했어. 이 상황은 내가 두려워하는 상황이야. 라고 말이다. (강조해서 말하지만, 쉽지 않았다.)

 

나는 최근에 다니던 퇴사를 그만두었다. 그 회사를 퇴사하는 과정은 내 인생에서 매우 독특한 상황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 없이 잘 다니고 있었는데, 업무적으로 무리해야하는 상황이 닥치고 내 힘으로 상황을 핸들링할 수 없는 상황이 오자 나는 불안해졌다. 나는 이 전에 한 교육회사에서 4개월 가량 짧게 근무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짧은 4개월의 시간이 나에게는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다.

 

나는 밤낮가리지 않고, 주말도 반납하며 '혼자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회사의 시스템이나 텃세로 인하여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도움을 청할 곳 없는 나로서는 처음으로 백기를 들고 포기하게 되었는데, 나에게는 이 퇴사가 내 인생에 첫 번째 실패처럼 여겨졌다. 나에게 남은 것은 번아웃된 뇌와 너덜너덜해진 마음뿐.

 

그런데 또 다시 무리해야하는 상황이 닥치니 번아웃되었을 때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잠시만 고생하면 잘 될 수 있어.' 라는 긍정적인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소비되고 소진될거야. 그래서 또 지쳐버리고 말거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두려웠다.

 

사람의 마음이란 신기해서 지난 일이고, 잊은 것 같아도 또 같은 상황이 되면 그 기억을 끄집어내어 나의 트라우마를 건드린다. 그래서 도망쳤다! (후회하지는 않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팟캐스트 <뇌부자들>을 오랫동안 청취한 청취자이다. 그리고 출간되자마자 책을 구입했고, 최근에 진행된 별마당도서관 강연회도 참석했었다. 그곳에서 책 속 인물들에 대한 설명과 방어기제에 대해 소개해주셨는데, 허규형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신 책 속 인물 '신욱'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또다시 생각에 잠겼다.

 

나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나도 신욱씨처럼 마음 깊은 곳에 격리해둔 작은 방이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 방 근처에 다가오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때마다 나는 외면하거나 도망치고 있지는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잊고있던 하나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지 않아서, 이 모든 탓을 하나님에게 돌려 원망하기도 했고, 나 자신을 탓하는 게 힘들어서 감정을 격리하고 없던 일처럼 태연하게 행동하기도 했다. 공개적으로 쓰긴 어렵지만,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잊고 싶었던 억압된 감정에 조금씩 다가가고 나의 불안을 조금은 지지하게 되었다.

 

사실 아직 과정 중이다. 나도 내가 어디까지 직면할 지 알 수 없지만, 책 속의 인물 '신욱'씨는 상담에 실패하고 만다. 자신을 직면하기 두려워 상담을 포기해버린 것이다. 조급할 이유는 없지만, 도망치고 싶지 않다. 지금 도망친다면 언젠가 다시 나를 아프게 할테니까.

 

완벽한 사람은 없고, 완벽한 가정 또한 없다. 친구는 다양한 수많은 사람들을 겪을 수 있지만, 가정은 내가 살면서 단 한 가정만 겪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모두 서툴고 마음같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아파하며 힘들어했던 친구들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선물하기도 했다.

 

이유없는 불안도 없지만 쓸모없는 상처도 없다.
괜찮다, 그럴 수 있어. 라는 말로 위로해주는 힐링 에세이는 정말 많다. 하지만 그 잠깐의 위로가 나를 달라지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다섯 명의 면담 과정을 통해 나에게도 이런 방어기제가 없는지 돌아보고, 자신을 바로 알 수 있도록 이 책을 권해보고 싶다. 책이 아니라면, 팟캐스트 <뇌부자들>을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 불안과 상처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까.
자주 꺼내서 읽어보며, 도망치고 싶을 때 내 마음을 지지해주는 소중한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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