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렵다. 철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울렁거려 책을 펼쳐볼 엄두가 전혀 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왜 철학을 어려워하는 것일까? "철학 = 어려운
학문"이라는 스스로 만든 공식에 사로잡힌 게 아닐까? 나처럼
철학이 난감한 이들에게 과학자가 요점 정리한 철학 노트가 있어 용기를 내어 펼쳐 보았다. 나는 과학은
좋아하니까!
그런데 사실 지금에서야 과학과 철학을 구분하지만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만
하더라도 자연 현상을 연구하는 모든 지적 활동을 철학이라 했다. 철학과 과학, 의학, 예술 등 모든 분야에 뚜렷한 구분이 없었다. 이들 학문 간의 뿌리가 같다는 것이다.
과거 철학 또는 과학자들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시대를 앞서간 선견에 감탄하는 경우도 있고, 어떨 때는 그들의
허무맹랑한 주장에 실소가 새어 나오기도 한다. 그렇다고 코페르니쿠스나 프톨레마이오스처럼 올바른 주장을
한 인물을 '좋은 사람', 틀린 주장을 펼친 인물을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을 필요는 없을뿐더러 비난해서도 안된다.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현대
과학도 미래의 어느 특이점을 거쳐 패러다임이 전환될 일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이 바라봤을 때 현대 과학은 얼마나 미개하고 한심해 보일까?
- 쿤과 과학혁명 -
"과학은 지식의 축적을 통해 점증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도 부른 혁명적 과정을 통해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패러다임이란 한 시대의 과학자 사회에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론, 관습, 관념, 가치관 등이 결합된 개념...."
(p.432)
"정상과학 시기에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패러다임에 모순되는 변칙이 발견되지만
대부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견되는 변칙의 수가 증가하면 일부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게 되는데 이 시기를 정상과학의 위기라 설명한다. 이때 새로운 패러다임이 더
많은 지지를 획득하게 되면 새로운 정상과학이 탄생하게 되는 '과학 혁명'이 성공을 거두게 된다. 패러다임 전환은 이해하려는 대상인 자연 자체가
변하는 게 아니다. 자연을 바라보는 방법이 변하는 것이다."
(p.434)
우리가 과거의 과학자, 철학자들의 행위와 업적을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하여 가설을 세우고 사고와 실험을 통해 그것을 증명한다. 그렇게 진리를 향해 시행착오를 거쳐 인류의
모든 학문이 발전해 왔다. 지난 3월 14일 스티븐 호킹 박사의 부음을 들었다. 그가 마지막까지 호기심을
놓지 않았던 주제는 '평행 우주'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호기심과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 인류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 베이컨의 실험과학 -
"우상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귀납적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첫 번째 단계는
실험과 관찰을 바탕으로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 사례를 포함하는 존재 목록, 그런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
부재 목록, 그 둘을 비교한 비교 목록을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목록을 바탕으로 제거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다. 존재 사례에 있는 현상이라고 해도 부재 사례가
존재한다면 제거 목록에 포함시킨다. 세 번째 단계는 목록들의 내용을 토대로 가설을 작성하는 일이다. 실험과 관찰에 인간의 이성을 더해야 한다. 네 번째 단계는 가설을
검증하는 단계이다. 실험을 반복하여 가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며 오류가 나타나면 가설을 포기해야
한다." (p.193)
이 책에서 다루는 철학의 다른 측면인
종교와 사회 이념도 눈여겨볼 만하다. 과학자인 저자는 철학의 역사와 정의, 굵직한 사건들을 마치 족보처럼 읽기 쉽게 죽 풀어서 정리해 놓았다. 나처럼 '철학'이라는 제목에 두드러기가 날 것 같은 사람일지라도 편한 마음으로 읽으면 분명 그런 선입견이 사라질 것이다.